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성장위원장인 유정준 SK E&S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차화엽 SK종합화학 사장과 함께 28일 중국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이천 SK하이닉스 M14 준공식에 참석한 직후 바로 중국으로 떠난 셈이다. 최 회장은 중국 장쑤성에 있는 SK하이닉스 우시공장을 방문하고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질 예정이며 SK종합화학과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과 합작해 설립한 우한 에틸렌 공장도 연이어 방문한다.

최 회장의 중국행은 글로벌 현장경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폭스콘이다. 이 지점에서 업계의 관심은 최근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최 회장이 중국에서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인연의 끈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9월 초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동해 현지 최대부호인 궈타이밍 홍하이그룹 회장과 만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최근까지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쿼타이밍 회장은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아 당시 수감생활을 하던 최 회장을 면회하기도 했다. 직접 의정부 교도소를 찾아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궈 회장은 최 회장에게 SK C&C지분 4.9% 매입을 제안했고, 최 회장이 받아들였다. 그런 이유로 최 회장과 궈 회장의 만남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았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최 회장은 수감 전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전면에 걸었던 바 있다. 최 회장이 SK의 전면에 나서던 지난 2013년, SK종합화학이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관인 시노펙과 우한 에틸렌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프로젝트에 성공한 배경에는 이러한 체계적인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수감된 후 SK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자체가 삐걱거렸고,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SK는 불씨를 살릴 마지막 기회를 잡았으나 최 회장의 부재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최 회장은 여전히 중국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 6월 SK C&C 지분 매각 정국에서도 다양한 원매자들이 구애를 보냈으나 심사숙고를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이 지점에서 홍하이그룹의 궈 회장을 ‘현지 사정에 정통한 파트너’로 낙점한 셈이다.

양사의 협력은 이후 급물살을 탔다. SK C&C와 홍하이그룹은 주로 ICT 사업에서 힘을 합쳐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실제적 행보에 돌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SK C&C와 홍하이그룹의 합작사인 FSK홀딩스다. FSK홀딩스는 지난 5월 홍하이그룹과 SK C&C가 각각 7:3의 비율로 720억 원을 투자해 만든 회사며 홍콩에서 설립됐다.

스마트팩토리 산업을 정조준하고 있으며 지난 13일에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스마트 센서 및 사물인터넷 통신 부품 제조 기업 다이와어소시에이트홀딩스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단 내부적으로 스마트팩토리 사업에 집중하다가 2016년부터 본격적인 외부사업에 주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폭스콘, 연합군의 희망

여기에서 홍하이그룹이 폭스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스콘은 세계 최대 전자기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이자 ‘글로벌 ICT 공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비록 잦은 인명사고로 악명을 떨치곤 하지만 애플의 파트너로 입지를 굳힌 제조업의 강자다.

이 지점에서 SK와의 협력이 가능하다. 현재 폭스콘은 애플을 비롯한 다양한 ICT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나름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최근 이러한 성공 방정식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결국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SK와 긴밀한 협력을 이어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평가다.

일단 양사는 FSK홀딩스의 주요무대를 폭스콘으로 잡았다. 즉 폭스콘이 스마트팩토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최전선에 나섰다는 의미다. 여기에 SK C&C는 홍하이그룹의 시스템 통합 및 경영효율화 프로젝트를 전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폭스콘의 경쟁력과 충분한 접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위탁생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폭스콘과 반도체를 주력으로 삼은 최 회장의 강력한 무기인 SK하이닉스가 매출 증가에 있어 대승적인 협력에 나설 개연성도 제기된다.

홍하이그룹도 SK, 특히 SK텔레콤의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만 이동통신시장 타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하이그룹에 있어 한국 이동통신시장 1위인 SK텔레콤의 경쟁력은 상당한 매력이다. 특히 SK는 그룹의 ICT 역량을 SK텔레콤에 집중시켜 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하드웨어 기술을 가진 홍하이그룹 입장에서 SK텔레콤을 기점으로 하는 ICT 경쟁력은 그 자체로 ‘선물’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SK는 홍하이그룹과 ICT적 측면에서 강력한 협력의 끈을 이어갈 확률이 높다. 폭스콘을 매개로 스마트팩토리 시장에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한편, SK C&C와 SK텔레콤 등을 바탕으로 폭 넓은 로드맵을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FSK홀딩스는 아예 지난달부터 핵심 영역별 사업 및 기술 지원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폭스콘 충칭 공장의 스마트팩토리 사업을 키우는 중이다.

▲ 폭스콘 공장. 출처=위키디피아

앞으로의 로드맵

현재 폭스콘은 단순한 제조업체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변신을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최근 인도의 스냅딜이 조성한 5억달러 펀드에 폭스콘이 알리바바와 함께 투자를 결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폭스콘은 지난 8일(현지시각) 인도 뭄바이에서 데벤드라 파드나비스 마하라슈트라 주 총리와 함께 현지 마하라슈트라 주에 5년간 5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건설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거점의 중심을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최근 불투명해진 중국경제의 여파로 해석되기도 한다.

결국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폭스콘과, 글로벌 현장경영을 시작하며 중국을 기점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SK의 복안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SK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급처를 확보하는 한편 현지시장에 더욱 빠르게 진출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도까지 보폭을 넓힐 수 있다.

홍하이그룹은 SK의 ICT 경쟁력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사업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부터 통신, 스마트팩토리의 영역까지 거칠 것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최 회장과 궈 회장의 만남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최근 SK커뮤니케이션 경영권을 IHQ에 넘기고, SK플래닛의 O2O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며,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시너지를 노리기 시작한 SK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