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얼마 전부터 정부기관에서 우리 회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서 이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기자들이 하나둘 알고 취재를 해오고 있습니다. 질문 중 ‘이 문제를 최고경영진이 알고 있었느냐 몰랐었느냐’ 묻는 것이 제일 고민스럽습니다. 이걸 뭐라고 답변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그런 딜레마는 기업 위기 발생 시 기업들에게 상당히 흔한 공통적 고민입니다. 이른바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라고 하는데요. 해당 위법 사실을 최고경영진이 알았다고 자백하게 되면 그 회사는 사회에서 ‘나쁜 악당’이 되어 버리죠.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해당 문제를 최고경영진들은 몰랐다고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악당’이 되느니 차라리 ‘바보’가 되겠다는 선택을 하는 거죠. 하지만 대중이나 기자가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니 문제입니다. 막상 기업이 “최고경영진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고, 일부 담당 직원들이 저지른 실수다”라고 커뮤니케이션해도 그리 쉽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큰 규모와 장기간의 문제를 최고경영진이 전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하는 반응들이 떠오르게 되죠.

현실에서 기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그 수밖에 없죠. 거짓말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게 반복의 힘인데요. 계속 부가적인 논리들을 만들어 해당 메시지를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초기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는 ‘우리 최고경영진은 스마트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도, 이런 위기 시에는 ‘우리 최고경영진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고 자존심 상하는 메시징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단기간 동안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메시지로 상황이 관리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정부기관의 조사를 통해 ‘이번 위법 행위 전반에 걸쳐 최고경영진들의 조직적 개입과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겠지요. 이 경우에는 최초 ‘바보’로 포지셔닝했던 회사가 ‘아주 나쁜 바보’로 입장이 추락하게 되면서 더 부정적인 이미지로 타격을 입습니다.

“왜 처음부터 문제를 인정하고 최고경영진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답이 곤궁하게 되죠. 하지만 실무자들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어떻게 처음 단계에서 ‘CEO가 지시한 사항이니 CEO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십시오’라 이야기할 수 있나? 누가 그런 이야기를 CEO에게 할 수 있겠나? 그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니까요.

이럴 때는 일단 법적 자문을 성실하게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법적 검토를 거쳐 가능한 유죄 범위를 넓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조언들이 있으면, 그대로 앞의 포지션과 같이 그 조언을 따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각종 추가 조사나 그 결과에 따른 연이은 소송들을 대비하기 위해 전략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죠. 단 최고경영진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책임회피와 부정만이 유일한 전략인가?’하는 점입니다. 사례 조사를 해보아도 수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딜레마에서 ‘바보’의 포지션을 선택했다고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일부 사례들을 보면 최고 VIP가 ‘나에게 책임이 있다. 내가 잘못했다’ 전략을 택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진정성과 투명성을 인정받아 신뢰를 강화했던 케이스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최고경영진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와 같은 부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회사를 서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 자체가 위기관리고 경영입니다. 평소 CEO는 임직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Do’s)’를 넘어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한다(Don’ts)를 자주 강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준법경영(Compliance)의 실행입니다.

최대한 자신이 책임질 위법적 결정이나 문제들을 스스로 경계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개선하는 경영을 해야 올바른 위기관리가 가능합니다. 그 반대인 경영자들이 있는 기업에서는 그 어떤 위기관리 전략이나 기법들도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위기 발생 후 처음부터 ‘바보’의 포지션을 선택한 기업들은 원래부터 ‘바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올바른 최고경영진이라면 ‘바보’ 포지션을 결정하고 우리가 그래도 ‘스마트’한 위기대응을 했다고 자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