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3조 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에 운용자금 2000억 달러가 추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고, CIC와는 별도로 다른 투자펀드가 신설돼 귀금속, 에너지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CIC에 2000억弗 추가 투입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CIC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CIC가 조만간 1000억~2000억 달러의 추가 실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CIC가 해외 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당 받은 1100억 달러의 운용자금을 모두 투자에 활용했으며, 미 국채 투자 비중을 줄이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에 따라 조만간 투자에 필요한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CIC는 2007년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지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시절에 해외 위험자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설립된 국부펀드다. 출범 당시 CIC의 보유 실탄은 2000억 달러였지만, 중국 정부가 계속 추가 자금을 투입하면서 현재 운용자금은 3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출범 초기만 해도 CIC는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등에 투자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투자 지분의 가치가 급감하는 손실을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겪으면서 지금은 운용 노하우가 쌓였고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사모펀드 경영진은 “CIC는 설립 초기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 때 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졌다”며 “그들은 앞으로 더 똑똑해지고 엄격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CIC 외에 또 다른 국부펀드 성격의 중앙은행 산하 투자펀드를 설립해 투자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경제지 신세기주간(新世紀周刊)은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에너지와 귀금속에 투자하는 펀드 설립을 검토하고 있으며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펀드를 통해 환율 안정 효과까지 얻고자 한다고 전했다.

CIC 투자 관심 지역은

실탄이 더 마련된다면 외환보유고는 CIC를 통해 어떤 분야에 투자될까.
CIC는 지난해 홍콩에 첫 해외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글로벌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업계에서는 CIC의 주요 투자 타깃이 이머징마켓 보다 미국과 일본에, 산업별로는 부동산, 원자재, 천연가스 등에 집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선진국은 이머징 국가보다 인플레이션이나 자산 거품 리스크에 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국가에서는 경제 활성화 정책이 철회되고 있고 정부가 시중 유동성을 거두기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고 있어 이머징마켓 변동성을 높이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CIC는 최근 일본 기업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블루칩 주식을 대거 사들인 ‘큰 손’이 중국이라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차이나 머니’ 경계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국부펀드 CIC를 포함,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투자 전문 기관들이 지난해 일본 블루칩 기업 90곳 지분을 1조6200억 엔(약 197억 달러)어치 사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4~9월 사이 중국의 블루칩 지분 매입은 더 속도를 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일본 35개 기업에 대한 주식 보유량은 6240억 엔 규모 였는데 6개월 사이에 규모가 1조 엔이나 늘어난 것이다.

4~9월 사이 'SSBT OD05 옴니버스 어카운트 트리티 클라이언츠'로 신고된 주주는 도시바, 시셰이도, 기린, 도쿄일렉트릭파워 같은 일본 주요 블루칩 기업들의 지분을 대거 매입해 주요 주주 명단 10위 안에 들었다.

이와 비슷한 이름으로 신고된 또 다른 펀드 ‘SSBT OD05 옴니버스 어카운트 트리티 808150’도 소니,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 그룹 주식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금융업계는 자국 기업들의 주식을 대거 매수한 펀드가 호주 시드니에 등록된 스테이트 스트리트 뱅크 앤 트러스트 소속이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CIC와 외환보유고를 관리하는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 같은 중국 정부 산하 기관들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CIC는 유럽 인프라섹터 투자 가능성도 열어놨다.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루지웨이(樓繼偉) CIC 회장은 “투자 관점에서 보면 유럽 시장은 낙관적이지 않지만 3000억 달러를 운영하는 CIC는 유럽 투자를 계속 유지할 것이고, 인프라 섹터의 투자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CIC가 역외 투자 외에도 자국 정부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산업에 대거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중국 언론에서는 CIC가 전환사채 인수 방식으로 세계 4위 반도체 조립, 제조업체인 중국 SMIC에 3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SMIC측은 “CIC의 투자는 우리가 계획한 프로젝트가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자금원이 될 것”이라며 CIC의 투자 사실을 확인했다.


외환보유고 활용이 필요한 이유

중국에서 외환보유고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는데에는 엄청나게 늘어난 규모가 한 몫 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은 최근 3조 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고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아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빠른 속도의 외환보유고 축적이 과도한 유동성을 야기하고 중앙은행이 개입을 통해 경제에 유입된 과잉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는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외환보유고의 증가세는 인플레이션과 위안화 절상 압력을 키우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운용자금 추가 투입을 요청한 CIC도 정부가 결국 자금 투입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왕젠시(汪建熙) CIC 부사장은 올 초부터 “정부가 CIC에 추가 운용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며 “CIC에 추가 자금이 생긴다면 충분히 운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 자산에 지나치게 비중이 치우쳐 있다는 문제점도 정부가 외환보유고 다각화를 검토하게 하는 이유다. 달러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질 경우 달러화 자산에 치우친 외환보유고의 구성은 중국에 손실을 남겨줄 수 밖에 없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미 국채를 1조1500억 달러(미국채의 8.2%)어치나 사들여 놓고 있다. 세계 1위 미 국채 보유국이다.

중국 정부 관료 사이에서는 외환보유고에서 미 달러화 비중을 낮출 방안에 대해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CIC를 활용하거나 금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만 외환보유고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들이 얼마나 빨리 실행되는가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의 의견 통일이 얼마나 빨리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CIC의 자본금 확대 문제도 중앙정부는 일찌감치 승인을 내렸지만 중앙은행과 재무부의 이견 때문에 1년 넘게 논쟁이 계속돼왔다.

박선미 아시아경제 기자 psm8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