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가 없다. 갑자기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손에 땀이 흥건해서 흘러내릴 정도다. 심장은 방망이질 치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거 같다. 이러다가 미치는 것은 아닐까? 주변 사람들도 눈치를 챈 것 같다. 몇 분도 되지 않는 지하철 역 사이가 이렇게 길 줄이야….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역사로 빠져나왔다.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조여 왔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서 있을 힘조차 없다. 의자에 너부러져 앉아있자니,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간다.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

A 씨의 공황장애

어느 날 지하철에서 공황 증상을 겪게 된 중년의 A 씨 이야기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공황이 발생했고, 그날 이후로 그의 삶은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처음에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불안이 몰아치면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우선 내과를 찾아 심장과 폐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 무서운 고통을 경험했기에 의사에게 정밀 검사를 요구했다. 입원까지 해서 갖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실력이 좀 더 뛰어나다는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 좀 쉬라고 했다.

사실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출판사 편집장인 그는 점차 열악해지는 출판 시장 때문에 매일매일 압박 속에 살고 있었다. 입사 이래 단 한 번도 작년보다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늘 성실했던 그는 나름 성과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회사 사정이 악화되었다. 자신과 가족들의 미래를 이해 현실적으로 창업을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그의 성실성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업계 선후배의 도움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창업 준비가 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피로했다. 그리고 육체보다 더 피곤한 마음 속 갈등이 있었다. 매달 출간해야 하는 책도 있고, 저자와도 만나야 하고, 어찌 되었던 후반기 신간 기획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은 늘 하던 일과라 벅차기는 했어도 근근이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그를 힘들게 했던 문제는 회사에다 선뜻 창업을 한다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하면서도, 늘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해야 했으니 말이다.

불안은 불행의 씨앗

늘 불안해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평소 긴장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은 편이었는데, 무엇인가 숨기고 한다는 사실이 더 압박을 해왔다. 자신이 믿었던 도덕적 가치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죄책감이 크게 작용했다. 다행히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공존했기에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불안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잠자리에 들면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희망에 들떠 잠을 놓치고, 또 어떤 때는 죄책감에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결국 그동안 간신히 버텨주던 심리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자 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늘 근처에 병원이 어디에 있나 찾아요. 미팅을 할 때도 미리 검색을 해서 응급실이 있는 병원 근처에 약속 장소를 잡는답니다. 공황이 밀려오는 순간에는 이성이 작동하지 않아요. 이 병으로 죽거나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 순간에는 금방이라도….”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꼼꼼하기는 했어도 소심하지는 않았던 그가 자꾸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 것이다. 진지하게 창업을 포기하고 귀향을 할 생각도 했다. 도저히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다. 베테랑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소년만 남았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TV에서 비슷한 증상의 연예인을 보고는 스스로 공황장애라고 진단하고 정신과를 찾았다. 다행히 A 씨는 치료가 잘 되어 창업 준비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불행한 경험이었다.

불안을 다스리는 자, 행복을 쟁취하리니

정신과 질환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자명하다.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육체적 질병 역시 불행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행복이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감정의 질병인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보다 더 해악을 끼친다. 비록 큰 병을 앓더라도 의지만 살아남으면 질병 극복에도 도움이 되고 치료 후 재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만성질환이 되어도 현실을 수용하고 일 년 정도가 흐르면 아프기 전의 행복상태를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지 자체를 꺾어놓는 마음의 병은 시간이 흘러도 불행에서 빠져나오기가 좀체 쉽지 않다.

오래 전에는 환청이나 망상이 주된 이른바 ‘정신증’이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늘 자신을 비난하는 환청에 시달리거나 누군가 도청을 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행복을 돌아볼 겨를도 없다. 점차 정신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의학적 치료가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는 우울증이 가장 불행을 만드는 병이 되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2020년이 되면 인류를 가장 괴롭히는 질병이 심장병이나 암이 아닌 우울증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불행의 냄새를 맡는다. 사회적으로도 우울증이 어떤 병인지 잘 알려져서 나름의 대책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을 불행에 빠트리는 가장 나쁜 질병이 될 것이다. 불안은 우울보다도 더 큰 자살의 위험인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에서 절대 알 수가 없다. ‘성격이 그러려니’, ‘그러다 말겠지’, ‘그렇다고 병이겠어?’하는 반응이다. 또 스스로도 치료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소심하고 나약해서’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불안에 빠지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치료를 한다면 능력껏 삶을 살아나갈 수 있고, 따라서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황장애와 같이 극단적으로 고통스러운 병이 아니더라도 불안을 자주 느끼거나 걱정이 지나치게 많거나 긴장을 자주 한다면, 한 번쯤 불안을 다스려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불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불안은 경우에 따라 에너지도 되기 때문이다. 또 무조건 병원을 찾으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규칙적인 생활, 유산소 운동, 충분한 휴식 그리고 카페인이나 알코올을 절제하는 생활만으로도 불안이 경감된다. 이런 노력에도 불안이 자꾸 괴롭힌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불안이 가라앉아야 비로소 행복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