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열하는 야구선수들의 이름을 보고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진갑용(삼성), 박재홍(SK), 김태균(한화), 이호준(NC), 마해영(롯데), 장성호(KT), 양준혁(삼성), 안경현(두산), 김동주(두산), 정성훈(LG), 홍성흔(두산)

야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라면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거포’들이다. 주자를 진루시키는 작은 안타보다는 누상에 진출해 있는 여러 명의 주자들을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는 2루타 이상의 장타 혹은 홈런으로 큰 점수를 내주는 선수들이다.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파워 스윙으로 투수가 던진 공을 가능한 멀리 날려버리는 것이 이들의 우선과제다. 그런데, 위 선수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더 있다. 아마 이것은 야구의 데이터를 꼼꼼하게 챙기는 '선수'가 아니라면 한 번에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 선수들의 공통점은 바로 ‘병살타(Double Play)’다. 2014년의 기록을 기준으로 통산 병살타를 가장 많이 때려낸 10명의 타자들이다. 병살타는 한번의 공격 실패로 아웃카운트 2개가 올라가는, 야구 공격에서 나올 수 있는 2번째로 나쁜 상황이다(3아웃이 한꺼번에 올라가는 최악의 상황인 삼중살(Triple Play)이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거포들의 딜레마다.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만큼 공격의 실패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이름난 거포들은 대개 삼진 아웃이나 병살타의 비율이 다른 포지션의 타자들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두산의 홍성흔은(2015년 9월 20일 KBO 기록 기준) 통산 병살타 227개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자로써는 전혀 반갑지 않은 기록이다. 2011년에는 프로야구 1시즌 최다 병살타인 22병살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9년에 두산 베어스에 첫 입단해 뛴 16시즌 동안 매년 약 14개의 병살타를 때려낸 셈이다. 이에, 혹자는 ‘꿈의 200병살타 고지를 넘은 유일한 선수’라고 비꼬기도 했다.(LG의 정성훈이 198개로 그 꿈에 점점 다가서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성흔이 ‘그저 그런’ 선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2008년 당시 롯데의 무서운 중심타선을 일컫는 홍대갈(홍성흔-이대호-가르시아)포의 중심으로 맹활약하기도 했으며, 두산베어스에서는 베테랑 주장으로써 위기상황마다 큰 홈런을 터뜨려 승리를 안겼다. 2015년 시즌까지의 통산기록도 타율 0.302, 득점 866점, 안타 2032개, 홈런 207개로 준수하다.

어쩌면, 거포들에게 있어 병살타는 승부사적 기질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들은 삼진을 당하더라도, 병살을 치더라도 호쾌하게 배트를 휘둘러서 득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홍성흔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파이팅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며 자신의 강한 승부욕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수에게 있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것을 비난할 팬은 아무도 없다. 홍성흔의 병살타 기록은 곧 그의 승부욕이다.

다만, 홍성흔이 소속된 두산베어스의 팬 입장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자주 나오는 병살타가 전혀 반가울 리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