[기업의 질문]

“전문가들에게 들으면 항상 미국의 타이레놀 위기관리를 배우라고 하면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소개하네요. 그런데 공부해봐도 우리 회사 상황하고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이 케이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과감한 리콜’ 정도 같습니다. 이걸 배우라는 건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범하는 실수들 중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특정 케이스를 보여주면서 ‘이대로만 하라’는 조언입니다. 사실 위기관리에 정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조금 더 나은 답을 찾는 것이 위기관리이고, 최악의 답을 내지 않게 하는 것이 위기관리죠. 80년대 초 미국에서 발생한 타이레놀 케이스는 분명 성공적 동인(動因)이 많았던 케이스이긴 합니다.

우리가 이 케이스를 통해 배워야 할 인사이트라면 첫째가 핵심 이해관계자 눈높이에 회사의 태도를 잘 맞추었다는 점입니다. 일부 지역, 일부 타이레놀 제품에 들어 있던 독극물 협박 이슈임에도 회사는 두려워하는 전국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듣고 따랐습니다. 바로 모든 타이레놀 제품들을 매대에서 끌어내려 소비자들을 안심시킨 거죠. 질문했던 과감함도 이런 눈높이 철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둘째 인사이트는 회사가 겪을 재무적 피해보다 소비자 안전과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신뢰, 즉, 비가시적 자산에 더 방점을 두어 의사결정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투자자들이나 이사회로부터 “상당한 재무적 피해가 예상되는데 꼭 그래야만 하겠나?”하는 질문에 단호하게 답변했던 CEO가 있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재무적 부담 때문에 의사결정을 지연하면서 상황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는 태도와는 다른 대응이었습니다.

셋째 인사이트는 평소 자신들이 가진 ‘신조(Credo)’를 모든 의사결정자들이 그대로 따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회사와 비교해 한번 생각해 보세요. 평소 오너와 CEO가 지속 강조하던 여러 경영가치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고객 최우선 경영’이라 해보죠. 근데 고객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기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최고경영진은 어떤 의사결정 기준을 떠올려야 할까요? 맞습니다. ‘고객 최우선 경영이 우리의 가치였으니, 당연히 이번 상황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놓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진짜 그렇게 당연한 공감대가 형성되나요?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타이레놀 케이스가 대단하다고들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타이레놀 케이스는 우리의 흔한 위기 케이스와 다른 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혀 유사하지도 않은 케이스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다른 점은 타이레놀을 생산했던 회사 존슨앤존슨은 이 케이스에서 순수한 피해자였다는 점입니다. 협박범에 의해 만들어진 엄청난 부정적 사건에 처한 피해자들 중 하나였다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의 많은 위기 케이스는 어떻습니까? 자사에게 전혀 책임이 없이 피해자로서만 당하는 위기 케이스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가해자이거나 책임자인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르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험하는 위기의 유형들을 보면 상당수가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낸 케이스입니다. 실제 위기 케이스들을 분석해 보면 그 수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업 최고경영진 관련 위기, 내부고발성 위기, 기업의 규제나 범죄 관련 위기들 같이 최고 수준의 위해성을 보이는 케이스들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에 기반합니다. 또 우리 기업들이 경험하는 위기의 유형은 매번 반복되는 것들이 상당수입니다. 자사에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경쟁사나 동종 또는 이종 기업들에서 이미 목격되었던 위기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곤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평소 위기관리에 관심을 두고 실질적 개선이나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존슨앤존슨의 경우에도 80년대 초 과감하게 자신들의 신조를 따라 성공시켰던 위기관리를 지난 30여년간 여러 차례 동일 반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회사도 제대로 반복 구현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위기를 관리해본 일이 없는 일반 기업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따라 하기에는 부담인 것만은 확실하죠. 타이레놀 위기관리는 기업의 오너나 CEO가 건전한 기업 철학 구현 케이스로 귀감으로 삼을 정도는 되지만, 위기관리에 있어서 예외 없는 의사결정의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헷갈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