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코앞이다. 요즘은 부모님들이 도시로 ‘역귀경’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아직은 자녀들이 고향의 집을 찾아 내려가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부모님을 뵈러 집을 찾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인간적 도리이자 본능적 회귀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합쳐지면 일대 사건이 된다. 명절이라는 일종의 형식에 맞추다 보니, 새벽부터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기 위해 역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고향집은 반가운 손님을 맞기 위해 음식을 하느라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느라 백화점이며 마트는 인산인해이다. 모두가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아마 정신과 의사가 아닐까 싶다.

정신과 의사에게 명절이란

명절 전은 물론이고, 명절 후에는 더 바쁘다. ‘명절 증후군’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늘고, 상담을 받고 있었던 사람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고민을 안고 오는 사람은 역시 주부들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며느리다. 매년 이맘때면 날카로운 가슴 통증을 동반하는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A 씨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20세 중반에 결혼을 하고, 첫 명절에 당한(?)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가슴 아파한다. 나름 처음 맞는 명절이라 고기와 과일도 준비하고, 음식도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갔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보자마자 며느리가 들고 온 음식과 선물 등을 마당에 던져 버렸다. 이유는 명절 2~3일 전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명절 준비를 하려면 일찍 와야 하는 것이 며느리의 당연한 도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 선생님으로 휴일이나 방학이 아니면 쉴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교사 며느리 얻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할 때는 언제고, ‘여자는 가방끈이 길면 쓸모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난생처음 그런 일을 당한 그녀는 지금도 명절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저리다. 남편도 잘해주고, 아이들도 제대로 성장하고 있지만, 명절만 되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A 씨의 병은 일종의 명절 증후군이다. 사실 명절 증후군이란 병명은 없지만, 명절을 전후로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불안과 우울감이 나타나고, 가슴의 통증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충격적인 첫 명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니, 일종의 우울증, 또는 화병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새로운 명절 증후군

예전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극한 대립을 명절 증후군의 핵심 원인으로 알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다. 며느리의 홀대로 명절이면 눈물짓는 시어머니도 적지 않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경제가 좋지 않으니, 다양한 명절 증후군이 존재한다. 올해로 칠순이 된 B 할아버지는 1남 1녀를 두고 있다. 남쪽 지방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자녀들의 간청으로 서울로 주거지를 옮긴 지 10년째다. 매사 의욕이 없고 불안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상담을 오신 것은 3년 전 일이다. 가벼운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어 소량의 항우울제 처방을 받고 평소에는 나름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문제는 명절이다. 아들딸 모두 맞벌이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휴가를 갈 시간이 없었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명절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늘 명절이면 노인 부부는 집에 홀로 남아 외로움에 떤다. 자녀들이 못된 것은 아니다. 10년 전 집을 떠나 올 때만 해도 자신들을 키워주신 부모님을 곁에서 편하게 모시고자 서울 생활을 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법.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외톨이로 만들어 버린 꼴이 되었다.

나이 든 어른들만 명절 증후군을 앓는 것도 아니다. 30대 후반의 C 양은 잘 나가는 홈쇼핑 사장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명절만 되면 불면과 불안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낮에는 집중이 잘 안 되어 일도 자꾸 실수를 하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유 없이 심장이 벌렁거려 불면의 밤을 보낸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명절이면 상담을 오는 그녀는 명절이 두렵다고 했다. 친척들이 모이면, 모두가 한 차례씩 ‘언제 시집가?’냐며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로 들렸는데, 몇 해가 지나가니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듯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면 더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한다. 명절 내내 한숨도 못 자고 간신히 버티다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 동안 잠만 자고 몸살을 앓는다. 초반에는 명절만 치르고 올라오면 금방 불안과 불면이 사라졌는데, 최근에는 평상시에도 편치가 않았다.

이밖에도 다양한 유형의 명절 증후군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취직 되었어?’ 또는 ‘왜 일 안 해?’라고 하는 소리에 명절이 지겹다. 결별을 한 이혼 남녀들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척하느라고 스트레스가 된다. 이혼 사실을 알게 되면, 뒷담화 때문에 더 괴롭다.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가 당하는 일이다.

즐겁게 놀자!

모든 사람의 명절이 힘든 것만은 아니지만, 명절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명절을 없애는 편이 좋겠다는 주장이 설득력 없게 들리지 않는다. 어쩌나 우리의 명절이 이처럼 고통스러워졌으며, 피하고 싶은 행사가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을까? 워낙 많은 인간관계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하나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듯이, ‘무릇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는 인식으로 보자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명절에는 무조건 재미있게 놀면 된다. 오랜만에 모여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고 조상을 추억한다는 명절의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서 남은 것은 즐거움뿐이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공존’해야 하지 않던가! 오로지 즐겁게 지내기 위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명절 노동이 즐겁지 않다면,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십시일반 나누어 하면 즐거워진다. 가족들의 모임이 수월하지 않다면, 서로 합의하여 자신들만의 명절날을 만들면 어떤가! 길도 안 막히고 번잡하지 않아 여유로운 명절을 지낼 수 있다. 결혼이나 취업 등 상대의 아픈 점을 건드리면 즐거울 리가 없다. 그런 이야기는 따로 만나 충고와 조언을 해주면 된다. 이번 명절부터는 좀 바뀌어야 한다. 행복한 명절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일단 재미있게 놀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