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모닝커피’를 기억하는가. 단순히 아침에 마시는 커피가 아닌 날계란의 노른자를 풀고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저어 마시는 커피란 것을. 아침식사를 하지 못한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끈 다방의 최고 메뉴였다.

한국인의 지극한 커피 사랑이 독특한 스타일의 커피를 탄생시킨 사례라고나 할까.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로 시작하는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은 젊은층의 커피문화를 대변하던 노래였다.

입장료만 내면 공짜 커피를 제공하는 음악감상실, 다방의 전성시대, 음악전문다방과 DJ 등…. 커피라는 ‘신세계’에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터키 속담이 있다.

커피가 주는 치명적인 유혹과 환상의 세계는 1960~1970년대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에 청량제 같은 즐길 거리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사랑할 때나 외로울 때,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커피 한 잔으로 삶이 달콤해진다는 공식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열광을 넘어 ‘커피 홀릭’ 수준에 이르렀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우리나라에 에스프레소와 테이크아웃 문화를 자리잡게 한 사회역사적 계기가 됐다. 한국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

이미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자 문화가 돼 버렸다. 그 중심에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비친 라이프 스타일을 추종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멋쟁이 주인공이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 당당하게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나도 도시적이고 세련된 뉴요커가 될 수 있다는 심리를 부추기기도 하니까.

‘된장녀’란 신조어가 튀어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커피에 죽고 커피에 사는 커피 마니아를 주위에서 찾기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브랜드 커피전문점 매장 수는 2000개를 넘었다. 한 집 걸러 한 집, 아무 데서나 엎어져도 코 닿을 곳이 커피전문점이라는데 그만큼 매장 수와 파급력을 볼 때 커피는 지금 대한민국을 ‘공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커피문화의 공습

이 같은 커피 붐은 다양한 스타일의 커피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펴고 인터넷을 하며 일과 공부를 하는 코피스족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본 우아한 브런치 문화도 상륙했다.

아침을 거른 직장인이나 점심을 간편하게 때우려는 이들을 위해 브랜드 커피전문점은 ‘샌드위치·베이글·와플+커피’라는 찰떡궁합 메뉴를 만들었다. 아예 와플 카페와 같은 형태로 분화되기도 한다.

이는 빵만 팔던 베이커리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커피전문점으로 향하는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브레댄코 등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커피를 곁들인 카페 형태의 매장을 집중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쿠르트의 ‘코코브루니’와 인터파크HM이 운영하는 ‘디초콜릿 커피’와 같은 수제초콜릿 디저트 카페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워홈의 유럽형 프리미엄 카페 ‘카페 클라시코’도 눈길을 끈다. 한 매장 안에 두 개의 카페가 들어선 것이 특징. 여유롭고 세심한 서비스를 지향하는 ‘살롱’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저렴한 가격,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티오’로 고객 취향을 고려했다.

또 커피 장인의 손길을 강조한 매일유업의 ‘폴 바셋’도 있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인 폴 바셋이 직접 원두 선정부터 로스팅 및 추출까지 모든 과정을 프로듀스한다.

웬만해선 주목을 끌기 어렵다 보니 차별화된 콘셉트로 승부하는 이색 카페도 늘고 있다. 북 카페는 기본이요, 스터디룸과 커플 학습석을 갖춘 독서실형 카페, 심리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심리카페, 전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 카페, 화장과 머리 연출이 가능한 셀프 뷰티 커뮤니티 카페 등이 그것.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트렌드에 맞서 ‘별다방 미스리’카페나 LP카페 등 촌스러움, 오래됨, 낭만을 추구하는 복고풍 카페도 부활하고 있는 추세다.

집에서도 즐기는 프리미엄 원두커피

중학교 교사 김유경(34)씨는 소문난 원두커피 마니아다. 커피로 유명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정형화된 레시피의 대형 브랜드 커피는 맛의 특색이 없어 싫다. ‘내가 너무 입맛이 까다로운가’ 커피클래스는 물론 바리스타 강좌까지 수강한 나름의 준 전문가로서 아직 흡족한 커피집을 못 찾았다.

그래서 ‘손맛 커피’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 가게를 자주 찾는다. 로스팅 가게에서 원두를 구매해 집에서 핸드드립 기구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한다.

요즘은 집에서도 카페라테나 카푸치노, 카라멜 마키아토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우유스팀이 가능한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살까 고민 중이다.

김씨와 같이 다양하고 좀 더 정교하며 섬세한 맛을 추구하는 커피 미식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 커피를 내리는 로스팅 카페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왜? 일단 커피맛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단계가 로스팅이기 때문. 또 같은 원두라도 물 조절과 기술 등 상황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프리랜서 기고가 지수연(42)씨는 “로스팅을 잘 하는 곳은 확실히 맛과 신선도에 차이가 있다”며 “핸드드립 커피에 중독된 다음부터는 웬만한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이나 커피숍 커피는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됐다”고 말했다. 값이 비싸더라도 차별화된 커피를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 상당수다.

커피 애호가들에게 입소문난 곳을 보면 개인숍 형태의 로스팅 카페가 대부분이다. 참숯 로스팅으로 유명한 ‘칼디 커피’, 매일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를 내세운 ‘커피와 사람들’ 세계의 커피 산지 곳곳을 발로 뛰어다니며 찾은 최상급 원두와 로스팅 기술을 보유한 공장형 카페 ‘테라로사’가 있다.

‘다동 커피’는 우리커피연구회가 운영하는 만큼 한국적인 커피맛이 강점이다. ‘허형만의 압구정 커피집’은 커피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입맛이 고급화되면서 집에서 프리미엄 커피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증가,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인기를 끄는 추세다. 혼수용품에서 필수로 챙겨야 하는 체크리스트 아이템에도 올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에스프레소 머신 시장이 최근 4년간 85%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사용과 관리가 편한 캡슐커피 머신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캡슐에 원두를 갈아 진공 포장한 것을 고압으로 추출하는 방식. 물을 채우고 캡슐을 넣어 15~30초 가량 기다리면 오케이다. 공정은 간단하지만 커피전문점 수준의 커피 맛을 낸다.

국내 시장에는 네스프레소, 일리, 라바짜 등 10여 개 브랜드가 있다. 일리코리아에 따르면 2008년 말 캡슐방식의 머신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지난해까지 약 2.5배 정도의 판매율 증가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고급화·고품질 커피에 대한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잠재력이 상당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888년 인천 대불호텔 다방이 원조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으로 추정된다. 1888년 개항지인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이 생겼고 커피를 파는 부속다방도 들어섰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다방의 선구가 됐다.

공식문헌에 나타난 기록으로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것이 한국 커피 역사의 시작이다.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연회를 베풀거나 서양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즐겼다.

영어 발음을 따서 커피를 ‘가배차’ 또는 ‘가비차’라고 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양탕(洋湯)국’으로 불렸다. 커피의 색이 검고 쓴맛이 나는 게 마치 한약 탕국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 :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