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이었다. 흑백만 지원하던 TV가 컬러로 세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청자는 흑백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시각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1980년 12월 1일 KBS 1TV가 국내 최초 컬러 방송 시대를 열었다.

또 다시 대전환이 예고됐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변화의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이번에는 평면(2D)에서 입체(3D)로의 전환이다. 지난 80년 동안 TV는 세상을 2D로만 보여줄 뿐이었다. 이때 등장한 3D TV는 기존 제품을 빠른 시간에 완전히 대체할 것처럼 보였다.

촉매제는 따로 있었다. 할리우드의 3D 블록버스터 영화 <아바타(2009)>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많은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크게 흥행했다. 전 세계 영화 흥행 수익 역대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3D 영화가 이토록 상품성이 있다는 것에 업계도 놀란 눈치였다. TV 제조사들도 이런 흥행에서 수익 창출 기회를 엿봤다. 3D TV를 출시해 영화관에서의 감동을 집안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전자·LG전자·소니 등 글로벌 TV 강자들이 대규모 3D TV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에 기회가 찾아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FIFA 월드컵 경기 중계방송이 3D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TV 제조사들은 너도나도 프리미엄 3D TV를 선보이며 마케팅 전쟁에 돌입했다. “남아공 월드컵 3D로 보세요!” 그 시절 TV 제조사들은 3D TV를 빨리, 그리고 많이 팔고 싶어 했다.

소비자의 관심은 잠깐이었다. ‘3D TV 실패론’이 등장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 다음 해 CNN은 2010년 실패한 10대 기술 중 하나로 3D TV를 선정했을 정도다. 마케팅 열풍이 불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실패론이 등장한 셈이다.

그 이후에도 3D TV 판매량은 조금씩 올라갔다. 다만 업계 기대만큼 팔리진 않았다. 2D TV가 3D로 대체되는 현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3D TV는 2013년 글로벌 TV 판매량의 20%(4497만8000대)를 차지한 것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마저도 프리미엄 TV에 3D 기능을 포함했기 때문에 가능한 점유율이었다.

‘2% 그 이상’ 부족해

왜 3D TV는 2D를 대신할 수 없었나. 이 실패에는 다소 전형적인 면이 있다. 달리 말하면 교과서적인 실패라는 것이다. 2010년을 돌이켜보자. 당시 3D TV의 기술력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상태인데 무리하게 마케팅을 시도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술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제품을 상용화해야 한다는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게는 시장 선점도 중요한 과제인 까닭이다. 그런데 상용화와 함께 마케팅에 전력투구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기대치를 한껏 올리는 역할을 한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당시 제품들에 적용된 기술력이 소비자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실망한 것이다. 높아진 기대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3D TV는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패’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당시 3D TV의 기술적 한계는 분명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 중 하나가 ‘전용 안경’을 착용해야만 TV를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지만 큰 차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TV를 보는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식사를 하고, 가족과 수다를 떨며, 휴대폰을 만지며 TV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입체안경을 쓰고 이런 일들을 하기엔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단시간에 사람들의 시청 습관을 바꿀 만큼 3D TV의 파급력이 대단하지는 않았던 이유다.

시청 경험도 충분히 매혹적이지 못했다. 전용 안경을 쓰고 보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것은 물론 해상도가 기존 TV에 못 미쳤고, 눈 또한 금방 피로해졌다. 호기심에 3D TV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3D TV를 보유한 사람 가운데 12%만 이 기능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안경을 써야만 한다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었다. 무안경식 3D TV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 역시도 기술이 완전에 가깝다고는 볼 수 없었다. 화질은 더욱 떨어지는 반면 가격은 높아지기 때문에 흥행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현재 일본 샤프가 무안경식 3D 8K LED TV를 공개했을 만큼 기술 발전은 거듭되고 있지만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비싼데 볼 게 없다

높은 가격이 3D TV의 발목을 잡아챈 것은 분명하다. NPD 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사람 중 45%가 너무 비싸서 3D TV를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는 42%를 차지한 ‘안경을 쓰기 싫어서’보다 높은 숫자다. 3D TV는 일반 TV보다 확연히 비쌌기 때문에 부자들의 사치품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도 흥행에 걸림돌이 됐다. 영화 <아바타> 이후 3D 콘텐츠가 남발됐지만 대중의 선택을 받은 것은 극히 소수였다. 긴 제작 시간과 자본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그럴듯한 콘텐츠가 나오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제작사는 많지 않았다.

그런 까닭일까. 3D TV를 성공시키고 싶었으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콘텐츠 제작 장비를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콘텐츠 회사에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중에서야 제기됐다. 결론적으로 3D 콘텐츠 생태계는 쉽게 활성화되지 못했고, 여전히도 “볼 게 없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현실이다.

시행착오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이를 자양분 삼아 미래의 성공을 기약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3D TV는 실패했다’는 오명은 얻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케팅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기술을 가다듬어 그 다음 타이밍을 노렸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마케팅 집중 전략이 먹혀들었을 수도 있다. 본래 수요는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기업의 3D TV 수요 창출 노력은 소비자 욕구와 맞물리기엔 간극이 컸다. 때문에 업체들은 언제나 수요 창출 전략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섣부른 접근이 실패를 부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콘텐츠 부족·비싼 가격·기술적인 한계 등의 문제는 현재 대기 중인 차세대 디바이스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 물론 이것들의 미래는 3D TV와 다를 수 있다. 3D TV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