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사찰음식은 참 묘한 음식이다. 절밥이라서 경건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청정무구한 맛과 향기에 괜스레 숙연해진다. 혀에 착착 감기는, 달다 못해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탓일까. 처음 맛볼 땐 심심한 맛에 당황하지만 한두 번 계속 접하다 보면 그 담담함이 그리워진다.

승가의 음식인 만큼 오신채(五辛菜, 매운 맛과 강렬한 향의 파·마늘·부추·달래·흥거 5가지 채소)와 고기를 철저히 배제한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각종 장은 물론 맛국물, 맛가루, 효소 등을 기본으로 한다. 인공조미료 사용을 금하고 김치에도 젓갈을 넣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정갈하다. 게다가 식재료 손질에서 조리까지 온갖 정성이 가득 담긴다.

만들 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건강을 위한 슬로푸드(slow food)로 제격이다. 종교를 떠나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건강식이자 무공해 자연 밥상인 것이다. 사찰음식의 이러한 진가를 제대로 알고 먹어야 감동도 배가 된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편 템플스테이 건물 5층에 있는 ‘발우공양’.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직접 운영하는 정통 사찰음식점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아담하면서도 고운 한옥의 안채가 펼쳐진다. 수묵화 액자 몇 개만 벽에 걸린 단순한 인테리어가 여백의 미를 빚어낸다. 한지 전등에서 발하는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다.

밖에 이렇다 할 간판이 없는데도 점심·저녁시간을 가리지 않고 항상 손님들로 꽉 찬다. 마음의 눈을 앞세워 로하스적인 스님의 밥상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가 싶다. 편안한 온돌방 대신 일부러 자세를 꼿꼿이 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린다. 사찰음식을 처음 대하는 예의라고 해두자.

이곳의 메뉴는 음식을 담은 발우 수에 따라 10합 바라밀상, 12합 법륜지상, 15합 깨달음상 등 3가지 코스로 준비돼 있다. 문미영 매니저는 “나물과 비빔밥만 사찰음식의 전부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오시는 손님마다 다채롭게 구성된 요리에 놀라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제대로 체험해 보고 싶다면 가짓수가 제일 많은 깨달음상을 주문할 것.

현미쑥죽, 더덕 샐러드, 삼색전, 계정해삼합, 연과채와 연근삼색찜, 동충하초 버섯찜, 산삼과 마 구이, 콩불고기 명이쌈, 능이초회, 버섯강정, 산나물들깨즙탕에 이어 연잎 밥과 국, 찬, 후식 등이 차례로 상에 오른다. 이 중 여리여리한 연꽃잎 위에 알록달록 색의 향연을 펼쳐낸 ‘연과채와 연근삼색찜’은 젓가락을 대기 아까울 정도로 그 자체가 예술작품에 가깝다.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초절임한 연근에 밤채와 석이채, 연자씨를 싸서 오디효소 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상큼한 향이 일품이다. 녹차·치자·백년초 물을 들인 찹쌀을 넣어 찐 연근은 어여쁘기까지 하다. 여기에 새송이버섯을 곁들이니 담백함 속에 알싸한 별미를 느낄 수 있다.

‘산삼과 마 구이’는 먹자마자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다. 지리산 4년근 삼을 잎까지 돌돌 말아 꿀에 묻혀 얼른 입 속으로 넣는다. 뒤이어 새콤한 유자 소스를 바른 마를 베어 문다. 싱그러운 풀내음과 함께 달콤 쌉싸래한 맛이 코끝까지 기분 좋게 전해진다.

살짝 튀긴 생표고를 고추장 소스에 버무려 매콤하게 즐기는 버섯강정도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바삭함 속에 숨겨져 있던 버섯의 부드러움이 마치 연한 고기를 씹는 듯하다. 유기농 연잎에 찹쌀과 은행·대추·밤·검은깨를 넣어 두 번 쪄낸 연잎 밥도 풍미가 꽤나 특이하다.

식사의 마무리로 나오는 산야초 부각과 과일 칩이 어우러진 주전부리는 아삭한 식감이 그만이다. 고구마, 감자, 냉이, 연근 등을 튀겨내고 사과와 오렌지는 얇게 썰어 소스를 발라 오븐에 8시간 정도 구워냈다. 약간 짭짤한 게 맛있다.

식사와 곁들이는 반주도 이곳에서는 조금 더 특별하다. 일반 주류가 아닌 곡차다. 경남 산청 금수암에서 솔잎을 숙성시켜 만든 송차는 특유의 깔끔한 맛으로 인기가 좋다. 저녁 시간엔 송차를 한두 잔 나누며 사찰음식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발우공양의 모든 레시피는 총책임을 맡고 있는 금수암의 주지승이자 사찰음식의 대가로 불리는 대안 스님이 개발한다. 일주일에 한 번 지리산에서 공수한 청정 식재료를 사용하고 신선한 제철 재료로 계절 메뉴를 구성한다.

재료는 최상이지만 가격대는 다른 사찰음식점보다 저렴하다는 점도 장점. 그릇 하나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다. 사찰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원주 옻을 9번 칠한 인간문화재 김을생 선생의 물푸레나무 발우를 쓴다.

이곳의 음식을 즐기다 보면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삶의 철학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찰음식이란 마음 밭에 선한 씨앗을 뿌리는 음식”이라는 대안 스님의 말처럼 몸과 마음,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식탁 위의 명상’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메뉴 : 10 바라밀상 25,000원, 12 법륜지상 36,000원, 15 깨달음상 53,000원(1인분), 운영 시간 : 점심 1부 오전 11시 40분~오후 1시 20분, 점심 2부 오후 1시 30분~오후 3시, 저녁 오후 6시~오후 9시(예약제),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71번지 템플스테이 5층, 문의 : 02-2031-2081


발우공양이란?
사찰에서 행하는 스님들의 식사법이다. 식사하는 행위 또한 수행의 일환인 사찰에서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느림과 여유를 바탕으로 한 우주의 밥상이라고 할 수 있다. 먹는 시간만큼은 마음을 다해 음식을 살피고 맛을 음미하며 몸에 잘 녹아들도록 천천히 소화시킨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오감을 통해 음식이 자기 몸으로 가는 것을 느낀다.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