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쓴 책을 보면 ‘기업이나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고요. 근데 참 고민이 많습니다. 대표님을 포함해서 우리 임원들끼리도 서로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있어서요. 그게 진짜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조직이 있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필자도 그런 조직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라’는 조언은 해석에 따라 여러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보수적으로 해석하면 이야기한 그대로 위기가 발생 했을 때 자사의 입장에 대해 CEO부터 일선직원들까지 정확하게 동일한 메시지를 내외부로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아주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경지이기는 합니다.

반면 조금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하나의 목소리’라는 의미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공식 입장 외에는 어떤 다른 메시지도 커뮤니케이션되면 안 된다’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전자에 비해 조금 실현 가능성이 높지요. 하지만 이것도 힘든 기업이나 조직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사과한 내용에 대해서도, 일부 장관이나 여당 국회의원들이 “그게 사실 무슨 잘못이냐? 사과할 주제가 아니다”라고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공적이나 사적으로 내는 경우들이 그렇습니다. 공중들이 볼 때에 같은 조직이라 여겨지는 데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니 문제라 지적 받지요.

필자는 컨설턴트로서 후자의 해석에 더 비중을 둡니다. 그래도 조금 더 실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의 공식 입장에 구성원 모두가 집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커뮤니케이션 창구들을 정렬하라’는 조언입니다. 회사의 공식 입장이 이미 정해진 이해관계자별 창구들을 통해 일사불란(一絲不亂,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하게 커뮤니케이션되는 체계를 지향합니다. 그 외 다른 비공식 및 사적 창구들은 위기 시에는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자체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관리(Strategic Communication Management)라고도 불릴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이 ‘한 목소리’ 체계도 실제로 유지하는 데는 많은 평소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기업에서는 위기나 중요한 논란이 발생하면 ‘자사 공식입장과 주요 질의 응답팩’을 CEO를 비롯한 임원들과 팀장들에게 즉시 공유하는 체계를 갖춘 곳들이 있습니다. 홍보팀 자체가 상당히 전략적인 리더십을 가져가는 활동이죠.

이런 기업에도 들어가서 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홍보팀에서 그런 걸 공유해 주는지 몰랐습니다”, “홍보팀이 보내오는 걸 보면 너무 어렵고 길어요. 저희 부서와 관련도 적은 것들이어서 잘 읽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공유하면 다 끝나는 건가요? 사실 저희 전문부서 입장에서 보면 그 메시지들에는 허점들이 많거든요.” 이런 반응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기업이면 훌륭한 방향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보팀이 직접 부서별 피드백을 청취해서 개선하면 되는 반응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이런 체계를 따르지 않습니다. 웬만한 위기나 논란이 발생해도 ‘전사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드는 기업들이 흔치 않은 것입니다. 언론에 해명하는 홍보팀의 메시지가 있고, 규제기관에게 해당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대관팀의 메시지가 또 따로 있습니다. 법무팀의 해석이 조금 다르고, 영업팀원들이 일선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메시지가 또 다른 것입니다. 마케팅은 또 여러 채널들을 통해 나름대로의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이런 난맥상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조직 내의 사일로(Silo, 회사 내에서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부서)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느껴집니다. 심지어 CEO의 개인적 생각과 메시지까지도 다르다면 그건 재앙이 되는 거죠.

관리(Management)하기 위해서는 ‘통합’해야 합니다. ‘마주 앉으라’는 조언도 이와 연결된 의미입니다. 특정 위기나 논란이 발생했다면 해당 주제와 관련된 주관과 유관 부서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응 메시지들을 통합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리된 메시지는 곧 ‘전사적 공식 메시지’로서 위력을 부여 받아야 합니다. 규정에 따라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이 메시지만 일관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전사적 공감대도 형성되어야 맞습니다. 창구 일원화는 그 다음이 됩니다.

매번 위기관리 성공과 성공적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CEO의 관심과 관여’라 답하곤 합니다. 이 ‘한 목소리’ 개념도 CEO의 관심만 있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합니다. 가끔 대기업 CEO를 만나보면 ‘우리 회사는 말들이 너무 많아요. 여기저기서 말들이 밖으로 많이 나가 골치 아픕니다’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 대부분이 “그래서 말인데요. 회사의 공식 메시지가 있다. 모두가 그 메시지를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 절대 허락되지 않는 창구는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다. 이 세 가지만 전사적으로 심어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CEO의 관심이란 이런 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