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흥국들의 위기는 공통점이 있다. 실물자금의 유출입과는 상반된 고정환율제도가 그 배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현재 중국의 '과잉설비' 문제는 과거 동남아 외환위기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시장의 공포심을 가중시킨다.

특히 전문가들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책을 바꿨다는 것은 중국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가 투자심리를 급속도로 위축시킨 만큼 중국 당국의 향후 정책 변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전일대비 7.63% 급락한 2964.97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 12일 종가인 5166.35를 기록한 이후 불과 2달 넘는 기간 동안 42.6% 폭락했다. 지난해와 올해 초만 하더라도 중국 시장 개방에 따른 장밋빛 전망이 만발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전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공포감만이 시장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만큼 시장은 빠른 속도로 무섭게 돌변했다.

중국의 위기설은 단순 ‘설’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위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요소를 통해 발생하고 또 전이되면서 실체를 드러낸다.

현재 중국의 위기설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쟁점은 ‘왜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했는가’이다. 그동안 중국은 분명 위안화 가치제고와 국제화를 위해 노력했고 또한 순항하는 듯 보였다. 중국의 평가절하를 두고 ‘위안화의 국제화’, ‘위안화의 기축화’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지만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분명 이전 중국의 정책과는 상반된 것이다.

물론 위안화 평가절하를 두고 중국이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왜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또 발생한다. 중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중국의 정책이 뒤바뀐 것일까. 그만큼 중국은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은 아닐까.

과거 각국 외환위기로 보는 중국의 위기...환율제도의 문제점

과거 각국의 외환위기는 국가별로 볼 때,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한 가지로 지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불균형’으로 보인다. 실물자금의 유출입과는 상반된 경직된 고정환율제도가 서로 충돌을 일으킨 셈이다.

중국의 상황도 과거 위기를 경험한 국가들과 유사한 정황이 포착된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과잉설비 문제 측면을 보면 동남아시아 위기와 더욱 유사하다.

<아르헨티나>

1970년대 들어 세계 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 직면했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고조되고 경기가 침체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당시 미국은 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979년 긴축정책을 실시했고 주요국들도 이에 동참하면서 세계 경제는 침체기에 돌입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대외환경 악화와 함께 재정 및 경상적자 누적, 대외채무 급증, 성장 둔화 등으로 페소화의 평가절하 압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국가 파산위기로 내몰렸고,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면서 고정환율제 포기와 함께 페소화의 급격한 절하, 주가 급락 등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 아르헨티나 페소화 실질실효환율 추이 [출처:국제금융센터]

한편, 아르헨티나 정부는 위기의 원인을 외부충격에 의한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과 유동성 부족에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부실기업 및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이 늘면서 정부의 재정수지는 더욱 악화되고 경제 부작용은 더욱 심화됐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알폰신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정치개혁 및 노동개혁, 경제 안정화 계획 추진, 적극적인 외채협상 등을 통해 대외 신인도를 제고해 1985년부터 아르헨티나 경제는 안정세를 회복했다.

10년 후인 1995년 위기가 재발한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남미 국가로 확산되면서 아르헨티나도 자본이 유출되는 등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1991년 4월 페소화를 달러화에 1대 1로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도를 다시 채택했다. 멕시코 위기 발생 당시 아르헨티나는 달러페그제도인 통화위원회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멕시코 외환위기 여파와는 무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높은 실업률로 인해 아르헨티나가 결국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며 페소화에 대한 투기세력의 공격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995년 초 외국 투자자본의 유출과 금융기관의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지원과 금융시스템 개혁, 강력한 구조조정 추진 및 경제 안정화 노력으로 1996년부터 안정됐지만 이후에도 반복적이고 만성적으로 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멕시코는 1990년대 초반 초긴축적 통화정책과 임금상승 억제, 환율안정책을 실시하며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냈다. 이에 외국인 자금들이 몰려들었고 멕시코의 페소화는 절상기조가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대외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1993년 이후 멕시코 경제는 역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걷게 됐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미국의 금리상승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정부는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페소화 가치를 막는데 한계에 직면한다.

▲ 멕시코 페소화 미 달러 대비 명목환율 추이(1991년 1월~1997년 11월 [출처:국제금융센터]

결국 멕시코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1994년 12월 20일 14%에 달하는 페소화 평가절하를 단행했으며 같은 달 22일 완전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지속되면서 약 열흘의 기간동안 페소화 가치는 40% 폭락했다.

페소화 가치 급락은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으며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연 80% 이상의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IMF의 정책권고를 전폭 수용하고 부실금융기관을 신속히 처리하는 등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 자본유출이 멈추고 외국인 자본유입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브라질>

1999년 브라질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외채규모와 재정적자였다. 당시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주식 및 외환시장이 급격히 동요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97~1998년 아시아와 러시아 외환위기로 브라질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자 브라질 정부는 1998년 11월 IMF와 접촉해 415억달러의 긴급금융지원 협상을 타결했다.

▲ 미 달러화 대비 브라질 헤알화 환율 추이[출처:국제금융센터]

하지만 재정개혁의 지연과 연방-지방정부간 갈등 등으로 급격한 외자유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브라질 정부는 고정환율제 아래서 헤알화 가치를 방어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1999년 1월 헤알화 평가절하를 강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자유출은 지속됐고 외환시장의 불안도 이어졌다. 이후 IMF, IDB 등의 국제금융기관들이 긴급유동성을 공급해 헤알화 가치가 진정됐으며 외자유출규모도 감소세를 보였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80년대 후반 외국인 직접투자 급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높은 수출증가세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플라자합의 후 엔화가치 상승으로 활로를 찾던 일본계 기업들과 미국, 유럽 선진국의 일부 기업들은 저임금 메리트가 있는 동남아 국가를 생산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중국이 외국인 직접투자의 주요 대상으로 급격히 부상했으며 중국산 저가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동남아산 저가품을 급속도로 밀어내는 등 동남아 국가들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당시 엔화는 약세로 돌아서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일본의 투자도 감소되기 시작했다.

▲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환율 추이 [출처:국제금융센터]

이 시기에 동남아 통화는 1980년대 이후 외자유입으로 1990년대 중반들어 상당히 고평가 돼 있었고 이들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8%에 달했다. 특히 태국은 1996년 경상수지 적자비율이 8%에 이르렀으며 1994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멕시코 수준(7.8%)를 상회했다. 이렇게 대규모 경상수지적자를 겪고 있었지만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정부의 개입과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들의 차입증가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1996년 태국 금융기관들이 대규모 대손에 직면하는 사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해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바트화는 평가절하 압력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에 절하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위기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기는 현실이 될 것인가

시장의 가장 큰 의문은 중국의 위기가 현실화될 것인가 여부에 있다. 현재 시장이 불안한 이유는 분명 과거 각국의 외환위기와 중국의 현재 문제가 유사한 부분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불안감을 키운 이유는 중국의 정책 변화다.

김영준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한 것은 분명 과거와 상반된 정책”이라며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결국 중국이 향후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시장이 안도의 심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현재 중국 증시의 폭락이 다른 시장으로 전이될 경우 우려했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위기는 여러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하지만 그 예상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고 설령 파악이 되도 그 파급 효과를 제대로 진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김영준 연구원은 “중국 부동산 문제, 그림자 금융, SDR 편입 등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헤지펀드매니저는 “글로벌 시장의 불안 해소는 중국 주식시장의 반등에서 시작될 것이며 그 반등은 중국의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벤트에서 출발할 것”이라며 “중국 경기우려를 핑계로 중국 자산 및 글로벌 자산 가격하락을 의도한 측의 숏커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위기는 발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 자산가격의 조정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제상품 가격하락, 각국의 환율에 이어 현재 각국 주식시장으로 이어지는 조정장세를 부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매니저는 “과거 많은 국가들이 위기에 직면하자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에 비하면 중국은 선제적인 셈”이라며 “과거 중국으로 제조업들이 몰리면서 이전에 동남아 국가들에 투자된 설비들이 쓸모가 없어졌다. 이는 동남아 국가들이 위기를 맞이했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최근 미국으로 제조업이 몰리면서 과거 동남아처럼 ‘과잉설비’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과잉설비’는 맞지만 이를 사용할 곳이 이전 위기를 겪었던 국가들과는 달리 많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전이될 경우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