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의 무역 자유화 바람이 '초대형 태풍'이 됐다. 각국의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메가 FTA’로 전환되고 있다.

▲ TPP 협정에 나선 12개국 각료. 출처=미국 무역대표부 홈페이지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과 3위 일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 GDP의 40%, 교역 규모의 2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 TPP가 5일 출범했다.

지금까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아닌 양자 간 FTA 체결에 집중했던 한국은 늦은 시각까지 TPP 협상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출경쟁국인 일본이 그동안 부진했던 FTA 성적을 하루아침에 만회하고 세계 무역시장에서 한국을 추월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발빠른 FTA 체결 행보는 EU, 미국 등 고관세 시장에서 일본 등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일본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자원부국에서의 우리의 시장선점 기회를 빼앗고 말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열흘에 걸쳐 네 번이나 지연되는 진통 가운데 체결이 성사되자 미국도 속내를 드러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우리 고객의 95%가 해외에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 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초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TPP 가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지난 6월 미 의회로부터 신속협상권을 승인받은 후 더욱 적극적으로 12개국 각료 회의를 지원해 왔다. 

 

한 중 FTA 발효 앞두고 '중국 견제' 선언한 TPP 가입?

이처럼 미국은 대놓고 일본과 손을 잡은 TPP 협상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한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한·중 FTA 발효를 눈 앞에 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뚜렷이 결정된 것이 없다. 현재까지 정부는 “TPP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고 미국, 칠레 등 이미 개별 FTA를 체결한 국가가 많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TPP는 모든 관세의 완전 철폐 등 기존의 양자간 FTA에 비해 자유화의 범위가 넓고 개방수준이 높다. 이는 공산품, 농수산물을 포함 모든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고, 정부 조달, 지적 재산권, 노동 규제, 금융, 의료 서비스 등의 모든 비관세 장벽을 자유화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과거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TPP 협상에 참여할 것으로 밝힌데 대해 한미 FTA 특혜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미일 동맹관계는 강화되는 반면, 한미 동맹관계는 상대적으로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당시에도 시진핑 중국 주석 보란 듯 오바마와 친밀한 관계를 과시하더니 미국의 손을 잡았다. TPP 불참가를 선거 공약으로 당선된 총리는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FTA 추진이 늦어 해외에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TPP 협상 참가를 정식으로 표명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사전 협의에서 자동차와 소고기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시아태평양실 일본팀장은 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에 편승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일본기업의 글로벌 경쟁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2015년 중 TPP 협상을 타결할 경우 2025년 일본의 GDP가 1046억 달러(2%) 증가하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한국과 중국은 무역대체 효과로 각각 28억 달러(-0.1%), 348억 달러(-0.2%)의 GDP가 감소할 것이라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주목했다.

▲ 출차=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 정부는 올해 중 한국이 TPP에 가세하고 2018년 중국까지 가세할 경우에는 한ㆍ중ㆍ일 모두 수출과 GDP 모두 증가할 것이며 일본보다는 중국과 한국이 오히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정부도 물론 TPP 가입에 관심을 갖고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일단 TPP 협정 내용을 보면서 제조업과 GDP 증대 효과 등의 손익을 계산 중인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날인 6일 한국의 TPP 협정 참여 필요성에 대해 "우리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FTA에도 버티다 '쌀개방'... 우리 농산품 개방 불가피

정부는 섣불리 TPP에 참여하지 않고 쌀시장 개방 등 구체적인 협정 내용이 나오면 참여하겠다는 입장인데, 지금까지 드러난 TPP 협상의 농산물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일본이 쌀과 쇠고기 등 양허 범위를 늘린 방향으로 합의됐다. TPP 성사의 걸림돌이었던 일본 쌀시장도 우선 미국산 5만t, 호주 6000t으로 무관세 수입물량을 설정하고 13년차부터 각각 7만t, 8400t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쇠고기 관세율도 현행 38.5%에서 TPP 협정 발효시 27.5%로 낮추고 16년간 단계적으로 인하해 최종적으로 9%까지 내리는 것으로 했다.

일본의 기존 FTA를 살펴보면 일관되게 자국의 경쟁력이 강한 제조업에서는 100%에 달하는 시장개방을, 농수산업에서는 철저한 시장보호라는 정책을 견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FTA에 소극적으로 보였던 이유도 자국의 농수산업 시장보호가 가능했던 국가를 위주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TPP 협상에서 보듯 이러한 농수산업 보호기조는 적용되기 어려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규판 팀장은 TPP 참여는 실질적인 한ㆍ일 FTA의 체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TPP가 체결되면 일본과의 교역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여전히 IT를 제외한 우리 산업계는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TPP 체결로 일본 기업들의 수출 환경은 더욱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일본의 미국 수출품 중 관세 부과 품목의 비중은 58%로 일본이 TPP로 인한 무관세 효과에 엔저를 등에 업으면 우리 기업과의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일각에서는 TPP 가입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관세사 A씨는 “이미 FTA 협정을 맺은 국가들과 다시 TPP를 체결하는 것이 별로 실익도 없어 더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TPP 협정이 90% 이상의 무역 품목 자유화를 추구하지만 개별국가로 보면 품목제한이 많을 것이 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공식이지만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는 국산 원재료 비율이 워낙 높고 TPP 참가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특히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미 TPP 효과 미미하다고 인정한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이 1차 참여국에 포함되지 못했다며 '12개국이 협상해서 만들어 놓은 틀에 끌려들어가는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1차 회원국이 되지 못한 데 따른 '참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4월 TPP 참가 의사를 표해 이미 일본을 제외한 11개국과의 사전 합의를 마쳤다. 정식으로 참가 의사를 타진할 경우 일본과의 합의만 남아 있는 상태로 일본이 우리에게 강도 높은 개방 조건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  공기업의 몰락 가져올 것"

지난 해 국제전략센터포럼에 참석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제인 켈시 교수는 한미 FTA에는 없지만 TPP에는 포함된 조항 규제의 일관성, 공기업, 환율 조작 등에 대해 우려했다. TPP를 통해서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과 기업과 투자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기업과 투자자 보호만을 위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켈시 교수는 한국의 우체국이나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공기업은 공적·사회적 책임이 있음에도 정부가 특별하게 대우할 수 없어 기업과 경쟁에 내몰려 실패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 의회가 TPP 협상 조건으로 내놓은 환율조작국 제재의 1차 목표는 일본이지만 경상수지 흑자 지속국가인 한국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번 TPP 협상안에는 환율조작국 지정 조항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말 치적이자 일본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내논 회심의 카드, TPP 협정에 대한 한국의 다각적 분석이 요구되는 한편 결단의 시점을 놓쳐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