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 Oil on canvas

- 194X97cm

- 우제길 作

잃어버린 젤소미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 사태로 인해 세계 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우는가 싶더니 급기야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기를 불황이라는 어둠의 터널로 몰아넣었다.

세계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어 가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도산, 정리해고, 실업자 증가 등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절망이 대신하며 암울한 미래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듯한 현실이다. 여태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짐에 따라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한 각성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젤소미나를 찾아서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이 개봉된 후 여주인공 젤소미나는 희망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고, 잊고 있던 것들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 내내 젤소미나를 괴롭히다, 급기야 젤소미나를 버리고 도망간 잠파노가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고 섧게 우는 장면에서 함께 울고, 아파해야 했다.

극장에 모인 관객들 역시 잠파노가 그랬듯, 놓쳐버린 희망을, 잊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젤소미나를 가슴 깊은 곳에서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영복의 말처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의 길이 우제길에게도 있었다면, 그래서 다시 가슴에서 손끝, 발끝으로 이어진 더 긴 여정이 그에게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그저 ‘난 어떤 것을 보았습니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난 어떤 것을 보았고, 그것을 찾고 있고, 결국엔 그것이 되고 싶습니다’라면, 이 쉽지 않은 현실을 걷고 있는 우리와 당신에게도, 우제길의 작품을 통해 언젠가 만났던 젤소미나를 다시 찾아갈 용기와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며, 결국 다시 젤소미나를 찾아가기 위해 움직일 힘이 생겨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시 걷다
피어나는 꽃봉오리인 듯, 겹겹이 쌓인 판 뒤편에서 오묘한 빛을 비추는 우제길의 작품은 그래서 길의 시작이고, 여행의 시작이며, 생의 시작이다.

그는 오랜 시간, 길고 굽은 길을 걸으며 빛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 왔지만, 동시에 지금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다시 행낭을 꾸리며, 가슴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다.

그의 젤소미나는 빛이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이고, 다시 지금 그의 작품 앞에 선 나와 당신이다.

홍호진 UNC갤러리 대표 (dmitri@uncgall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