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Ford Flat 지열발전소 외부 냉각타워(미국 캘리포니아 Geysers).


EGS 기술개발로 비화산지대 상용화 길 열려
플랜트 능력 한국 우수 잇점… 제도 지원 시급

#서울시가 현재 건립 중인 신청사의 본관동은 ‘굴뚝 없는 친환경 건물’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지하 5층 건물의 기초콘크리트 하부에 구멍을 뚫어 지열로 전체 냉·난방 에너지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이 과감히 적용될 예정이다. 대규모 지열을 이용해 냉·난방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보다 연간 에너지 123.4TOE(31.2%)를 절감, 약 8400만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도 연간 288TCO2가 줄어, 56h에 9만8000 그루의 대체산림을 심는 효과가 발생된다.

Riehen 지역난방시스템 내부.

땅(토양·지하수·지표수 등)이 지구 내부의 마그마 열에 의해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지열에너지’라고 한다.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 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 생활 속 에너지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저온(10~30℃)의 천부지열을 열원으로 하는 지열 열펌프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효율이 우수한 친환경 냉난방·급탕 시스템으로 평가받으면서 높은 보급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내 지열시스템 보급량은 2007년 49MW에서 2008년 119MW로 증가했다. 2009년 누적보급량 약 335MW로 EU 27개국 중 6~7위 수준에 이른다. 국내 공공기관 설치의무화 시장에서 약 60% 이상을 지열 시스템이 담당할 정도다.

지열 열펌프 시스템은 정부 보급 사업을 통해 주로 교육시설과 사회복지시설 난방에 적용되고 있다. 공공기관과 상업용 건물, 산업시설에도 시공됐으며, 최근 신재생에너지원을 주택에 설치 시 설치비의 일부를 무상 지원(지열은 최대 50% 이내)하는 ‘그린홈 100만호 사업’ 을 통해서도 보급되고 있다.

West Ford Flat 지열발전소 내부(미국 캘리포니아 Geysers).

에너지관리공단이 발간한 ‘2010 신재생에너지 백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지열 열펌프 시스템 시장은 연간 약 2800억~3000억원 규모다. 이중 열펌프 유닛과 열교환기 등을 포함한 장비 시장이 약 1700억원, 지중열교환기 시공을 포함한 시공 시장이 약 1200억원 정도다. 지난 몇 년간의 증가세로 볼 때 향후 수년 안에 1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특히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을 위해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건축물에 도입되면서 지열 열펌프 시스템 산업은 국내 건축설비 분야의 새로운 성장 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도급 순위 50위 이내의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지열 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정부사업과 관련 없는 민간사업에도 지열 시스템을 반영하는 추세다.

24시간 운전… 원전 대체 전력 ‘부상’

다른 신재생에너지원에 비해 산업 연관성과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한다. 지열 열펌프 시스템 분야는 플랜트나 일반 냉동조기술 등과 기술 융합이 가능하며, 도로와 교량 융설(snow melting) 등의 토목분야, 지역냉난방 등의 에너지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설비에 비해 초기 투자비가 높다는 점은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술 개발을 통해 투자 비용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신·재생에너지원보다 빠르게 국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산업의 중심지 경북 포항이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영일만항 배후산업단지에 연료전지 스택제조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성곡지역엔 지열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시와 자원에너지 탐사개발 전문업체 넥스지오는 총 사업비 500억원 규모의 지열발전소 건립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넥스지오는 포스코, 서울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노지오테크놀로지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하 5㎞ 부근의 지열을 이용한 인공지열발전기술(EGS) 상용화 프로젝트인 ‘MW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 일대는 활발한 단층운동으로 지열이 풍부한 곳이다. 여기에 건립될 지열발전소는 1.5MW급으로, 1000여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2013년까지 1단계 공사로 지하 3km에서 섭씨 100도 이상의 열원을 확보하고, 2015년까지 지하 5km까지 심부 시추를 통해 뜨거운 물을 끌어올려 전기 터빈을 돌린 뒤 최대 20MW까지 전기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열발전은 땅속 깊숙이 구멍을 뚫어 그곳에 저장된 마그마의 열기를 이용해 전기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계절과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아 열원이 안정적이고, 24시간 연속 운전이 가능하다. 일본 대지진 여파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가 전력의 기저부하를 담당할 수 있는 원전 대체 에너지원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열발전 플랜트를 건설을 통한 지열에너지 개발과 보급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아직 관련 시장은 형성되어 않았다. 지열발전 플랜트 개발에 필요한 높은 초기 비용과 위험도, 기술력 부족 등이 그 이유다.

지열발전은 화산지대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지리적 제약이 매우 크다는 인식도 장애물로 작용해왔다. 때문에 법률과 지원제도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 관련 기반이 취약한 상태다. 개발한 열원을 보호해줄 수 있는 독점권을 인정해주는 법적 기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 뜨거운 암반이 있는 땅속까지 시추한 뒤 물을 주입하고, 가열된 수증기를 끌어내 발전기를 돌리는 ‘EGS(enhanced geothermal systems)’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우리나라와 같은 비화산지대에서도 지열발전의 상용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손병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플랜드 설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지열자원 탐사와 설계, 굴착 기술 등만 확보된다면, 국내 시장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국형 지열발전 모델’ 세우는 한명수 휴스콘건설 대표
에너지 만성 부족 국가 한국 ‘꿈의 지열’이 타개책 될 수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우리나라에서 지열발전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나로호 발사’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기술도, 노하우도, 전문인력도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제야 정부나 학계에서 지열발전의 개념이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제주도에 국내 첫 지열발전소 건립을 추진한 한명수 휴스콘건설 대표의 말이다. 한 대표는 국내 지열발전 사업의 개척자다. 처음엔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리스크가 큰 발전사업이라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다고 나서는 금융기관도 없었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으로는 1000~1500m 이상 땅을 파기란 어려웠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를 못낸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열발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2007년 사업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2008년 3월 첨단 지열발전시스템(EGS)기술의 세계적인 기업인 스위스의 GE(Geothermal Explorers)사와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해 선진기술을 과감히 도입했다. 지열발전 사업은 노하우, 즉 디렉터의 역할의 중요하기에 스위스 연방정부 지질위원회위원인 마커스 박사를 기술고문으로 영입했다.

이어 8월엔 아예 친환경에너지사업본부를 분사해 ‘이노지오테크놀로지’라는 지열에너지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지난해 5월엔 제주도, 동서발전 등과 제주도 내 지열발전 개발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현재는 포항지역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심부지열발전 프로젝트인 ‘㎿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에 참여,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한 대표는 지열발전을 통한 ‘에너지 보국’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부족한 관심과 지원에도 제주도 지열발전소 건립을 적극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저케이블 송전방식을 택하고 있는 제주도의 경우 지열발전만이 유지비용을 절감하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대안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열발전을 하기에 좋은 조건의 지역은 여러 곳입니다. 하지만 입지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곳이 가장 지열발전을 필요로 하느냐입니다.”

지열발전은 24시간 365일 가동할 수 있는 항상성 에너지 자원이다. 지하의 열원이 한번 확인되면 병렬구조로 시추해 열원을 계속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 이르면 투자 비용도 낮아진다. 또 태양광처럼 장치를 정기적으로 교체해줄 필요도 없다.

그는 “해외에서 지열발전은 ‘꿈의 발전’이라 인식되면서 석유보유국인 미국·중국·중동까지도 지열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자국 내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기술적인 어려움, 정부나 경험의 부재 등의 이유로 정부나 학계에서 외면받아 왔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태양광이나 풍력에 비해 높은 효율 등 장점이 많은 기자부하용 신재생에너지원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한 것.

그의 1차 목표는 한국형 EGS 기술을 상용화해 국내 최초의 지열발전소를 세우는 것이다. 해외 파트너들은 왜 지형조건이 불리한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느냐고 되묻는다. 여기에 그는 늘 확신에 찬 대답을 한다. “내 나라에서 먼저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척박한 조건의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EGS(Enhanced Geothermal System)
지하 4000~5000m를 시추해 외부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열에너지 저장 공간을 만들고 그 곳에 물을 주입해 섭씨 150~200도로 가열된 지하수를 이용해 발전과 난방열 공급에 활용한 후 다시 저장공간으로 물을 순환시키는 친환경적인 지열발전 방식이다.

펌프를 이용해 바로 냉난방 에너지로 전환되는 지표 부근의 지열보다 활용범위가 넓고, 연중 일정한 온도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 안정적인 전력생산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지만 화산 등 고온 지열자원이 없는 지역에서도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중장기 기술개발 프로젝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