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처리하는 감정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5년 20만8191건에서 2014년 34만8117건으로 67%나 증가했다. 과학수사란 사건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생물학, 화학, 물리학, 생화학, 독물학, 혈청학 등 자연과학적 지식과 범죄학, 사회학, 철학, 논리학, 법의학 등 사회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범인을 색출하는 수사를 말한다. 과학수사에서는 지문, 혈액, 필적, DNA, 머리카락 등 범죄현장에 남겨진 거의 모든 것이 분석 대상이다. 사건현장에 남겨진 이런 흔적들은 사건 전체를 촬영한 사진을 구성하는 조각그림들이다. 과학수사를 통해 내려진 판단은 재판에서 강력한 증거로 채택되어 최종 판결을 좌우한다. 하지만 과학수사엔 많은 허점이 있고 임의성이 개재(介在)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수사법을 재검토

과학수사의 단점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은 적이 있다. 2004년에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를 조사했던 FBI의 과학수사연구소는 비닐봉지에 남겨진 얼룩진 지문 하나에 주목하여 감식한 결과, 오레곤 주에 사는 변호사 ‘브랜든 메이필드’가 범인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를 감옥에 넣었다. ‘메이필드’는 스페인 경찰이 지문의 실제 주인공이 알제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힐 때까지 2주일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만 했다. 미국 정부는 2006년에 ‘메이필드’에게 공식사과하고 200만달러의 위로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 지문 오인 사건은 과학 수사 기법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촉발했다. 급기야 과학수사가 노련한 경험자의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신뢰할 만한 과학적 판단 기준에 의해 이뤄질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응용프로그램과 표준을 수립해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의 과학수사를 강화>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과학수사 전문가들은 흔히 흑백논리로 결론을 내린다. 두 개의 지문이 서로 동일하다는 판단을 조사관이 내리면 끝이다. 그러나 스위스 로렌스 대학교 과학수사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챔포드’의 의견은 다르다. 지문이나 과학수사 분석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문 분석 등은 DNA 분석과는 다르게 조사관이 모든 걸 배제한 채, 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콕 집어낼 만큼 충분히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문뿐만 아니라 흔히 사용되는 필체나 물린 자국 등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혈액이 튄 얼룩자국을 분석하는 일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챔포드’는 이런 주장을 최근에 <Philosophical Transaction>에 ‘지문 구별 : 2009년 국립연구회보고서 이후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보고했다. 워싱턴의 국립과학기술법률아카데미의 조사위원인 ‘앙마리 마자’도 지금까지 과학수사에 사용해온 여러 가지 분석법들이 완벽한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이 지난 4월에 발표한 머리카락 분석 오류 사례는 충격적이다. 한 심사관이 판정한 현미경 머리카락 분석 결과의 96%가 잘못되었고, 그 257건 중 33건의 사건은 피고인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머리카락 분석은 전통적으로 심사관에 의존하는데 현미경으로 머리카락을 관찰해서 머리카락의 모양과 색소 패턴을 비교 분석한다. 만약 머리카락이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면 용의자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머리카락 모양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광범위한 기준이 없다. 의심스런 머리카락이 특정한 의심사항과 실제로 일치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노련한 전문가는 현미경 아래에서 판별해낸다. 이때 전문가가 증거를 잘못 판단하면 한순간에 무고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

인체 미생물 분포는 지문처럼 독특하다

호주 퍼스의 머독대학교의 과학수사 생물학자인 ‘실비아 트리디코’는 머리카락 분석을 메타지노믹스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머리카락에 서식하는 모든 미생물을 분석하여 미생물 군(群)을 비교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수사에 DNA와 화학 분석법을 채용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밖에도 전혀 새로운 과학수사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음모(陰毛)에 관한 연구를 하는 중이다. 음모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등 세균은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까지 알게 해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녀가 실험한 한 사례는 해양박테리아가 잔뜩 서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음모의 주인공은 매일같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이었다. 부부의 경우엔 음모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군이 거의 같다고 한다. 인체에 있는 세균은 음모뿐만 아니라 입과 내장 그리고 피부 속에 무수히 많이 서식하는데, 이 박테리아 군은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서도 다르고 가족과 개인별로도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독특하다. 하지만 아직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만큼 충분히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는 않다. 인체의 미생물이 독특한 지문이 될 수 있는지는 좀 더 많은 사례를 대상으로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야만 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많다. 지난 6월에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대변에 포함된 미생물을 근거로 내장 박테리아를 관찰해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컴퓨터 키보드에 남아있는 피부 박테리아를 분석해보면 만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 대학의 미생물 생태학자인 ‘노아 피어러’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에는 항상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박테리아 등 미생물들을 남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DNA를 분석하기에 충분한 시료가 없을 경우엔 박테리아를 추적하는 분석을 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범죄현장에서 발견한 박테리아나 세균 등을 대상으로 생물학적 추적을 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피어러’ 연구팀은 미국 전역에서 928종의 먼지 시료를 채취해서 먼지에 있는 곰팡이 등 세균의 DNA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곰팡이들이 다르게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타이파 라타(Eutypa lata)란 곰팡이 균은 포도넝쿨을 감염시키는데 미 대륙 서부지역에서만 발견됐다. 이 연구에서는 같은 종류의 곰팡이는 약 230㎞ 거리 안의 먼지 시료에서만 관찰되었다. 따라서 미국같이 넓은 지역에서는 먼지 분석만으로도 원래 먼지가 있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인체의 채취는 생물학적 바코드

사람의 채취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도 남새를 뒤에 남기게 된다. 미국 법정에서 냄새 추적 결과를 처음 다룬 것은 2011년이다. ‘케이시 안토니’는 두 살 된 딸을 살해한 첫 번째 용의자로 재판을 받았는데, 법정에 증거로 제시된 것이 바로 시체 냄새였다. 원래 아기는 실종됐다고 신고되었고 시체의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집 근처 숲속이었는데, 두 마리의 시체 탐색견이 안토니의 차 트렁크 속에서 시체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차 속에 한순간 시체가 머물렀다는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이 증거가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정하고 ‘안토니’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인체의 체취에 관한 연구들에서는 인체에서 발산되는 화학물질들이 독특한 성분 배합을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마이애미의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의 분석화학자인 ‘케네스 퍼톤’은 사람마다 ‘냄새 바코드’가 있다고 할 정도로 독특한 체취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시체도 독특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토니’의 차 트렁크 속에서 맡았던 냄새도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증거가 되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퍼톤’ 연구팀은 20명을 대상으로 손톱 조각, 자른 머리카락, 타액, 손바닥사이에 끼워 눌렀던 면 망사조각들을 모아 놓고, 공기 중으로 발산되는 냄새 분자들을 질량분석기로 분석해 봤다. 놀랍게도 사람마다 냄새를 구성한 화학물질이 모두 달랐고 성분 함량도 모두 달라서 마치 바코드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냄새는 화장비누에서 오기도 하고 섭취한 음식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퍼톤’은 다른 생물학적인 증거들이 불충분하다면 냄새 바코드가 충분히 단서를 제공할 거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 데이터는 조사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아주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범죄현장에서 수집되는 더럽혀지고 오염되고 뭉개진 흔적들을 분석할 때는 보다 섬세함이 요구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사람의 눈만큼 정교하지 않다. 그래서 전문가가 개입하게 된다. 지문 감식은 형태를 비교하는 일이다. 사람이 감식할 부분을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컴퓨터 해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지문은 1800년대부터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문도 위조할 수 있는 기술도 등장했다. ‘챔포드’의 연구에 의하면 지문은 선의 꼴뿐만 아니라 선 안에 미세한 구멍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면 지문 감식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의 눈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확한 과학적 분석이 밑받침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과학수사가 과학을 빙자한 채 전문가의 주관적 경험에 크게 의존했다면, 미래의 과학수사는 인체의 냄새와 미생물까지도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밝혀내는 새로운 분석과학을 기반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