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웅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인류가 수천년간 다양한 정치체제를 발명하고 실행하며 심지어 공산주의까지 겪어봤지만 모두 실패하지 않았나. 우리는 현재 선악의 구도를 걷어낸 상태에서 리더와 따르는 자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며, 이러한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건강한 소통의 방식이 민주주의라는 기술적 제도와 만났을 때 '그나마 쓸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필연적으로 영웅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때로 영웅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ICT 업계에서도 뚜렷하다. 우리는 영웅을 갈망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강호를 평정한 샤오미나, 드라마틱한 인생의 굴곡을 딛고 자신의 제국을 건설한 애플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증오는 영웅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간혹 이러한 열망이 심해지면 일각에서 '덮어놓고 좋아죽는' 사람들이 생긴다. 팬이나, 마니아, 혹은 팬덤이라는 이름의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영원불멸의 절대지존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좁고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자신들의 영웅을 위해 산다. 최근 분위기로 국내에서 따지면 쿠팡과 김기사 정도가 되겠다. 쿠팡 이야기만 나오면 '혁신의 대명사, 한국의 아마존'이 따로 없다. 김기사 이야기만 나오면 '스타트업의 귀감, 최고의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연이어 등장한다.

물론 대단한 영웅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들을 향한 냉정하고 차가운 분석이 없다면 이는 영웅을 단숨에 죽이게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국정감사 내용이나 특허권 및 '실제 훌륭한 기술이냐?'라는 담론이 일렁이는 것은 심상치않다.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올 수 있으며 신봉자들이 그 잔인한 연극의 씬스틸러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ICT로 영역을 좁혔을 때 가장 영웅에 가까운 이는 누구일까? 자신을 신봉하던 사람들이 잔인한 연극의  씬스틸러가 될 가능성이 제일 낮은 기업은? 애플이다.

▲ 아이폰6S. 출처=중계 캡쳐

"점점 가까워진다"
애플이 9일(현지시각) 아이폰6S를 비롯해 새로운 라인업을 대거 발표했다. 당시 '왜 애플은 새벽 2시에 행사를 하는거야?'라는 황당한 투덜거림으로 눈을 부비며 중계를 지켜본 이들은 열이면 아홉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뭐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네?" 시장의 생각도 비슷했던것 같다. 신제품 발표가 있기 전 조금씩 오르던 애플의 주가는 발표가 시작되자 서서히 하락해 전날보다 1.92% 하락한 110.15달러로 마감했다. 세상에서 돈냄새 맡는 경지로는 최고의 대가들이 모인 곳의 반응이니. 믿을만 하겠다.

자세히 보자. 아이폰6부터 시작된 패블릿 기조는 여전했다. 스티브 잡스는 손에 쏙 잡히는 스마트폰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패블릿이라니. "삼성전자 따라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애플펜슬은 어떤가. 스티브 잡스는 스타일러스 펜을 두고 명쾌하게 정의한 사람이다. 그는 2007년 첫 아이폰을 발표하며 스타일러스에 대해 '웩'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패드 프로용 애플펜슬이 등장했다.

3D 터치는 어떤가.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된 에어뷰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많으며 라이브포토도 프리미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능이라는 후문이다. 음성인식 시스템 시리와 모션 월페이퍼 등도 마찬가지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시에 언론에서는 애플의 행사가 종료되고 '혁신은 없다'는 수식어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애플은 스티브 잡스 시절의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뜨거운 한 방이 없었으며, 당연히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원 모어 띵'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 애플펜슬. 출처=중계 캡쳐

애플의 마법은 멈췄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재프리의 애널리스트 진 문스터는 애플이 아이폰6S로 전작 대비 고작 4%의 판매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아이폰 의존도가 높아지는 애플 입장에서 이는 심각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기술적 혁신도 없는 아이폰이라니.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생각을 달리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며, 그 누구도 이 지점에서 '엄청난 외연적 확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새로운 ICT 식민정책이 눈부시게 성공해 그 과실이 스마트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개척지인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수익이 갑자기 곱절로 늘어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마구잡이로 산다면 모를까. 이제 스마트폰 시장은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포스트 스마트폰을 찾는 일이 먼저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애플이 아이폰6S로 전작 대비 고작 4%의 판매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견에 주목하기 보다는 애플이 점찍은 포스트 스마트폰, 아니 포스트 아이폰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일단 떠오르는 것은 애플워치다. 하지만 웨어러블 시장이 아직 이용자에게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하지 못했고(페이와 같은 핀테크 서비스가 유력하지만 이도 스마트폰과 범위가 겹치기에) 저가의 스마트밴드에 머문 이용자의 욕구가 하루아침에 고가의 스마트워치로 옮겨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심지어 잘 팔리는 분위기도 아니다. 가능성만 확인하는 선에서 접어둬야 한다.

오히려 스마트홈이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물론 갑자기 애플의 스마트홈이 '뜨는 일'은 없겠지만, 일단 이 상황에서 애플의 의미심장한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키워드는 인공지능과 자동차다. 왜. 너무 뜬금이 없는가? 2007년 스마트폰은 더했다.

▲ 아이패드 프로. 출처=중계 캡쳐

인공지능과 자동차는 연결되어야 한다
현재 포스트 스마트워치 후보군이 부상하며 웨어러블의 가능성이 부각되고, 이를 바탕으로 초연결의 시대를 잡아가는 거대한 흐름이 몰아치며 모바일 혁명은 전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기에서 온디맨드의 가능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 공유경제의 재발견으로 현재 다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온디맨드는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플랫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모바일 시대의 O2O 사업이 약간의 온디맨드 모델을 추구하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온라인의 재화가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윤을 발생시키고, 여기에 기술의 발전이 더해져 완벽한 구동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물인터넷은 연결 이후의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센서기술의 발전으로 콘트롤 타워의 의지를 읽어서 자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은 삼성전자의 스마트씽스 허브와 LG전자의 스마트씽큐 센서에도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온디맨드는 하나의 관념이자 방식으로 사물인터넷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누군가 알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은 온디맨드의 방향성을 가지기 때문이며, 이는 사물인터넷 패러다임에서도 유효하다. 여기에서 온디맨드의 치명적인 약점인 경제적 불평등도 사물인터넷의 극적인 발전으로 상당부분 털어낼 수 있다.

여기에서 애플은 최근행보에서 의미심장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이폰 의존도가 매우 높아지며 역설적으로 위기설에 휘말린 애플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86명 이상의 박사급 인재 영입에 나섰다. 이미 애플은 지난해 9월 독일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벤츠의 연구개발(R&D) 책임자인 요한 융비르트를 영입하기도 했다.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웰(Swell)', 소셜 미디어 분석 업체 '톱시(Topsy)', 지능형 개인 비서 앱 개발업체 '큐(Cue)'도 인수했다.

애플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범위를 넓히면 결국 사물인터넷 전략이다. 홈앱으로 시작되는 자사의 사물인터넷 생태계를 서드파티를 통해 살 찌우고 내부에 iOS를 적절하게 작동하는 방안을 택했다. 여기에 자동차라는 키워드가 들어간다.

지난 5월 6일(현지시각)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어바브 아발론에서 활동하는 애널리스트 닐 사이바트의 발언을 인용해 애플의 연구개발 비용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차세대 제품을 위한 준비작업일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애플의 연간 연구개발 비중을 보면 2004년 5.9%를 기록한 이후 2012년 2.2%까지 평이한 수준으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다가 2013년 2.6%로 반등, 이후 2014년에는 3.3%까지 올랐다. 닐 사이바트는 애플의 연간 연구개발 비중이 2015년 3.4%, 2016년에는 3.7%까지 올라갈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왜 애플은 2013년 이후 연구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했을까? 닐 사이바트는 “미래형 개인 수송 부문에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러한 행보는 결국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자율주행차를 사물인터넷 시대의 화두로 봤기 때문이며, 동시에 인공지능을 온디맨드처럼 삽입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애플의 전략이다. 여기에 애플은 사생활을 보호하며 인공지능을 성공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 애플카 추정 이미지.

마케팅과, 방향성의 변화
지금까지 큰 그림에서 애플이 보여준 변화를 봤다면, 이제 소소한 지금의 전략변화에 집중할 차례다. 먼저 팀 쿡 체제의 애플이 보여주는 스티브 잡스 부정이다. 과연 부정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이폰6S가 공개되자 대만의 한 애니메이션 업체가 재미있는 영상을 공개한 적 있다. 행사장에 나타난 스티브 잡스의 유령이 팀 쿡을 마구잡이로 구타하는 영상이다. 하지만 실제 스티브 잡스의 유령이 나타나도 그럴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스티브 잡스는 '말 바꾸기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연한 전략이다. 오히려 최근 벌어지는 애플의 변화는 스티브 잡스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여기에서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쿠팡이 로켓맨을 훌륭한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한 바 있듯이, 스티브 잡스라는 최고의 '상품'을 가진 애플이 이를 표면적으로 부정하는 스탠스를 가지며 또 한 번의 이슈 파이팅을 해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무형의 변화다. 유형의 실제적인 변화는 없을까?

먼저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아닌, 실제 단말기를 업그레이드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폰 의존도가 높아진 미국 통신사는 가입자를 잡아두려하지만, 애플은 가입자들이 통신사를 갈아타는한이 있더라도 자사의 단말기가 많이 팔리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가 아이폰 모델 기준, 24개월동안 매달 32달러41센트(약 4만 원)를 내면 매년 신제품으로 교체할 수 있는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은 미국 통신사의 시름을 깊어지게 만든다. 가격으로 유리한 정책은 아니지만 점점 짧아지는 스마트폰 교체주기를 고려하면 꽤 괜찮은 정책이다. 비슷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루나폰의 SK텔레콤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정책도 재미있다. 애플펜슬을 달아 스마트 키보드까지 공개했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노트북이 떠오른다. 조금씩 시장에서 잊혀져 가는 패블릿의 가능성을 노트북 시장 공략으로 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때에 따라서는 B2B고 공력 가능하다. 여기에 MS와 어도비와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또 애플펜슬과 아이패드 프로로 환자의 뼈 이미지를 3D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의미심장하다.

결론적으로 애플은 자기부정으로 마케팅적 효과를, 또 이 지점에서 방향성의 변화까지 명확하게 했다. 큰 그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쟁사와 닮아가는 것 까지 불사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변화하는 곳을 경계하라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6S가 공개된 직후 영국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Ummm...S-Pen(음...S펜)’이란 글로‘#SoundsFamiliar'라는 멘션을 남겼다. S펜과 애플펜슬의 유사섬을 지적한 셈이다. 물론 이는 전통적인 마케팅이다. 밴드게이트때도 그랬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11일(현지시각) “이것은 폰이 아니다. 이것은 갤럭시다(It’s not a phone, it’s a Galaxy)”라는 제목의 TV 광고를 "아이폰이 아니라면 아이폰이 아닌 것("If it's not an iPhone, it's not an iPhone")이라는 광고에 대한 맞대응 형식으로 공개한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애플은 이미 마케팅적 경쟁력을 가진 상황에서 애초부터 불분명했던 스티브 잡스의 의지를 마음대로 요리하며 스스로의 방향성을 잡고 있다.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내부의 팬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고, 외부의 설득에도 제대로 먹힌다. 여기에 큰 그림까지 진행되고 있다. 지금 그 누가 이러한 변화를 동시에 할 수 있는가?

물론 애플이 무조건 최고의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러한 전략이 모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하나의 주장으로 여기길 바란다.

하지만 제일 영악한 반전의 기회를 쥐고 있는 것은 애플이 분명하다. 국내기업이, 라이벌이 애플을 비웃지 말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그 전에 '나는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나'에 답해야 한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