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 원장.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일맥상통함을 느낀다. 국가경영이 기업경영과 크게 다를 바 없고, 기업경영이 가정생활과 맥락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환경이 전혀 다른 일상에서도 우리는 창업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는데, 우리의 전통화된 놀이 중 하나인 ‘가위바위보’에서도 창업가에게 필요한 여러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제 가을이니 잠시 옛 시절 추억의 ‘가위바위보’를 회상해 보자.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많이 하는 가위바위보. 원래는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프랑스·미국·일본·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즐기는 놀이이기도 하다. 놀이의 규칙은 비슷하지만 나라마다 손 모형의 형상은 다르다. 인도에서는 코끼리, 인간, 개미가 등장하지만,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의 가위바위보는 땅, 물, 불이다. 땅은 물을, 물은 불을, 불은 땅을 이긴다. 우리의 가위바위보는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지금의 장년층은 어릴 적 가위바위보를 할 때 일본말 그대로 ‘쟝겐뽕(じゃんけんぽん)’ 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이 가위바위보로 바뀐 것은 우리가 독립한 뒤의 일인데, 윤석중 선생이 순우리말로 ‘가위바위보’란 이름을 지어냈다. 일본에서도 술자리의 여흥으로 벌인 것은 중국 풍속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사람들이 가위바위보를 상대에게 벌주를 건네기 위해 이 놀이를 생각해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본뜨지 않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로 정착됐다. 여하튼 성장하면서 누구나 해봤을 가위바위보에서 창업의 지혜를 구해보려 한다. 전략의 일부는 한국가위바위보협회(www.rpskorea.co.kr)에서 가져왔다. 첫 번째로 배우는 지혜는 첫 승부수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 첫 승부는 상대의 다음 패턴을 읽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내가 가위를 냈다가 이기면 그 다음 수로 상대는 무엇을 낼까? (상대가 보를 냈다가 졌다는 얘기가 되니까) 이번에는 내가 낸 가위를 이기기 위해 주먹을 낼 확률이 높겠지? 이런 패턴을 예상하고 보를 내면 이길 확률이 더 높다. 패턴은 곧 트렌드이며, 그 시발점을 잘 포착해야 사업이 순항한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소비자와 수익모델이 기 싸움을 벌이는 중심에는 늘 트렌드가 있다.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빅데이터 마이닝(Big Data Mining)’도 패턴을 그리는 기술이며, 트렌드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수단이다.

두 번째로 배우는 지혜는 ‘첫 수로 상대의 성향을 읽어라’이다. 필자는 대학 강의 중에 학생들의 무료함을 없애주기 위해 가끔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데, “나는 남자다. 남자는 주먹! 가위바위보!” 이렇게 시작한다. 두 번째 게임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먹을 내겠다고 예고했는데도 많은 학생들이 가위를 내밀어 지고 만다. 필자를 믿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인지심리가 작동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위바위보를 하다 보면 상대의 성향을 읽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가위 바위 보 게임 이미지. 사진=이코노믹리뷰 사진DB

첫 게임에서 ‘바위’를 내는 사람은 상당히 권위적이며 수직적인 성향이다. 이런 사람은 쉽게 도전하기도 하지만 쉽게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첫 게임 첫수로 ‘가위’를 내는 사람은 비교적 상대보다 더 일찍 내는 경향이 있다. 조급한 성격 탓인데 쉽게 시작하고 마무리가 서툰 타입이다. 사상(四象)체질에서는 하체보다 상체가 발달한 체형, 이른바 소양인(少陽人)에게 자주 나타난다고 원광대 한의학과의 한 교수가 귀띔했다. 반면 첫 게임 첫수에서 ‘보’를 내는 사람은 상당히 도전적인 성향이다. 이런 사람은 머리를 쓰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게 안전하다. 도전성향의 창업가는 최초 6개월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 기간 안에 자리 잡지 못하면 계속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프라인 업종에서도 임대료나 인건비 등 고정비 비율이 높은 점포업종은 특히 초기 승부가 중요한 만큼 창업 전에 미리 전략을 짜서 타당성을 강하게 검증해야 할 타입이기도 하다.

셋째, ‘무엇을 낼 것인지 미리 정하라’이다. 상대가 무엇을 내든 상관없이 사전에 생각해 놓은 순서대로 내는 전략, 즉 ‘초반 첫수 전략(Gambit Play)’이다. 잘 짜인 사업계획서에 따라 일의 순서에 따라 공격하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그때그때 느낌으로 내미는 ‘마구잡이 전략(Chaos Play)’도 통하는 시대가 있었으나, 승률이 33%에 그치고 있어서 사장된 전략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업종을 결정해 놓고도 창업하기 전에 불안하니까 자꾸 주변사람들에게 묻는다.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사람은 친구인데, 여기에 쓰기 민망하지만 대답은 크게 두 가지다. 만일 친구에게 물었을 때 “그 사업 잘 될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다면 “내 돈 아니니까 잃어도 상관없어”라는 말이고, “그 사업 안 될 것 같은데?”했다면 “네가 잘 되면 배 아플 것 같은데?”란 뜻으로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생각이 삐뚤어졌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도덕으로 가려져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사실 이 예시의 진정한 의미는 물을수록 대답해 주는 사람에 따라 ‘Yes or No’가 반복되기 때문에, 자신의 열정만 식어간다는 뜻이다. 업종을 확정해 놓고 나서는 이 사업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을 고민하고, 창업 자체의 가부를 물어보지 않는 게 열정을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언필칭 열정은 성공으로 가는 티켓이기 때문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얻을 수 있는 넷째 전략은 ‘셋 중 하나를 버려라(Exclusion Strategics)’다. 셋 밖에 안 되는데 하나를 버리고 둘만 번갈아 내면 상대가 쉽게 알아버릴 것 같지만, 오히려 차원 높은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농사에서도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어느 해에 배추가 풍년이어서 갈아엎었다면, 다음해에는 틀림없이 배추가 비싸져서 ‘금(金)치’가 된다. 어느 해에는 다들 배추를 많이 심었다가 손해를 보니까 다음해에는 심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래 올해 많이들 심어서 손해를 봤으니까 내년에는 사람들이 안 심겠지? 그러니까 내가 심으면 되겠다.” 이렇게만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사실 농사에는 온도나 날씨 등 온갖 변수가 있어서 이렇게 단순한 경제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 발만 더 나간다면 남과 다른 산출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섯째, ‘상대방의 손에 현혹되지 마라’이다. 상대가 의식적으로 손동작을 표출(Broadcasting False Tells)해서 은근슬쩍 보여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트릭(속임수)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동작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그 가능성은 낮다. 남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업종이 무엇이냐가 훨씬 더 중요하고, 어떤 업종이 지금 잘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적게 벌더라도 지속 가능성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한다. 한동안 커피가 잘 된다고 하자 4억~5억원씩 들여서 브랜드 카페를 차렸다가 지금 처치 곤란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창업비 4억~5억원이면 이 가운데 2억여원은 인테리어 비용일 텐데, 이 거금을 불과 1년 만에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 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덩달아 춤추지 말자.

여섯째, 내는 순간 다음 수를 생각하라(Backup plan). 창업자는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이란 그때까지 정해진 답, 즉 정답(定答)일 뿐 그 뒤에 일어날 일까지 그 답이 정답(正答)일수는 없다. 따라서 항상 그 다음 수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잘 나갈 때 잘 준비해 둬야 하는데 사람 심리가 그게 정말 어렵다. “잘 한다, 잘 한다”하면 승리에 취해서 다가올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이든 사업이든 가감승제(加減乘除)가 있고 경기순환이 있는데, 언제나 승승하기는 어려우니 내려갈 때를 생각해서 대응책을 마련해 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 다음 수를 생각하라는 것은 예측해 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측은 미래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나, 틀릴까봐 시도조차 못 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예측은 틀리라고 하는 것이며, 전화기를 발명한 그래험 벨(Alexander Graham Bell), 20세기 폭스사 사장 대릴 F. 재너크, 디지탈 이큅먼트사 창립자 케네스 올슨 등 이 세상을 움직였던 많은 사람들의 예측도 대부분 틀렸지만 세기의 리더로 군림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감각적으로 예측해볼 현상은 길거리에서도 얻을 수 있다. “꽃이 잘 팔리면 호경기 징조요. 복권 매출이 늘어나면 불경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고다.” 꽃이 잘 팔린다는 말은 개업하거나 이전하는 점포나 기업이 많다는 얘기요. 사람들이 복권을 많이 산다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본에서 시작된 ‘노변경제’ 얘기인데 이렇게 작은 움직임에서도 경기를 읽어보려는 습관을 가져 보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가위바위보에서 얻을 수 전략은 ‘변화를 줘라(Keeping it varied)’이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계, 상황판단, 심리, 손놀림의 기술, 그리고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불과 7~8년 전에는 500여개에 이르렀지만, 매년 10% 이상 폐점되다가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이런 레스토랑들이 요즘 잘 되는 뷔페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아마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 인근에 있는 한 한식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좌우에 작은 룸들로 구성되어 있고 중앙에는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만큼 잘 디자인된 홀이 있는 식당이었는데 색다른 콘셉트여서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식집을 이런 콘셉트로 생각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전에 술집이었던 곳을 약간 재배치한 것에 불과해서, 돈을 안 들이고 고급 음식점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앞으로 술은 점점 가정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폐점하는 술집을 잘 인수하면 고급 음식점으로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무심코 했던 가위바위보에서도 이렇게 창업과 경영에 도움이 될 만한 전략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고 철학이 있고 지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위바위보에서 얻은 지혜 중 으뜸은 “남이 내는 것을 얼핏 보고 나서 뒤늦게 내는 것은 반칙”이라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창업은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 떳떳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방팔방에서 지켜져야 할 규칙이지만, 특히 창업가는 꼭 알아두어야 할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