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미 언어문화교육개발원 원장.

한 어린이집에서 남자 아이가 한 살 더 많은 여자아이를 장난감으로 때려 코피가 났다. 당황한 엄마가 사고를 수습한 뒤 아들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누나가 놀아주지 않아 화가 났고, 그래서 때렸다고 했다. 강아지는 기쁨과 매우 좋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주인을 핥으려고 한다. 이런 강아지를 더럽다고 거부하거나 화를 내면 강아지는 혼란스러워 하고 심지어 다시는 주인을 핥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자가 느끼는 어떠한 감정과 표현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가 반드시 좋아할 수는 없고, 좋아서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더럽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더 이상 애정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넓게 보면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전하는 일’인데 커뮤니케이션에 능통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고,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반면에 서툰 사람은 어떨까. 당장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쳐버리거나 오히려 오해를 살 수도 있게 된다. 요즘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로 ‘츤데레’ 성격의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어로 ‘츤’은 ‘차갑다’, ‘데레’는 ‘부끄러워하거나 걱정하는’의 뜻인데, 겉으로는 차갑고 냉정하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워하거나 걱정하는 성격을 뜻한다. 이 캐릭터가 진정 인기가 있으려면, 드라마 속에서 자주 속마음이 노출되어야 한다. 즉 서툰 표현으로라도 진지하게 표현되어야 하고, 그 서툰 말과 표현이 상대 주인공을 감동시키고 시청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끝까지 차갑고 냉정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부각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이 중요한 ‘서툰 말과 표현’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잘 하지 못하고 혹은 소홀히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실시한 이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전 배우자와 결혼생활 중 상대에게 애정 표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이유’를 물었다. 이에 남성의 61.4%는 ‘구태여 말을 안 해도 속마음을 알 것 같아서’라고 답했고, 여성의 47.6%는 ‘쑥스러워서’라고 답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두 가지 이유가 공통적이었다.

상대의 어떤 면을 칭찬하고 관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하고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노력은 연애나 결혼생활의 시작단계보다는 유지하거나 지속하는 단계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이심전심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이러한 표현이 자주 오가며 서로의 믿음과 신뢰가 두텁게 쌓였을 때 가능한 것이며, 그마저도 유지하려면 또 다른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육아 서적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팁을 알려주는 서적에서도 감정적 소통과 상호작용을 많이 언급한다. 이미 살아볼 만큼 살았고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다고 생각하거나 결혼생활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제는 얼마나 자신과 함께 하는 상태와 감정을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며, 상대를 외롭지 않게 또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어떤 개그맨 부부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혼생활의 그 많은 시간 동안 밥을 함께 먹으며 점점 말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운한 감정이 쌓인 아내는 큰 것이 아닌 ‘남편이 먼저 밥을 먹고 일어서지 않고 기다려줬으면…’, ‘내 말을 들어줬으면…’ 같은 소소한 관심과 배려를 원했었다는 심경을 털어놓아 보는 이들에게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가 가족과 친구, 사회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배워야 할 점은 어떤 관계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며 애정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무뚝뚝한 그 사람의 행동 속에 담긴 마음을 알아내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언어적, 비언어적 애정 표현에 대한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