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 쓰네?’ 무슨 뜻일까. 해석하자면 이렇다.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구나!’ 그렇다. 블랙베리 제품은 ‘예쁜 쓰레기’라 불리곤 했다. 독창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성능이 퍽 만족스럽지 못하고 사용하기에 불편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별칭은 유독 프리미엄 제품에 선호도가 높은 한국에서 블랙베리가 얻은 오명이기도 하다.

블랙베리 스마트폰은 분명 매력적이다. 우선 물리 키보드가 최고의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요즘 대부분의 제품이 탑재한 가상 키보드와 비교하면 ‘누르는 맛’이 제대로다. 인체공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덕에 오타 없이 빠른 입력도 가능하다. 블랙베리 제품은 특히 미국과 유럽의 비즈니스맨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들은 BBM(Blackberry Messenger)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무수한 비즈니스를 이뤄냈다. 강력 지지층에 힘입어 지난 2008년에는 미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애용해 ‘오바마폰’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옛말

이후 블랙베리는 바닥 모르고 추락했다. 한때 미국 시장점유율이 과반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1%에 미치지 못한다. 1000만대가 넘었던 분기 판매량은 100만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올해 반기로 따져도 300만대가 채 되지 않는데, 같은 기간 중국 후발업체는 300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블랙베리의 부진은 더욱 도드라진다.

최근 실적도 나빴다. 지난 1분기(3~5월) 6억5800만달러(약 7780억8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2% 감소한 수치이며, 시장 기대치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스마트폰 사업 부진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나쁜 성적표를 받아든 블랙베리는 수익성 회복과 신사업 집중을 이유로 인력 감축을 단행하겠다고 전했다.

왜 블랙베리 스마트폰은 외면당했을까. 이용자들은 초반부터 여러 가지 불편을 호소했다. 블랙베리 자체 OS(운영체계)는 일단 자생적인 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타사 OS에 비해 사용 가능한 앱이 상당히 부족했다. 킬러 콘텐츠로 불린 BBM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유료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과 다른 OS 스마트폰 이용자와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불만이었다.

요약하자면 스마트폰의 핵심인 확장성과 다양성이라는 덕목을 블랙베리는 독자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아울러 물리 키보드를 배치해 디스플레이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받았다. 이전에 사람들은 블랙베리 제품을 ‘불편하지만 매력적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기작에서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자 ‘매력적이지만 너무 불편해서 못 쓰겠다’로 여론이 뒤바뀌었다.

 

B2B로 감출 수 없는 구멍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다.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사업만 하는 업체가 아니니 일면만 보고 몰락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 완제품 판매가 소비자 대상 비즈니스(B2C)라면 블랙베리는 기업 대상 비즈니스(B2B)에도 강점을 보이는 업체다. 최근 실적만 봐도 소프트웨어(SW)와 기술 라이선싱 매출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성장했다.

▲ 출처=블랙베리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보안이다. 블랙베리 스마트폰은 ‘가장 안전한 폰’이라고 불릴 만큼 보안에 특화되어 있었는데 이는 블랙베리의 보안 기술력에 따른 것이다. 블랙베리는 기업용 보안 솔루션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때 삼성전자 인수설이 나돈 이유도 보안 솔루션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블랙베리는 최근 시큐스마트와 모버투 등 보안 관련 업체를 인수하며 경쟁력을 집중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도 블랙베리가 야심을 보이는 시장이다. 지난 1월 블랙베리는 세계 가전박람회 CES 2015를 통해 ‘블랙베리 IoT 플랫폼(BlackBerry IoT Platform)’을 공개했다. 기업들이 쉽게 IoT SW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클라우드 기반 개발 플랫폼이다. 다만 이 같은 B2B 사업이 스마트폰 사업 부진을 상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안드로이드 먹고 살아날까

미련은 남아 있다. 블랙베리는 여전히 스마트폰 사업을 접을 생각이 없다. 올해 신제품인 ‘클래식’과 ‘패스포트’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또 오는 11월 미국 4대 통신사를 통해 ‘베니스’를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갤럭시 엣지 시리즈처럼 듀얼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진 제품이다. 무엇보다도 이전 모델의 단점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가장 큰 차이는 OS다. 블랙베리는 기존의 방침을 버리고 베니스에 구글 안드로이드를 탑재할 예정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의 과반수가 사용하는 상황이다. 블랙베리가 안드로이드를 선택한 이유는 이러한 생태계에 접속하기 위해서다. 독자 생태계 구축의 꿈은 접어두고 생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셈이다.

답답한 작은 화면도 개선될 전망이다. 베니스는 5.4인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5.5인치인 갤럭시 S6 엣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몸체를 슬라이드 형식으로 만들어 물리 자판까지 싣는다. ‘넓은 화면’과 ‘물리 자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디자인 정체성이다. 그동안 블랙베리 제품군은 고유의 디자인으로 소비자에 기억됐다. 그런데 베니스는 기존 모델보다는 타사 제품들의 모습을 합쳐놓은 모양새다. ‘예쁜 쓰레기’에서 ‘쓰레기’라는 꼬리표를 제거하려다가 ‘예쁜’까지 놓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블랙베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인수설에도 끊임없이 시달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도 블랙베리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수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설명이다.

노키아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MS는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했다가 쓴맛을 보지 않았던가. 만약 이 계약이 성사된다면 다시 마이너스와 마이너스의 불길한 조합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미래는 내일을 알 수 없기에 ‘미래(未來)’라 불리지만 말이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