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친환경 농축세제로 ‘스마트 그린’ 앞장선 열혈 마케터

어떻게 하면 그의 머릿속을 훔쳐 볼 수 있을까.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난 달 28일 서울 구로동 애경 본사를 찾은 기자의 관심사는 호기심,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열심이어도 그렇지, 자기 차를 온통 회사 제품 이미지로 장식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 후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난 차량. 조그맣게 스티커를 붙인 정도가 아니었다. 외관 전체를 애경의 친환경 세제 광고로 도배하다시피 한 ‘화려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오는 남자. 대면하는 순간 그가 가진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보고 싶은 욕심이 더욱 솟구쳤다.

별난 아이디어로 회사 유명인 등극

자기 회사 사장과 직원들을 팬으로 둔 사람, 비즈니스맨은 물론 수많은 마케터와 대중을 고객으로 둔 크리에이터. ‘친환경 및 농축세제 전도사’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애경 마케팅부문 이석주 상무(42)다.

그가 손을 대는 브랜드마다 획기적인 친환경 제품으로 변신,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자유·디테일·유머·낙관주의·긍정·겸손·소통 등 그와의 대화에서 ‘이석주 상무가 생각하는 친환경 실천주의’를 엿봤다.

“가는 곳마다 시선을 확 끌겠어요.” 근사한 차에 행한 ‘대범한’ 그의 ‘테러’가 과연 효과는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딜 가나 주목받긴 해요. 좋은 볼거리가 되다 보니 에피소드가 많아요. 주유소에서 세차하는 동안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 물어봐요.

그럼, 신나게 설명을 합니다. 애경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어요.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아주머니가 제 차에서 눈을 못 떼더니 앞 사람과 부딪친 적도 있습니다. 그 분한텐 죄송하지만 이목을 끌기 위한 제 의도는 성공한 거죠.”

자동차 래핑은 전적으로 이 상무의 아이디어. 애경 그룹 내에서도 꽤 유명세를 탔다. 시장 조사 겸 나갔던 신사동 가로숲길에서 우연히 지나던 백화점 사장님으로부터 격려도 받았다. 처음에는 제품 이미지를 작은 스티커 형태로 붙여 봤는데 좀 더 시선을 끌기 위한 묘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래핑. 광고 이미지는 사내 디자인센터에서 만들었고 이 상무는 자신의 차를 친환경 광고판으로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지금 예쁘게 자동차를 덮고 있는 건 ‘순샘 버블’이란 세제다. 왜 이 제품이냐고? 다 이유가 있다. 국내 첫 거품 타입의 친환경 농축세제이기 때문. “보통 액체 타입의 세제는 거품을 내는 과정에서 낭비가 심한 편인데 펌프 한 번으로 바로 거품이 나와 편리한데다 원하는 만큼의 양을 사용할 수 있어요. 또 농축이 돼 있어 이전에 비해 절반가량의 양으로도 충분하고 잘 씻겨 내려가니 환경 친화적이죠.”

그의 이런 별난 시도는 사장님부터 영업 직원들까지 개인 차량에 래핑광고를 하는 유행을 만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더 재미난 사람이었다. 친환경 제품 설명판에 그려지는 상징인 북극곰 탈까지 쓰고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직접 신제품을 나눠준 적도 있단다.

그 광경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을 직접 보여줬는데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직원들 책상마다 함께 찍은 기념사진 한 장씩은 다 붙어 있을 정도. 서울 구로동의 공원 앞 광장에서는 직원들과 단체로 춤을 췄단다. 신제품 홍보를 위해 광고모델 유재석 인형 탈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허그 행사를 벌인 적도 있다.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환경기금을 적립합니다. 오히려 광고보다 훨씬 나은 것 같더라고요.”

이 상무의 그 독특함이 소비자들에게도 잘 통할까? “회사 안팎으로 즐거운 이벤트를 많이 만들고 싶은 게 제 생각이예요.” 이색적인 그의 노력 덕분에 이제는 친환경 애경에 대해 고객들이 많이 호응해 주고 있다. “아무리 감성을 넣어 만들고 혁신적이어도 제품 하나를 내놓기 위해 여러 가지 힘든 부분들이 많잖아요. 기왕 하는 거, 직원들에게 하루하루 웃을 기회를 자주 만드는 거죠.”

이 상무의 이런 활동들은 애경의 ‘스마트 그린’ 경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최근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친환경 제품 개발에 그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말하는 ‘스마트 그린’은 무엇일까.

“친환경 제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패키지가 예쁘지 않거나 비싸기 일쑤입니다. 소비자가 희생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세제를 적량만 쓰는 것도 상당히 힘든 겁니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외국 친환경 세제도 친환경 계면활성제를 쓰므로 가격이 두 배예요. 고객에게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면서 친환경을 강요하고 있는 거예요. 스마트 그린이란 경제적으로 편리하게, 자연스럽게 친환경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애경 제품이 추구하는 가치죠.”

서울 구로동의 한 공원에서 ‘세제 정량 쓰기’ 친환경 캠페인의 일환으로 애경 직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겔타입 세제 7개월새 100억 매출

애경의 대표 제품 ‘리큐’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겔 타입의 짜서 쓰는 세제로 대단한 인기와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출시 이후 7개월 만에 누적매출 집계로 100억 원을 돌파, 국내 액체세제 브랜드 중 최단 시간에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출시 5개월 만인 지난해 10월에는 소비자평가단이 써보고 엄격한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난 NGO ‘한국녹색구매네트워크’에서 ‘올해의 녹색상품’에 선정됐다. 이어 ‘2010 글로벌 녹색경영대상’에서 ‘기후변화대응부문 대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

“세제시장에서 액체 타입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가루형은 푹푹 쓰다 보니 헤퍼서 경제성이 떨어지고 또 세제 찌꺼기가 남을 것 같아 액체를 선호하고 있어요. 세제 무게는 가볍게 하고 사용량은 줄여 편리성과 경제성을 함께 높인 제품이 바로 리큐입니다. 아예 세제를 담은 뚜껑채로 세탁기에 넣어버리면 세탁볼 역할까지 하도록 고안했죠.”

한마디로 세탁습관을 바꾸는 라이프 밸류 전략이 주효했다는 얘기다. 마침 인터뷰 당일, 사무실에 직원들이 별로 없었는데 리큐로 녹색소비자 대상을 받기위해 시상식장에 갔다고 했다. ‘스파크 미니’도 발상의 전환을 실현한 제품이다.

초고농축 친환경 세탁세제로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세척력은 2배나 강화함으로써 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빨래를 하기 위해 더운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탄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선 찬물로도 잘 녹게 만들었어요.

찬물과 반응하면서 온도를 높여줘 세탁력을 높이는 원리입니다.” 용해력을 강하게 해서 저온 코스 세탁을 누르게 되면 탄소배출량을 30%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농축이란 단어. 애경의 친환경 정신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세제로 고농축을 통한 사용량 감소, 계량과 부피 등 기존 세제의 불편함을 개선한 혁신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세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그야말로 스마트 그린 세제입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이전 제품 수준이라는 점, 놀랍지 않으세요?”

그는 자기 회사 사장과 직원들을 팬으로 둔 사람, 비즈니스맨은 물론
수많은 마케터와 대중을 고객으로 둔 크리에이터.
‘친환경 및 농축세제 전도사’의 아이콘

영원한 이노베이터 스마트 그린 이끌 것

그와 애경의 조우는 스마트 그린이라는 녹색의 잎과 꽃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농축 제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처음엔 사내에서도 반대가 많았어요.

농축이라고 하니 제품의 정량을 맞추지 않는 것 아니냐, 성능은 제대로 나오는 거냐는 소비자들 인식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순샘 버블의 경우도 ‘겔’로 제형을 바꾼 첫 시도작이여서 의구심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이 상무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의 의견 조율 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3년 전 생활용품 마케팅 임원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애경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애경이라는 회사를 통해, 친환경에 열정을 가진 애경은 그의 두뇌를 통해 시너지를 내며 놀라운 혁신과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그래서 질문했다. 스스로 유능한 마케팅 전문가라고 생각하느냐고. “아니다”라는 짧고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입사 후 1년 반 동안 나왔던 신제품 아이디어들은 전부 제 머릿속에서 쏟아진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후로는 신제품 파이프라인이 딱 끊기더군요. 갑자기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 혼자서는 안 되는구나. 깨달음을 통해 이전과는 달라졌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소통하면서 창의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동기를 부여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 이노베이터, 에너자이저. 매너리즘에 빠져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마케팅 지론이다. 조직 내에서 다소 잡음이 나더라도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별난 도전도 서슴치 말아야 한다는 것.

올 연말까지 애경의 모든 주방 및 세탁 제품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친환경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친환경경영사무국을 발족해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속성을 담아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거예요. 친환경경영사무국을 통해 연구소, 마케팅, 홍보, 디자인센터 등의 부서들이 모여 횡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친환경 경영을 전파하자는 취지입니다.”

제품 이미지로 뒤덮은 자동차를 타고 이곳저곳 눈썹을 휘날리며 달리고 있는 것도 자부심이 컸기에 가능했으리라. 산고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나하나 정성들여 내보낸 제품들이 모두 자식 같은 마음일 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마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을까.

“음… 물론 있죠. 그런데 하나만 콕 집어 얘기해도 되나.”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옆에 있던 세제 하나를 가리킨다. “이 놈입니다.” 그의 차에 붙어 있는 광고 속 주인공인 순샘 버블이었다.

“리큐와 스파크 미니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순샘 버블은 성공 공식을 적용하지 않았던 유일한 놈이었죠. 제형을 바꾼 최초 시도, 해외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으로 파격을 줬거든요. 세제는 뭔가 고리타분하고 비슷비슷하다는 인식을 깬 제품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의 눈물과 열정도 고스란히 스며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상무와 애경은 ‘편안한 친환경, 비싸지 않은 친환경’을 향해 힘차게 행진해 나가고 있다. 조만간 액체세제 시장의 선두자리에 오를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애경의 제품을 쓰면 고객들 스스로가 어느 순간 스마트 그린을 실천하는 친환경 전도사가 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그. 인터뷰를 하면서 어린 아이 같은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 직원들, 고객, 다른 모든 사람과 별난 소통을 통해 단순히 돈을 버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가슴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