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길게 잡아 40년. 한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 전망이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벌써부터 ‘한국 경제를 주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높은 잠재성장률이 근거다. 전제는 물론 있다. 꾸준한 잠재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으로는 기업의 투자, 원천개발 확보 등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상당수 기업은 아직까지 투자를 꺼린다. 사내 유보금을 늘리며 시기만 저울질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공업그룹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 기술력과 신기술력의 결합, 10년을 내다본 장기 투자로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한국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역으로서 조선분야 세계 1위란 왕좌를 지켜왔던 중공업그룹. 이들의 변화엔 세계 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한국 경제의 청사진이 담겨져 있다. <편집자 주>


“어∼. 저게 뭐지. 짝짝짝짝, 와∼” 1988년 9월 17일. 세계인의 눈이 한 아이에게 집중됐다. 88서울올림픽 개회식 퍼포먼스를 위해 굴렁쇠를 굴리고 잠실올림픽 경기장을 달렸던 윤태웅군. 그가 경기장 중앙에서 굴렁쇠를 잡더니 손을 흔들었다.

몇 초간 정적이 흘렀을까. 10만명의 관중이 환호했다. 세계 60억 인구 축제의 날, 어린아이의 굴렁쇠 놀이. 개막식 직전까지 극비에 붙여졌던 단 1분의 퍼포먼스는 세계인에게 한국을 각인시켰다.

한국에만 있는 굴렁쇠, 화합의 상징인 원은 그동안 비틀거렸지만 향후 꿋꿋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징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한국이 경제적 회생 가능성이 없는 나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인식을 바꾼 변곡점이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제조, 전자, 건설, 중공업그룹 할 것 없이 세계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손재주는 한국 기업만의 경쟁력이 됐다. 이런 바탕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현재에 안주하는 성향을 보였다.

상당수 기업은 투자를 꺼렸다.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투자 시기만 저울질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대비하기보다 ‘현재 하는 일만 잘하면 되지’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위기를 겪으면 사람이 변하기 마련이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많은 것이 변했다. 글로벌 기업이 간판을 내리기도 했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도 있었다. 미래를 얼마나 대비했느냐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그래서일까. 2009년 이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저마다 신년사에서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서달라’는 주문이 단골 메뉴가 됐다. 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모든 기업 전략이 초점을 맞췄다.

결과는 일단 성공적. 기업의 변화에 힘입어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열에서도 선두에 위치하고 있다. 기업이 경쟁력 강화에 나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금융사들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미국 골드만삭스는 205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2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기업인 프로비타스 파트너스의 보고서에서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오는 2050년에 1인당 GDP 세계 2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은행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다극화-새로운 글로벌 경제’란 보고서를 통해 2025년 한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신흥 6개국이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것을 이유로 들었다.

연평균 성장 전망도 4.7%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같은 기간 선진국의 성장세가 2.3%인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전제는 물론 있다. 성장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내수 확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한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다시 한 번 쓸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전문가들은 중공업그룹의 산업구조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 경제 흐름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곳도 중공업그룹이다.

중공업그룹이 위치해 있는 울산과 거제지역의 GDP는 국내 기준 1·2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중공업의 특성상 시대를 앞선 기술 개발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미리 읽고 끊임없이 산업구조를 튜닝하며 앞으로 전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중공업이란 얘기다.

시대가 변하면 기업도 변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과 동시에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만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속 기업을 꿈꾸는 CEO에게 던져진 과제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