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초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1500년대 유럽의 만병통치약 ‘무미야’(Mumia)가 소개됐다. 이후 무미야는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에 오르면서 커다란 화제가 됐다.

‘무미야’의 정체는 놀랍게도 이집트 미이라를 가루로 만든 것이다. 무미야는 부러진 뼈에도 효능이 있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도 먹기만 하면 한번에 일어나는 등 신비의 정력제라고 불렸다. 그 소식을 들은 중세 유럽사람들은 무미야를 가정 상비약으로 복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박용만 대표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르네상스시대의 유럽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약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미이라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시신이라는 점과 희귀하다는 것 때문에 잘 보존된 이집트 미이라를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이집트 미이라는 값이 비쌌을 뿐 아니라, 맛도 역겹고 지독하여 복용하면 심장이 아프고, 위 손상, 구토 등이 일어났지만 편두통, 현기증, 뇌진탕, 골절, 궤양, 마비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유럽의 부유한 지식층이 애용했다. 유럽 의사들도 만병통치약으로 처방을 즐겨냈으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도 미이라가 지혈 효과에 탁월한 것으로 믿었던 미이라 약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무미야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된 유럽에서는 발굴단까지 생겨 이집트 공동묘지 동굴까지 샅샅이 수색해 5개의 동굴에서 수 만구의 미이라를 발굴했다. 이 미이라들은 유럽으로 보내져 모두 가루가 돼 무미야 약으로 유통됐다. 그럼에도 미이라가 부족해지자 브로커들은 시체를 구해 직접 미이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564년 프랑스 의사 라퐁텐(La Fontaine)은 미이라 거래소를 방문한 뒤 “죄인과 전염병에 걸린 병자들의 시신으로 미이라를 만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중세 유럽을 발칵 뒤집은 만병통치약 무미야에 대한 효능은 현재까지도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일부에서는 커다란 효과를 봤을까? 이후 과학계는 무미야의 실제 효능이 미이라나 미이라를 감싸고 있는 붕대 때문이 아니라 미이라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특수한 물약 즉 '몰약'(沒藥)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몰약은 무엇인가? 몰약은 감람과 식물인 '콤미포라 미르라'(C. myrrha)라는 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 채취한 천연 고무수지의 일종이다. 아라비아, 이디오피아, 소말리아 등 동부아프리카 해안이 원산지로서, 대개는 암석지대나 석회암의 구릉지대에서 자라는 관목(灌木)이다. 굵고 단단한 가지와 가시가 있으며 잎은 3장이 복엽(複葉)을 이루며 열매는 타원형으로 자두처럼 생겼다. 미르라(Myrrha)라고도 불리는 몰약(학명 Myrrh 미르)은 진통효과가 탁월하며, 혈액순환의 개선과 살균작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BC) 1세기 이전에 몰약은 포도주가 발효돼 식초가 되는 것을 막는 데 사용됐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뱀에 물렸을 때 치료약이나, 병사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 상비약으로 휴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디언들도 순환장애, 신경장애, 관절염 등의 치료를 위해 몰약을 쓰는 등 서방에서는 몰약이 강력한 방부효과를 내면서 신체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료과정을 가속화시키는 물질로 인정받아왔다.

몰약은 문둥병과 매독을 포함한 많은 전염병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분향료(焚香料), 향수, 향고(香膏) 등의 화장품, 향유의 부향료(賦香料), 약제 등 다양하게 이용되어, 고대 근동(近東) 지방이나 중동 지역 및 중세 유럽에서는 매우 귀하게 여겼다. 전통 중국 의학뿐 만 아니라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출혈과 상처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몰약이 최근 현대과학으로 베일을 하나씩 벗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압둘 아지즈 국왕 대학교의 나디아 살레-아모우디 교수 팀은 과거 인후염, 충혈, 베인 곳,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썼던 몰약이 식품 보충제로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최근 밝혀냈다. 순천향대 의료과학대학과 포천 중문의대에서도 몰약에 들어 있는 성분 중 하나인 `거걸스테론(guggulsterone)'이 외부 병원체가 몸 속에 침입했을 때 체내 면역시스템을 조절함으로써 숙주를 보호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과학적으로 효능을 입증한 몰약은 국내에서 치주염에 효과가 뛰어난 치약으로 부활하고 있다. 잇몸 질환으로 고생하는 국내 800만명 이상의 잇몸병 질환자들을 위해 몰약을 함유한 다양한 잇몸 치료제와 기능성 치약제품이 나오고 있다.

‘잇치’(동화약품), ‘부광탁스’(부광약품), ‘동방박사 미르치약’(미르존몰약연구소)등 몰약성분이 함유된 고기능성 치약이 연달아 출시되고 있는데 매출 1백억원 이상의 거대 품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19세 이상 성인 4명 중에 1명 이상(유병률 27.7%) 은 치과 치료가 필요한 잇몸질환을 앓고 있고, 잇몸병 환자들이 급증해 올해 구강질환 일반의약품 전체시장 규모는 약 1천억 내외로 추정되고 있으며 매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몰약은 치약 외에도 통증완화크림,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비누, 향수 등 2000여년 전 무미야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샤넬’ 향수와 최고급 코냑 ‘레미마틴(루이13세)’에 오래 전부터 몰약이 함유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몰약의 연구를 위해 국내 최초로 몰약을 전문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미르존몰약연구소(바이오벤처등록기업)까지 생겨 몰약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식품보존제와 천연 방부제 개발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몰약과 성서의 관계다. 2000여년 전 동방박사 이야기에 몰약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사학계에서는 당시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향, 몰약을 아기 예수에게 선물한 것은 단순히 이들 물건이 값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아기 예수의 건강을 생각해 치료약 개념으로 선물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성서 속의 선물 ‘몰약’이 실제로도 질병 억제나 치료 효과가 큰 것을 보면 동방박사들이 단순한 박사라기 보다 현인(wisemen from the east)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방박사들이 고위 관료라는 말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몰약’은 각종 통증에 도움을 주고 천연식품 보존제와 천연 방부제로 까지 개발되어 인류 건강에 큰 유익을 줄 날이 가까워지고 있어 “몰약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