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국제 컨퍼런스(www.slowlifeplanet.org)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필자는 평소 공적인 가치가 있는 강연은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주제가 ‘행복에 관련된 것’이라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그 후 며칠 뒤에 담당자를 만났는데, 국제 컨퍼런스의 테마가 ‘슬로 라이프(Slow Life)’라는 것이었다.

슬로(Slow)라고요?

슬로 푸드, 슬로 시티, 슬로 라이프 등 점점 빠르고 경쟁적인 현대사회의 병폐를 막아보겠다는 운동이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만큼 잘 아는 분야도 아니다. 행복 또한 공부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지만, ‘슬로’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을 뿐 아니라 다소 이질적인 인상이 있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어느 지방 식당을 찾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 학회 장소 인근이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던 곳이다. 겉보기에는 그리 비싸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메뉴를 받아보니 인근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서 20~30% 이상 비쌌다. 나가기도 미안하고 해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다른 곳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웨이터가 이야기하기를, 이 레스토랑의 음식은 모두 지역의 식재료이며 가능하면 자연 그대로 자란 것이라고는 것이고 요즘 트렌드인데, ‘슬로 푸드’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비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음식 맛이 다른 곳보다 더 좋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가지 썼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인지 슬로는 필자에게는 안 어울리는 비싼 옷 같다고 느껴졌다.

더구나 필자는 전형적인 빨리빨리족이다. 보통의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 그렇듯이, 게으른 것이 죽기보다 창피한 사람이다. 이런 필자에게 슬로 라이프 컨퍼런스에서의 강연이 어울리기는 할까? 더구나 참석자는 이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들이다. 이미 후회하기는 늦었고 강연 준비하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골든타임의 구원투수

슬로 라이프의 창시자이며 이번 컨퍼런스의 첫 번째 연자인 ‘스지 신이치(Tsuji Shinichi)’ 교수의 책들을 정독했다. 열심히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슬로 라이프는 바로 행복의 실천법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강연의 내용을 쉽게 구성할 수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이’ 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인류는 현재 역사상 가장 부유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행은 더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1988년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GNP는 4000달러가량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2만달러가 넘어 5배가 넘는 부(富)를 누리고 있음에도 결코 그만큼 행복해졌다고 느끼지 못한다. 물론 경제적인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도 있다. 일제와 한국전쟁의 암흑기가 끝나고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때는 행복이란 이야기를 꺼낼 여유도 없었다. 배가 부른 것인 행복이었다. 이 시기에는 생존이 더 시급한 문제였다. 마치 골든타임과도 같다. 심장이 정지하면 다시 살릴 수 있는 시간이 불과 4분이며 이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 생존은 시간 싸움이다. 당연히 ‘빨리빨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과거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경제제일주의’는 결코 우리의 행복을 위한 완봉 투수가 못 된다. 퀄리티 스타트를 한 선발투수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구원투수로 바꿔주어야 한다. 이 시기가 너무 빠르거나 늦게 되면 시합을 망치게 된다. 느리지만 남을 배려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행복을 생각하는 슬로 라이프의 시대가 필요한 이유다.

강연 스케치

신이치 교수의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그 문제를 일으킨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인용한 것이었다. 경제를 위해 희생되었던 지구 환경을 되살리는 것도, 지나친 소득의 편중으로 생긴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도, 자동화와 대기업화로 줄어든 일자리의 확충 역시 경제부흥만이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이었다.

TED의 명강사로 알려진 영국의 ‘칼 오너리(Carl Honore)’의 강연도 인상적이었으며, 성취를 지향하는 요즘의 현실에는 오히려 더 잘 받아들여질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오로지 속도만을 내느라고 잃어버린 자신, 가족, 사랑, 건강 등을 위해 일정 시간 동안 느림을 실천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능률도 올라 사회적 성공에도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 주장하던 슬로운동을 이제는 슬로혁명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탈리아 키안티 지방의 한 소도시 시장이기도 했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는 장문의 시를 낭독하듯이 강연을 했다. 그는 좋은 경제와 나쁜 경제를 비교하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더 행복해지려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네 빵집의 예를 들며 대기업에서 생산된 빵은 대량생산과 보관을 위해, 결국 유전자 변형 밀을 쓸 가능성이 많고 또한 보존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건강을 위해서는 동네 빵집이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은 음식 선택에 있어 우리의 ‘자율권’에 관한 것이었다. 진정한 자율권이라면 우리가 먹을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제품명과 회사 브랜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선택한 음식은 아마도 효율적인 선택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자율적 선택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고 그 자유를 실천하는 성숙한 태도가 자율성이라면, 음식 선택의 자율권은 삶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음식에 있어 자율과 자유를 다 포기하고 살지는 않았나 싶다.

끝으로 협동조합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델라세가(Carlo Dellasega)’는 빈곤과 인구감소로 고민을 하던 작은 도시 ‘트렌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협동조합의 발전을 통해, 불행했던 도시는 활기차고 행복한 도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협동조합을 통해 1+1은 2가 아닌 3이 될 수 있으며, 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덤은 바로 행복이라고 강조한 점이 흥미로웠다.

천천히, 그리고 모두 다 함께

실은 강연을 핑계로 공부를 하러 간 셈이었다. 4명의 강연자들을 통해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얻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참석했던 청중들의 반응도 놀랄 만큼 뜨거웠다. 행사를 준비했던 관계자들의 노고도 대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던 점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한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빨리빨리’ 올 수는 없겠지만 모두 함께 같은 마음으로 손잡고 가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행복은 천천히, 그리고 모두 다 함께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