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항상 ‘시뮬레이션’을 해보라고 하는데요. 보통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하는 훈련이 시뮬레이션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 형태를 알아보니 정부기관에서는 모르겠지만, 기업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하는 기업들이 있나요? 어떻게 하고 있죠?”

 

[컨설턴트의 답변]

사실 이 ‘위기관리 시뮬레이션’만큼 다양한 정의와 유형을 지닌 훈련방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의미는 사전적으로 ‘복잡한 문제나 사회 현상 따위를 해석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실제와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 모의적으로 실험하여 그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모의실험’으로도 표현하죠. 이 정의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실제와 비슷한 모형’ 부분과 ‘모의적으로 실험’이라는 부분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여럿이 함께 예상해보고 머리에 그려 보는) 학습 미팅’의 경우 ‘실제와 비슷한 모형’과 ‘모의적으로 실험’이라는 정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또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기술적 모의실험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위기관리 분야에서 군사 분야를 빼고는 기업에게 적용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아직 상용화(?)되지 못한 듯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시뮬레이션해보면 ‘이걸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하는 한계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진행되는 기업 대상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은 대부분 기업 최고 의사결정그룹(위기관리위원회 또는 위기관리팀)을 대상으로 ‘실제와 유사한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스스로 위기관리 해법을 찾아나가게 하는 모의실험, 즉 게임(Game) 형식을 띕니다. 각 컨설팅사마다 자체적으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의 범위와 대상 그리고 실행방법론에 대한 차이들은 있지만, 핵심적 부분은 ‘시나리오’, ‘문제해결’, ‘집단사고’, ‘역할과 책임 확인’, ‘위기관리 매뉴얼 검증 및 평가’, ‘제한된 실행 연습’이라는 공통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다시 설명하면 CEO를 중심으로 의사결정그룹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 종일 또는 반나절 이상 ‘실제와 유사한 위기 발생 시나리오’를 가지고 상황파악, 의사결정, 실행을 집중 경험해보는 훈련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종이 문서를 가지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형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대부분의 정부 공공기관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의 경우에는 미지의 시나리오를 직접 수령한 뒤 의사결정그룹이 전문성을 발휘해 비정형적으로 위기 대응을 진행하는 방식을 따릅니다. 여러 의사결정상 변수들도 그 과정에서 떠오르게 되고, 상황도 비정형적으로 지속 변화되어 현실성을 높이게 됩니다. 특히 외부 이해관계자들이(언론, 정부, 국회, 규제기관, NGO, 소비자, 피해자 등) 각 상황변화에 따라 해당 의사결정그룹에게 예측 불가능한 공격을 해오면서 그 시뮬레이션의 현실성은 극대화됩니다. 최근에는 발달된 시뮬레이션 방법론으로 최고 의사결정그룹과 일선 실행그룹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연결하여 동시 시뮬레이션해보는 ‘풀 스케일 시뮬레이션’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대한 위기 시 의사결정그룹과 실행그룹 간 격차를 줄여보자는 목적이 이런 진화된 시뮬레이션의 동기가 되고 있지요.

재미있는 건 한국 기업들의 경우 이런 형식의 비정형적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때 CEO가 참석하지 않는 경우들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내일이라도 위기가 발생하면 의사결정과 실행 전반에 대해 개입 관제해야 할 CEO가 시뮬레이션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실제 발생하는 거죠. 이런 경우 당연히 위기관리 경험이나 훈련 수준에서 CEO와 임원들 간 갭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위험한 케이스죠. 어떻게 보면 한국적 현실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더욱 위험한 케이스는 일선 실행 부서들만을 대상으로 실행 시뮬레이션만 진행하는 케이스입니다. 이 또한 문제가 생깁니다. 의사결정그룹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간접 경험과 훈련 수준을 높이지 못한 채 경험 있는 실행만 따로 돌아가는 엇박자가 실제 위기 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경험해본 기업 최고 의사결정그룹은 대부분 해당 경험을 통해 자기 조직의 약점과 개선점들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곤 합니다. 이를 정확하게 보게 되고, 이에 대한 토론을 통해 위기관리 체계를 더욱 개선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이런 거창한 결과물보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추천합니다. “입사 후 언제 하루 종일 회사의 위기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볼 기회가 있었나요? 그럼 한번 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