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

 

“여론의 질타를 받은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같은 ‘오너 리스크이슈’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경제가 진화해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영자들의 윤리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윤리경영’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미국 산타클라라대학 커크 한슨(Kirk Hanson) 교수가 서강대-딜로이트 국제기업윤리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하순 한국을 방문했다. 포럼에서 ‘기업윤리 강화를 위한 미국과 유럽의 제도적 장치’를 한국 기업인과 경영학계에 전파하려는 목적에서다. 내친 김에 오너리스크(Owner Risk, 오너의 독단적 경영이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위험)가 기업에 어떤 나쁜 영향을 주는 지 일침을 가할 계획이었다.

포럼 시작과 함께 한슨 교수는 한국에 오기 직전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할 지난달 23일(한국시간)만 해도 한반도의 남북 긴장 상태가 극도로 고조돼 전쟁 일보직전 위기 상황이었다. 걱정이 된 한슨 교수는 지인인 남북관계 전문가에게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해도 되겠는지 물었다.

지인은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남북한 충돌은 걱정하지 말라며(쉽게 전쟁이 날 상황은 아니니)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해도 된다고 답했다. 단, 한반도로 북상 중인 태풍 ‘고니’는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전하자 포럼 좌중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에 대한 책을 쓴 자신의 동생은 아시아 전문가라며 한국은 자신에게 친숙한 나라임을 가볍게 내비쳤다.

사진설명=서강대-딜로이트 국제기업윤리포럼에서 강연 중인 한슨 교수[사진제공=딜로이트안진]

평생을 기업 경영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지만, 기업의 구성원들의 성향과 행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한슨 교수는 기업이 윤리적이지 못해 공공의 불신을 얻게 된다면 큰 것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당장은 회사의 가치(주가)가 떨어지고, 명성이 실추될 뿐 아니라 길게는 형사적, 금전적인 배상까지 감당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무대로 활동 중인 기업일수록 비윤리적 경영으로 잃게 될 것은 더 크다고 단언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경영인 한 사람이 알아서 회사를 운영해도 정부당국과 소비자들은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당시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거든요. 현대에 와서 기업의 기능은 고객의 자산을 맡아 대신 관리하는 ‘신탁’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그 결과 고객을 포함해 주주와 투자자,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해진 거죠. 잘 되면 더 없이 좋지만, 기업이 나빠질 경우 손해 규모가 엄청난 수준으로 확대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의 윤리경영이 주목받게 됐고, 윤리경영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받는 비난과 처벌 규모는 더 커지게 됐죠.”

미국과 유럽 등 100년 이상 사업을 해온 유수한 기업에게도 '윤리'라는 개념은 모호하게 다가온다.

어떤 기업도 '윤리경영'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윤리적 가치목표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밝힌 한슨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그저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윤리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가 최소한의 법률적 준수를 말하는 것이라면, 윤리(Ethics)는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가 존중해주기를 기대하는 최대한의 기준이라고 보았다.

(이상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알려진)구글의 경영진들도 윤리경영의 개념을 잘 몰라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라는 추상적인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는 예도 들었다. 특히 한슨 교수는 회사 경영진들이 돈과 수익에만 집중할수록 윤리경영에 대한 개념과 기업철학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비윤리적 기업에게 날리는 경고가 신랄하다. “기업이 오너 리스크로 겪게 되는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오너리스크 이슈가 자주 번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이 ‘가족경영’ 혹은 자만심, 이기심과 연관돼 있다는 뜻입니다. 민낯으로 드러난 기업의 비윤리적 모습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보다 활발해지게 될 것이고요. 이것이 진화하는 속도도 빨라지게 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적극적인 저널리즘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능동적인 소비자처럼 지켜보고 있는 눈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죠. 비윤리적인 기업으로 낙인이 찍히면 쌓아왔던 명성과 자산을 사회적 비난과 처벌로 고스란히 잃게 될 처지에 놓였거든요”.

한국의 오너리스크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슨 교수는 가족경영 문화(부를 세습하려는 경향)은 세계 어디에서다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오너 리스크 이슈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유는 한국의 많은 대기업이 가족경영 형태이기 때문인데,  ‘리더십 윤리’가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성숙한 경제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한슨 교수는 평가했다.

선진국은 이미 '리더십 윤리' 개념이 자리잡은 상태다. 한국보다 100~200년 먼저 '리더십 윤리'가 형성된 미국과 유럽에서는 윤리적 리더를 고용하는 것이게 의무화됐다고 그는 소개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

'윤리경영'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일 기업에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했다. ‘윤리경영’이란 우선 ①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②합법적인 권리를 존중하고 의무를 이행하면서 ③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우하는 동시에 ④지역사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더불어 ⑤모든 인류가 지향하는 공동선에 도달하면서 ⑥미래 세대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하며 ⑦공정성까지 내포해야 ‘윤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윤리경영이 ‘꼿꼿하고 청렴한 선비정신’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기자가 윤리경영이 과연 (많은) 수익을 가져오는지 질문하자, 한슨 교수는 “기업이 비윤리적일 때 잃게 되는 명성과 자산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윤리경영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됐다”면서 사업 환경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발로 뛰는 기자, 적극적인 행동 소비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SNS에서 어느 기업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인 기업철학과 가치로 소신껏 경영하는 것이 돈을 벌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고 덧붙였다.

▲ 사진=이코노믹 리뷰 박재성 기자

한슨 교수는 윤리경영을 위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할 12가지를 제시했다.

①Corporate statement of value(기업의 신조‧가치선언문) ②Corporate standard of conduct(윤리적 행동강령) ③“Tone at the Top" - example, support of CEO for ethics(최고경영진들의 의지, 상부의 어조) ④Repeated communication of value(반복된 가치 소통) ⑤Training in values and standards ⑥Whistle-blowing system to report unethical behavior(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내부고발 시스템 구축) ⑦Systems designed to embody values(기업 가치를 구체화한 시스템 구축) ⑧Appropriate penalties for unethical behavior(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적절한 처벌) ⑨Responsibility for ethical behavior with line executives(경영책임자와 함께 윤리적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 ⑩A corporate leader with oversight over ethics(윤리 관리감독 리더) ⑪Professional Staff to implement ethics(윤리 실행에 대한 전담 직원) ⑫Board responsibility for Ethics and Ethics risk(윤리와 윤리적 리스크에 대한 광범위한 책임소재).

다소 추상적인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만이 답이란 말이다. 단순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이해해서도 안된다는 얘기다. '윤리경영'을 이행하려는 경영진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당부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