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진통 끝에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국내 전자업종에 미치는 파급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타결소식이 알려진 직후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입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미래성장동력인 전자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TA가 핵심
TTP의 여파를 따지려면 ITA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정보기술협정(ITA) 확대 협상 전체회의를 열어 201개 IT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최종 합의했다. 당장 내년 7월부터 정보기술(IT) 관련 제품 중 반도체, TV카메라, 위성위치확인 시스템(GPS) 장비, 반도체·자기공명장치(MRI), 카 스트레오, 초음파 영상진단기 등 201개 품목이 단계적으로 무관세 품목으로 전환된다.

ITA는 지난 1996년 WTO 회원국들이 컴퓨터, 반도체, 통신장비 등 주요 IT제품 및 부품 203개 품목에 관세를 없애기로 한 다자간 협정으로 1997년부터 발효됐으며 관세철폐 품목 확대를 위해 2012년부터 ITA 확대협상을 진행해 왔다.WTO에 따르면 201개 IT 품목의 연간 교역액만 1조 3000억 달러(약 1520조원) 규모로 전세계 연간 교역량의 약 7%를 차지한다.

이 지점에서 TTP로 돌아오면 의미심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ITA의 발효로 관세가 이미 철폐되어 거대자유무역지구의 틀을 벗어난 운신의 폭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일본산 TV, 냉장고 등의 가격경쟁력 제고가 예상되지만 그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핵심이 변수
ITA로 전자업종의 TPP 파급력이 크지 않는다고, 일말의 불안감도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ITA 자체의 문제다. TPP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ITA가 일종의 발패가 될 수 있지만, 국내 수입시장에서는 여전히 ITA가 돌발변수로 꼽히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기술적 격차를 줄이고 있는 중국의 IT 제품들이 물밀 듯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에 진입한다면 ITA는 강력한 방어막에서 아킬레스건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과 중간재도 시계제로 상태다. 먼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기계부품 등의 중간재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2012년 기준 TPP 12개국을 대상으로 한국과 일본의 중간재 수출은 각각 1180억달러, 1260억달러의 백중세다. 이 지점에서 관세인하의 바람을 타고 일본이 TPP 내부의 입지를 강화한다면 중간재적 측면에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ITA 합의에서 한국이 관세철폐 대상에 포함되길 원했던 LCD(액정표시장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2차 전지 등이 중국 및 일본 등 경쟁국들이 상호견제로 무관세 품목 명단에 빠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전자업종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중간재 수출 전반에 포함되는 국내 수출 경쟁력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소재사업에 강한 일본의 경쟁력도 변수다.

다른 업종은 어떤가
한편 전자업종 외 다른업종은 희비가 갈린다.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 부품의 경우 일본의 가격경쟁력이 변수로 꼽힌다. 당장 TPP 주축 중 하나인 미국시장에서 국내 자동차 경쟁력이 흔들릴 전망이다. 다만 TPP 역내 국가에 이미 진출한 경우 오히려 현지시장 공략에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국내 수입시장에서는 출혈이 예상된다.

섬유 및 의류업종은 상황이 좋아졌다는 평가다. 제품의 일정 비율 이상을 TPP 역내에서 조달해야 하는 원산지 규정 때문에 한국에서 원단이나 부품을 TPP 역내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어려워지지만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베트남 등에 공장을 건설하는 방법이 있다. 현지화 정책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외에 철강은 미국시장에서 일본과 직접적인 경쟁상태가 아니며, 중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 및 기자재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