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항상 존재… CEO의 끊임없는 혁신 의지가 탈출구

연구개발(50%), 브랜드경영(30%), 인재경영(10%), 기타(10%). 불로기업의 조건들이다. 30대 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불로기업의 조건을 꼼꼼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라는 점이다. 삼성은 연구개발과 인재경영을, 현대차는 브랜드경영과 인재경영을, SK는 연구개발과 브랜드경영을 우선시 하고 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 브랜드경영, 인재경영은 기업경영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 됐다.

그렇다면 모든 기업을 불로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불로기업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똑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잘 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기업이 어떤 조건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얼마만큼 실행에 옮기고 있는지의 여부다.

조원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등 기업에게 배우는 성장 전략’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기업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전략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1등 기업이라고 해도 최근 경제환경에선 CEO의 경영전략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후발주자가 1등 기업으로 올라서고, 1등 기업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경고다.

모험과 도전정신 없인 성장 없다

경제학의 거장 피커드러커는 기업가정신에 대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 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혁신과 도전, 미래신성장 마련에 나서려는 의지를 기업가정신으로 봤다. CEO의 기업가정신이 발휘됐을때 지속발전이 가능 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활용품 생산 기업인 P&G가 대표적인 사례. P&G는 2005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1등 기업으로 올라섰다. 수십 년 간 생활용품 시장에서 1위를 고수했던 유니레버를 뛰어 넘었다. P&G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CEO 앨 런 래플리가 취임하면서부터.

그는 취임과 동시에 혁신을 강조했고, 기술개발과 인재경영을 경영전략의 중심에 뒀다. 기술개발과 인재경영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제품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대량생산되던 탈취제를 분무기에 넣어 분무식 탈취제를 선보였고, 세탁소에서만 사용되던 세제를 가정에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 것이 주효했다. CEO의 경영전략이 세계 1등 기업, 불로기업의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코스트코도 P&G와 비슷하다. 코스트코는 2010년 1인당 소비 매출에서 월마트를 1.3배, 종업원 1인당 매출은 2.7배나 앞질렀다. 세계 최고라 불리던 월마트가 체면을 구긴 이유는 뭘까.

코스트코의 CEO인 짐 시네걸이 구매력이 높은 사업자와 고소득층의 고객을 선별해 집중하는 회원제 중심의 경영전략을 펼쳤고, 적중했다. 두 사례는 CEO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불로기업의 초점을 기업가정신에 맞춘 이유다.

설문조사는 이렇게 진행됐다. 대한상공회의소 기준(2010년 12월)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삼았다. 지주사와 계열사가 포함됐다. 이들 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불로기업(100년 기업)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대부분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장수기업들로 자신의 회사의 특징을 중심으로 답해달라고 요청했다. 6·25전쟁과 국제 금융위기, 세계 금융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버티고 있는 기업인만큼 특별한 게 있을 것이란 배경에서다.

국내에는 100년 기업이 흔치 않다. 상장사 가운데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은 두산(1896년), 동화약품공업(1897년) 정도다. 국내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다. 거래소 상장 기업의 평균 연령이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30대 그룹 임원들의 설문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100년 기업을 넘어 불로기업으로 성장하는 곳의 기업문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발표한 ‘상장기업의 평균수익률 분석’ 보고서를 보면 40년을 넘은 뒤부터 경영 성과가 좋아진다고 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 체질이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또 기업의 성장은 위기와 성장통의 극복인 만큼 다양한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도 중요하다고 했다.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된 환경에 맞는 경영전략의 구사가 필요하다는 것. 모두 CEO의 기업가정신과 일맥상통한다.

LG화학은 기술개발에 대한 CEO의 의지가 강해 1990년대부터 2차전지 기술개발에 나섰고,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전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3세 경영인 창의력이 성패 가늠

30대 그룹 임원들은 불로기업의 제1조건은 연구개발·기술력(50%)이라고 답했다. 기업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게 이유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지금은 경영의 시대다. 국내 30대 그룹의 CEO는 경영2∼3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립 초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촛점을 맞춘 영웅적 기업가정신이 필요했다면, 경영전략의 기업가정신의 발휘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창업주와 달리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야하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연구개발·기술력이 불로기기업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 것으로 풀이된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경영전략과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선 연구개발에 나서기 위해선 CEO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의 투자를 통한 불로기업의 도전은 CEO의 몫인 셈이다. 사례는 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18년 연속 세계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론 드물게 지속 발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재계 안팎에선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당시 이 회장이 물심양면으로 기술개발의 투자에 나섰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 세계 시장 1위로 도약했다.

1988년 4MD램 개발 시 반도체 회로를 밑으로 파는 트렌치(Trench) 방식에서 회로를 쌓아 올리는 스택(Stack)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선진 업체들이 기술 방식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빠르게 결정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이 주효했다.

브랜드 경영 지구촌 곳곳서 성과

브랜드경영(30%)도 불로기업의 조건으로 조사됐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 하나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리온 초코파이, 한국야쿠르트 도시락, 오뚜기 마요네즈, 롯데칠성의 밀키스는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밀키스는 러시아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진출 10년 동안 282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탄산우유 제조 기술이 바탕이 됐다. 까다로운 제품 공정으로 유사제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다.

롯데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주력사업인 롯데백화점을 2007년, 롯데호텔을 2010년에 모스크바에 출점하며 롯데플라자를 형성하기도 했다. 롯데제품은 믿을 만 하다는 생각이 러시아에 자리 잡자 사업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한국야쿠르트의 도시락은 밀키스보다 더 인기가 좋다.

러시아 컵라면 시장 1위. 시장점유율 55%를 넘는다. 라면 전체 시장을 놓고 봐도 40% 이상을 기록, 국민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매운 맛이 덜해 순한 맛이 적중했다.

특히 1997년 러시아의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아 해외 기업이 철수했던 가운데 한국야쿠르트만이 잔류했고 국민기업이란 인식도 한몫 거들었다.

오뚜기는 마요네즈란 단일 품목으로 한해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현지에서 품귀현상이 일고 있어 최고의 식자재란 꼬리표가 붙었다.

이들 기업은 국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해외에서 꾸준한 매출을 올리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인 바 있다. 브랜드경영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꼭 필요한 불로기업의 조건인 셈이다.

이밖에 혁신 작업, 인재경영, 가업승계 등이 불로기업의 조건으로 꼽혔다. 모두 CEO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다. 불로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CEO의 신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신성장동력 사업에 대한 도전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100년 기업을 넘어 불로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요 경제단체 기업가지수 살펴봤더니

30년째 하락세 한국경제 ‘경고등’


“한국은 기업가정신이 살아있는 나라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국내 기업인의 정신을 극찬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상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며 발전을 거듭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국내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대한상의가 조사해 발표하는 기업가정신 지표를 보면 매년 하락세를 보인다. 1977년 72.3을 기록했지만 1980년 22로 떨어졌다.

2000년 들어 7%에 머물다 2005년엔 4.5%대로 떨어졌다. 대한상의 기업가정신지표는 사업체 수 증가율, 설비투자액 증가율, 민간연구개발비 증가율 등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평균으로 한 대리지표다.

한국은행이 고안한 기업자 정신지수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2000년 53.2였던 지수는 2007년 18로 떨어졌다. 제조업체 증가율과 실질 설비투자 증가율,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민간연구개발비 증가율을 감안해 계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기업가지수도 마찬가지. 2000년 61.1에서 2007년 24.2로 떨어졌다. 사업체 수 증가율과 실질 설비투자 증가율, 수출 증가율을 종합해 산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의 투자와 창업 감소를 뜻한다.

정부, 기업 미래준비지수 만든다

정부가 기업의 미래 생존능력을 평가하는 ‘조직 미래준비지수’ 개발에 나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조직의 미래 대비 능력을 정량화하는 지수를 만들 예정이다”고 밝혔다. 조직 미래준비지수는 지속성장이 얼마만큼 가능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수다.

조직 미래준비지수는 기업의 재무제표 등 공시자료, 최고경영자(CEO)와 전문가 집단 설문조사, 과거 국내ㆍ외 기업의 실패ㆍ성공사례 연구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재정부는 조사 자료를 기초로 미래 생존에 필요한 핵심 변수를 도출하고 회사 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지수화 하기로 했다. 특히 설문조사는 미래시장 분석, 사고의 전환, CEO의 마인드, 평생교육, 신기술개발, 창의성 등을 핵심 요소로 선정해 진행된다. 항목별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지수를 산출하는 방식이 적용될 예정이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