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건강보험료 폭탄이 떨어졌다. 직장인들이 너무 많은 금액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떤다. 1인당 평균 13만 5550원을 더 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2004년 이후 최고 증가율이라고 한다. 건보공단의 재정적자 문제도 튀어 나왔다. 2조 원에 가까운 적자 운영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임금 정산과정에서 월급이나 성과급이 더 오른 사람들에게 부과된 보험료 추가징수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반발이 커졌다. 심지어 지난 4.27재보선에서 리모델링과 함께 천당 아래 분당 주민들이 야당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 지지로 돌아서는데 한몫 했다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건강보험료가 더 오를 수 밖에 없다. 9억원 이상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보험료를 징구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중 월급쟁이의 건강보험료 부담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재보선 기간 겹쳐 오비이락(烏飛梨落)

이같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건강보험공단이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수혜를 늘리면서 대규모 적자로 돌아선 것이 발단이 됐다. 외국의 경우 상당수가 국고로 부담해온 저소득층 의료비 혜택을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나눠 내도록 하다보니 ‘유리지갑’인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커졌다.

근원지는 청와대다. 지난 달 23일 ‘2011 국무위원 재정전략 회의’에서 건보료 인상안이 집중 논의됐다. 국무위원들은 재정 긴축안을 내놨고,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회의석상에서 “재정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25일. 직장인들의 월급날에 맞춰 기습(?)적으로 증가했다. 언뜻 보면 건보료 폭탄은 건보공단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건보료를 인상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건보료 폭탄은 애초부터 오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해 건보료는 인상되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는 전년도 소득 대비 책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건보료가 올랐다는 것은 고용시장 전체적으로 임금이 인상됐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임금을 많이 받았으니 보험료 인상은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임금이 줄어든 사람에 대해선 환급 조치를 해줬다.

사례로 보면 이해가 쉽다. 2009년 5,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던 사람은 2010년 5,000만 원을 기준으로 건보료가 책정됐다. 2010년 성과급과 보너스 등으로 5,000만 원이 초과된 사람은 2011년 보험료를 더 내야한다.

5,000만 원 이상 추가소득분에 대한 것이다. 대신 임금이 삭감된 사람에겐 해당 부분만큼 건보료를 돌려받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가입자 중 678만 명이 건보료를 더 냈고 195만 명은 돌려받았다. 199만 명은 변동이 없었다.

“건보료 폭탄? 그렇지 않다. 건보료가 인상되지 않았다. 인상은 매년 연말에 이뤄진다. 4월에 이뤄진 것은 정산 작업이다. 지난해 직장인들이 임금을 더 받은 부분에 대해선 더 내고, 삭감된 부분에 대해선 돌려줬다.”

건보공단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정책적, 사회적인 원인이 아닌 근로자 임금상승이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졌을 뿐이라는 얘기다.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임금 상승 등 좋은 일인데 부정적 인식은 왜 그런가”라고 물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발표 시점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4·27 지방 선거를 앞두고 매년 4월 17∼20일 경 이뤄지던 게 늦게 이뤄져 정치권과 결탁했다고 오해를 받은게 결정적인 것 같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2010년도분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 정산 보도자료 발표 일정을 27일로 연기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복지부는 “자료 양이 많아서”란 명분을 내세웠다. 정치권에선 재보선선거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란 얘기가 나왔고 건보료 폭탄이 이슈의 중심에 섰다.

건보료 인상이 아닌 정치적 상황과 발표 시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4일 뒤인 26일. 복지부는 “재·보선 표심을 우려해 발표를 연기하게 된 것이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나서야 ‘건보료 폭탄’의 논란이 잠잠해졌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보공단이 수일 간 아무 이유 없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다. 또 건보공단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적자 운영의 중심엔 2008년 정부로 부터 차상위계층 의료비 지원을 넘겨 받은 것이 한몫 하고 있어 해법이 필요하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차상위 계층 지원 정부가 나서야

분명 건보공단의 운영엔 문제가 있다. 적자 경영을 하고 있고, 매년 국감에서 방만 경영으로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국감에선 적자 상황에서 8억 원을 들여 직원 250명가량의 해외 연수 지원, 2009년 내부 징계 건수 2009년 107건에 달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과거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최근 업무 능력, 전문성 등을 키우며 조직의 건전성을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보공단은 실제 2000년 이후 꾸준히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 수를 감축했고, 비상경영을 통해 재무건전성 확보에 힘을 썼다. 그렇다면 항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적자 운영이 이뤄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정부가 할 일을 넘겨받은 탓이다.

건보공단은 2008년부터 정부가 국고로 지원하던 차상위 계층 의료비 지원을 대신하고 있다. 차상위 계층 의료비 지원은 저소득층에 대한 건강 보장을 말한다. 2008년 1조 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2009년 32억 원, 2010년 1조299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 중 60%가 차상위 계층 의료비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저소득층의 의료지원은 정부 차원에서 부담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을 건보 가입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전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적자 규모는 2013년 1조5122억 원을 시작으로 매년 1조5000억 원씩 증가할 것으로 봤다.

작은 수치에도 민감해 하는 직장인이란 점을 감안할 때 보험료 인상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건보공단의 적자 규모는 계속 커진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줄어 들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이 정치적 논리보다는 시민 건강복지 증진 차원에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올바른 정책이 바탕이 돼야만 민영 의료보험의 활성화 등을 통해 진정한 보건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무조건적으로 걷어서 메꾸려고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를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없을까. 그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의견이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다.

해마다 보험료가 인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수지 구조가 개선될지 여부는 아직까지 미지수. 헌데 국민의 소득수준 향상과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새롭고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날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를 건강보험에만 기대 국가의료보장체계를 꾸려갈 경우 그 부담은 국민에게 건강보험료 인상의 형태로 그대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현실론적 위기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이 민영의료보험이란 얘기다.


민영보험 활성화 돌파구 찾아야

우리나라는 공적보험 체계가 갖춰져 있으면서도 민영의료보험 가입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속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8년 한국 의료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표본가구 7866가구(2만4616명) 중 76.1%가 1개 이상의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10가구 중 약 8가구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민영의료험 시장이 큰 성장을 이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민영의료보험 활성화가 건강보험 민영화로 잘못 이해되면서 처음부터 부정적 인식이 높았던 것이 사실. 지금까지도 건강보험 위축과 의료 공공성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활성화에 대한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최근의 추세를 보면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저소득층과 노인 등 일부 대상만 공적보험에서 보장하고 개인이 민영의료보험에 따로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적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 부분을 보완하는 개념에서 발전시키자는 견해다. 국내 민영의료보험 가입률이 높은 것도 국민들이 공적보험을 이용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민영에서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홍군화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팀장은 “공적보험과 민영보험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장 혜택을 제공하고 건강보험에서 보장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개인별 민영의료보험으로 준비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본적·표준적인 의료서비스는 공적보험이, 고가·신기술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사적보험이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위원인 윤성철 단국대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도 민영의료보험이 건강보험 ‘대체형’이 아니라 비급여 부분의 ‘보완형’이 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도덕적 해이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서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을 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공적보험의 본인부담금을 덜어주기 때문에 환자가 툭 하면 입원하고 의사는 의료수가를 올리기 위해 조력자가 될 수 있다”며 “이 같은 모럴 헤저드가 곧 공적보험의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보험상품 개발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민영보험 활성화에 대해 국가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나 재정경제부는 의료 상품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민영보험을 띄우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반면 보건복지부의 경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각 부처들이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정교한 국가 졍책 하에 민영의료보험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보협회 측은 “건강보험과의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는 민영의료보험을 따로 놓고 활성화를 모색할 수 없다”며 “건강보험의 명확한 역할 재정립 후 이에 따라 안정화의 방향을 맞춰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비싸고 새롭고 다양한 의료기술들을 공적보험으로 보장하기에는 무리다. 민영의료보험의 적절한 뒷받침이 없으면 선진 의료기술은 소위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수도 있다. 서민도 저소득층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민영의료보험 제도 정비가 절실하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