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저가(Low-end)’ 시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압도적인 브랜드가 아니라면 PB(Private brand)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제품들로 구성된 시장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8일 한국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불황기의 소비 패턴은 양극화보다 저가로 빠르게 전환한다”며 “일류 브랜드 기업들도 저가시장의 확대를 경험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분간 국내에서 여유가 없는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생필품 가격 하락의 시대가 지속할 것”이라며 “압도적인 브랜드가 아니라면 스마트한 저가 전략, 제조사개발생산(ODM), 소매업체의 브랜드 상품인 PB 시장 참여가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형편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부분의 영역에서 ‘싼 것’들이 프리미엄을 압도하는 시대 장기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PB의 급격한 확산이다. 아직까지 유통업 내에 PB 비중이 낮은 한국의 경우, 앞으로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 간편식)을 비롯한 각종 음식료품 뿐만 아니라 의류, 퍼스널케어, 화장품,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PB의 영역은 빠른 속도로 확장될 것으로 분석됐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한국 유통업체들은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나 제품 포트폴리오 차별화를 위해 PB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브랜드(National brand)로 끝까지 살아남을 기업들은 극소수에 그치고, 많은 기업들이 저가 시장이나 PB 시장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류 지향’에 동참하는 日기업들

최근 들어 일본의 소비 경기는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직까지도 일본은 ‘저가’의 천국이다. 많은 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저가 시장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공략하거나, 혹은 확대되는 이 시장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며 성장해 왔다.

특히 맥주 시장이 좋은 예를 보여준다. 아사히 그룹에 따르면, 일본 맥주 시장에서는 1990년대 출현한 ‘발포주’가 빠른 속도로 일반 맥주 시장을 잠식했고, 2000년대 중반 새로 나온 ‘New genre’ 맥주는 더 빠른 속도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결국 90년도 초만 해도 일반 맥주(캔당 225엔) 100%이던 시장이 이젠 발포주(happoshu, 캔당 165엔)가 14%, New genre(캔당 145엔)가 35%를 차지하는 ‘저가형’으로 바뀌었다.

또 일본 최대 편의점 채널인 ‘세븐 일레븐’은 값싼 PB 비중을 아직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고, 그룹 매출의 50%를 PB에서 창출하고 있다. 2013년 약 2조엔 수준이었던 이 그룹의 PB 매출 규모는 최근 연평균 15%씩 성장, 2016년에는 그 규모가 약 3조엔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연간 100억원 이상 팔리는 PB 아이템이 140여개에 이를 정도고, 이런 대형 아이템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또 대표 PB인 ‘세븐 프리미엄(Seven Premium)’은 출시된 지 8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1조엔 규모로 급성장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국도 저가 트렌드 지속될 것”

 

일본의 경우 PB 시장의 성장은 유통업체들의 승리로 끝났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트렌드가 형성될 것이라는 게 한국희 연구원의 얘기다. 일본은 거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PB를 운영하고 있고, 그 적용 품목도 거의 모든 제품에 해당될 정도로 이 시장이 발달했다.

일류 브랜드 업체를 PB로 포섭한 일본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PB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을 통해 업계 선두 지위를 강화했고, 그 덕분에 생긴 사이즈의 힘으로 최근에는 일류 제조업체들도 PB 파트너로 포섭했다. 코카콜라(Coca-Cola)나 산토리(Suntory)가 세븐일레븐을 위한 PB 캔커피를 만들고, 기린(Kiron)은 PB 맥주를, 카오(Kao)는 섬유유연제를 만든다. 모두 각 업태에서 1~ 2위를 다투는 브랜드 회사들이다.

2013년 현재 한국의 PB 제품 비중은 평균적으로 약 1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PB 침투율이 가장 높은 유럽의 글로벌 유통업체 PB 비중이 5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한국의 PB는 더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유통 기업들이 PB 확산을 위해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의 PB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체인이나 편의점은 물론 올리브영과 같은 드러그스토어도 이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희 연구원은 “일본의 PB 제품 확산 사례가 말해주듯이 소비자들은 같은 품질이라면 더 싼 제품을 찾을 것”이라며 “최근 한국 유통업체들은 PB의 종류와 범위를 적극적으로 늘리기 시작했고, 이런 환경 하에서 제조업체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저가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