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평가절하로 미국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중국이 수출을 장려하는 만큼 ‘디플레 수출’이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낮은 물가상승률은 미 금리인상에 제동을 걸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디플레 우려’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셰일혁명'을 앞세운 미국이다. 그리고 ‘디플레’는 미 채권가격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이은 디플레 우려는 오히려 미국의 ‘출구전략’ 고민을 일부 덜어주는 셈이다.

지난 11~13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위안화 기준환율을 큰 폭으로 상향조정(평가절하)하면서 오는 9월 미국 금리인상 ‘지연’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Fed-funds 선물에 반영된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지난 7일 고용지표 발표 후 50%를 상회했으나 지난 11일에 40%로 하락했다. 이는 위안화 평가절하로 달러가치가 상승하면서 미국의 금리인상 기대감을 상쇄한 것이다.

▲ 미국 9월 금리인상 가능성 [출처:국제금융센터]

이를 두고 일부 미국 언론에서는 위안화 평가절하조치가 연준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의 지배력은 미국이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87%가 내수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다. 현재 미국의 소비와 고용시장이 견조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위안화 절하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이다.

주요 해외 IB들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미국 경제정책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위안화 5% 절하(실효환율 기준)시 근원 인플레이션 0.1~0.2%포인트 하향 압력, 10% 절하시 경제성장률은 2년에 걸쳐 0.3~0.4%포인트 둔화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분석했다.

도이치뱅크는 위안화가 10% 평가절하되더라도 미국의 경제나 물가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중국의 경기 부양으로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씨티그룹은 위안화 절하조치는 중국의 경기부진이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라고 설명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중국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나 외환시장 측면에서보다는 성장측면에서 접근할 것으로 판단했다.

한편, RBC는 현재까지 위안화 절하폭은 장기추세로 볼 때, 미미한 수준이며 중국계 기업들의 위안화 달러 부채를 감안하면 큰 폭의 절하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위안화 평가절하조치가 미 금리인상에 대한 선제적 조치라는 점도 위안화 가치하락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만큼 중국이 ‘game changer’ 역할을 하기엔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다.

위안화 절하, 미 금리인상 '시기' 아닌 '폭' 제한...자금 순환측면 긍정적

미국의 ‘출구전략’에 글로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유동성 축소’ 우려 때문이다. 미 금리인상에 이은 유동성 축소 우려는 가장 먼저 미 채권시장에 ‘가격 하락’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현재 Fed의 자산 4조 달러의 대부분은 미국채(10년물)로 돼 있다. 금리가 인상될 경우 채권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Fed는 그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Fed가 안정적인 출구전략을 위해 미국채 가격을 받쳐줄 수 있는 요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제유가하락의 주동자로 ‘셰일혁명’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유가하락이 ‘디플레 우려’로 확대돼 미국채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시장금리 상승으로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던 Fed의 자산이 회복됐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또 다른 ‘디플레 우려’를 낳고 있다.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전부터 불거진 중국의 경기둔화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렇다보니 ‘디플레 우려’가 미국의 금리인상에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물가 수준’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디플레 우려’는 Fed의 입장에서 자산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물가를 기준으로 하는 정책 때문에 금리 수준을 정상화 시킬 수 없는 셈이다.

물가 수준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경기활성화로 인해 글로벌 교역규모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각국에서 생산과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면 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글로벌 경제활성화는 미국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 달러 인덱스 추이 [출처:국제금융센터]

Fed가 목표로 하는 기준금리 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유로존, 일본, 중국 등 국가들의 경제가 더욱 강해져야 한다. 현재 이들 국가들이 펼치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총 유동성’ 공급을 충족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낮은 물가수준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총유동성 공급이 충족된다면 미국은 안정적 출구전략을 위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셈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채권왕 빌 그로스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조치에 대해 “중국이 디플레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으로 채권에 강세 재료”라며 “주식에 대해서는 약세 재료”라고 진단했다.

지난 5월 재닛 옐런 Fed 의장은 “미국 증시 밸류에이션이 꽤 높은 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직접적으로 ‘버블(bubble)’이라는 표현은 피했지만 당시 증시 상황과 향후 이어질 미국 금리인상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고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언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은 향후 금리인상과 뒤이어 실시될 출구전략을 위해 채권의 강세가 이어지길 바라는 반면 주식시장의 과도한 상승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무너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부 자산군에 자금들이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 즉, 버블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관측된다. 그로스의 채권과 주식에 대한 전망이 옐런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렸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국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함께 여타국의 경기부양책은 ‘일방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시켜왔던 미국 중심의 정책을 여타국으로 전이하는 자금순환적 요소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국가뿐만 아니라 자산군별 자금순환 측면도 포함된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이 중 하나의 배역을 맡은 셈이다.

현재 시장이 궁금해 하는 것은 미국의 ‘금리인상 여부’가 아닌 ‘금리인상 폭’이다. 금리인상 폭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제에 가해지는 충격은 더욱 커지고 아울러 여타국들의 경기부양을 위한 시간을 뺏는 결과를 낳는다는 부정적 요소가 많다.

최근 낮은 물가상승률은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는 불투명하더라도 금리인상 폭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의 통화정책 추진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상대적으로 더 큰 규모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올해 초 대비 미국 장기채 금리는 반등한 데다 금리인상 기대로 달러화 강세가 유지되면서 사실상 미국은 긴축의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도 가파른 기준금리인상을 억누르는 요인이다.

최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시장이 떠들썩하지만 미국과 글로벌 경제 상황에 부정적 요인만은 아닌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