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오큘러스 커넥트2 행사를 통해 새로운 가상현실 기기, 삼성 기어VR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갤럭시노트4, 올해 초 갤럭시S6 시리즈를 출시하며 기어VR 이노베이터 에디션 모델을 공개했지만 최근 갤럭시노트5와 갤럭시S6 엣지 플러스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기어VR을 출시하지 않은 바 있다. 내년 새로운 기어VR 시리즈를 출시할 가능성만 열어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24일(현지시각) 다소 갑작스럽게 삼성 기어VR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시장의 상황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어VR을 빠르게 선보여야 한다는 내부의 방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삼성전자는 그동안 가상현실을 꾸준히 자사의 경쟁력 중 하나로 강조해 왔다. 최근 폐막한 IFA 2015에서 가상현실 체험관을 공격적으로 활용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번에 공개된 기어VR은 기존의 삼성전자 가상현실 기기와는 사뭇 다르다. 먼저 꾸준하게 지적되던 범용성 측면에서 상당부분 기능이 개선됐다. 특정 스마트폰과 특정 가상현실 기기의 연결을 넘어 이번에 공개된 기어VR은 갤럭시노트5, 갤럭시S6, 갤럭시S6 엣지, 갤럭시S6 엣지 플러스와 연동된다. 새로운 폼 쿠션을 적용해 편리한 착용감을 확보했고 약점으로 지적되던 터치패드 면적도 늘었다. 무게는 전작보다 22% 가벼운 310그램이며 광학렌즈 시야각은 96도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올해 4분기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가격은 세금 미포함 기준으로 99달러, 한화로 약 12만원이다.

9할의 반가움

이번에 공개된 기어VR은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먼저 범용성 측면에서 상당히 신경을 썼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구사하던 특정 스마트폰 모델과 가상현실 기기의 매칭은 사실상 가상현실 기기, 즉 기어VR의 생명력을 단 6개월로 단축시키는 현상을 불러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삼성전자가 가상현실 시장을 진지하게 노린다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많이 팔기위해 기어VR을 도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록 최상위 프리미엄 모델이기는 하지만 새롭게 공개된 기어VR이 4개의 스마트폰과 연결된다는 점은, 결국 삼성전자가 진지하게 가상현실 시장에 뛰어들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초기 모바일 결제 솔루션 삼성페이도 ‘스마트폰을 돋보이게 만드는 부가창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으나 지금 그러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다. 삼성전자가 삼성페이를 하나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인정하고 이를 웨어러블 및 중저가 라인업에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기어VR도 비슷한 전략을 따라가는 분위기다. 가상현실은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다. 2030년 실감형 콘텐츠 시장은 무려 15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삼성전자가 100% 엄밀한 의미의 HMD(Head Mounted Display)를 아니더라도, 스마트폰과 가상현실 경쟁력을 꾸준히 연결시키는 대목도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일단 고무적이다. 아직 대중에게 가상현실은 익숙한 분야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는 기존 스마트폰을 두뇌로 삼아 저렴한 기어VR로 잠재적 고객의 시장진입을 강하게 유도하고 있다. NFC와 마그네틱 전송기술을 모두 지원해 범용성을 끌어올린 삼성페이와 비슷한 전략이며, 스마트폰 4개 라인업과 연동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스마트홈 시장이 열리고 초연결의 시대가 다가오면, 사물인터넷의 폭발력은 ‘집’을 중심으로 점차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기어VR은 진입장벽이 낮으며, 가장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기조가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그 사이 이용자들을 빠르게 자사 생태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가상현실 시장 자체가 ‘판’이 커지는 것도 삼성전자 입장에서 호재다. 소비자판을 준비하고 있는 오큘러스는 삼성전자의 든든한 우군이기도 하다. 여기에 소니도 프로젝트 모피어스(Project Morpheus)를 통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최근 폐막한 IFA 2015를 통해 소니는 내년 상반기 소비자용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는 게임업체 Valve와 함께 새로운 HMD인 VIVE(바이브)를 내놨고 구글의 카드보드는 저렴한 가상현실 기기로 각광받으며 순항중이다. 심지어 오픈소스로 풀리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도 가상현실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쟁자의 등장은 악재보다 호재로 봐야 한다. 아직 가상현실 시장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과 가상현실 기기를 연결하는 방식은 더욱 특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자와의 협력(오큘러스)과 경쟁(그 외 기기)은 건전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정책이 붙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실감형 콘텐츠 연구개발에 2018년까지 정부 1057억원, 민간 357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1할의 걱정

다만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경쟁력이 지나치게 스마트폰 중심에만 머무는 것은, 비전이지만 역설적으로 불안요소다. 일각에서 기어VR을 PC에 연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글로벌 시장에서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점과, 기능적 한꼐가 분명하다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콘텐츠 측면에서 기어VR이 오큘러스와 협력하며 발전하는 부분은 있지만, 아직 미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다양한 콘텐츠 생태계 동맹군의 존재는 확인되지만 이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 어떤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대한 로드맵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가상현실과 관련된 안정성 문제, 사회적 제도 등도 잠재적 돌발변수다. 글로벌 ICT 업계가 스트리밍을 키워드로 삼는 상황에서 무자비한 데이터 폭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가상현실이 의외로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감형 콘텐츠 시장이 빠르게 증강현실로 가닥이 잡힐 변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가상현실 기기이지만 증강현실에 가깝다. 즉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증강현실 기술이 가상현실 기술의 상위에 위치하게 되면 100% 허구의 세상을 창조하는 기술은 빠르게 사장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