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놈들이 남측에 포(砲) 공격을 해도 서울 명동은 안전할 거야.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잖아? 아무리 북한이래도 명동을 겨냥해 쏘겠어?”

지난 2010년 11월 일어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이후 당시 시중에 나돌던 우스갯소리다. 남북한 정전상태를 깨는 전시상태, 즉 전쟁 재연의 공포와 함께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무시 못 할 영향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남한 사회가 안고 있는 ‘북한 리스크(Risk, 위기)’를 희화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 ‘기쁨’과 동시에 민족이 강제로 둘로 나뉘는 분단 ‘비운’을 맞으면서, 이후 70년이 흐른 현재까지 줄곧 ‘북한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대북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남북 쌍방 간 포격으로 촉발된 한반도 전쟁 위기 고조도 ‘고질적인’ 북한 리스크에 속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북한 당국이 고위급 접촉을 먼저 제의해 와 남측과 이틀을 꼬박 넘기는 마라톤 협상 끝에 평화적으로 ‘결자해지’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사실 광복 70년을 거치면서 최빈국에서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성장은 ‘기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분단 상태에서 끊임없이 북한 리스크 변수를 안고 있는 여건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크게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세계인의 눈은 이런 평가와 꼭 일치하지 않는다. K팝, 피겨여왕 김연아, 삼성 스마트폰, 현대 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코리아 브랜드’들이 크게 활약함에도, 여전히 세계인들은 ‘Korea’ 하면 분단 상태에서 군사적 충돌이 잦고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분쟁지역(국가)’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간극의 차이는 우리 경제 분야에서도 심심찮게 북한 리스크 악재로 작용해 오곤 했다.

2000년대에 북한 리스크가 가장 컸던 때는 지난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시기로, 당시 국내 주식시장 코스피(KOSPI) 지수가 3.43% 크게 떨어졌다. 앞서 1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때도 0.79% 하락했다. 이번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야기된 남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지난 8월 24일에도 국내 증시에서 ‘북한 리스크’는 중국증시 폭락과 겹쳐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 ‘공포지수’라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를 약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려놓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 덩치가 커지고, 정부와 국민 등 경제 주체들이 내성(耐性)과 학습효과가 생기면서 ‘북한 리스크’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이번 남북 국지적 충돌 때도 우리 국민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 리스크는 남한 사회를 괴롭히는 ‘고질병’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1주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일대박론은 이런 북한 리스크를 ‘북한 프리미엄’으로 바꾸겠다는 통일경제 비전을 기대감으로 내비친 것이었다.

문제는 북한 프리미엄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내·외적 준비 액션(Action)들이 필요하다는 것. 우선 북한 리스크를 해소할 국내적 액션으로는 5.14 조치로 상징되는 일련의 대북제제에 대한 해제다. 북한군의 남한 관광객 총격사망과 천안함 사건으로 연이어 취해진 대북제재 조치로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대북사업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이번 고위급 2+2 접촉의 합의로 당분간 남북 군사적 긴장 국면이 해소된 상황에서 북한 프리미엄 단계로 접어들기 위한 액션은 경제협력 재개이며, 그 단초가 5.14 조치 해제라고 본다. 최근 우리 정부는 북한 당국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제로 5.14 조치의 해제 원칙을 강조했지만, 남측이 조금 더 ‘통 크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단순 선언식의 사과 요구에 앞서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과의 주체와 수위 등 세부 기준을 제시해 북측에 선택의 여지를 제공, 마치 이번 고위급 접촉 합의처럼 경제교류 재개의 합의를 도출해 5.14 조치로 막힌 물꼬를 빨리 트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북한 프리미엄 관건은 국외적 액션인 북핵 해결이다.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북핵 6자회담에 김정은 정권을 끌어들이기 위한 과감한 대북 제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주도의 서방진영과 이란 간 핵협상 타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핵 해소에 이란 사례처럼 발상의 전환을 이룰 ‘바터(주고받기) 협상’이 적용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대적인 정치·경제적 ‘당근’이 주어지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은 절대로 ‘핵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진영이라 할 수 있는 중국, 러시아도 결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남한 진영인 미국·일본에 북한과 수교 문제를 교환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의미- 정치적 카드를, 우리 정부는 북측에 대규모 물적 지원이라는 경제적 카드를 지렛대로 북한의 탈핵·비핵을 유도해야 한다.

우리 정부나 국민들은 사실 북한 리스크에 진저리 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그 대응 처방은 1차적이고, 감정적이다. 고질병이 도지면 아프다고 끙끙 앓지 말고,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단, ‘제 살 떼어내기’ 고통도 수반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메스(수술 칼)를 남에게 맡겨선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