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4일 백악관을 방문, 생일을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이 직접 쓴 '상선약수(上善若水)' 휘호를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공식사이트

최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54번째 생일을 맞아 선사한 자필휘호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새삼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 반 총장은 세계최강국 지도자 오바마에게 기원전 5~6세기, 즉 지금보다 2500여년 전의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핵심구절 중 하나인 ‘상선약수’를 직접 써서 생일선물로 건넸을까.

세계 ‘파워 원(Power One)'인 미국의 최고 지도자에게 기원전 5~6세기 춘추전국시대 고대중국의 철인(哲人) 노자의 ‘상선약수’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해독(解讀) 코드’가 필요하다.

상선약수의 해독 코드는 ‘환경’과 ‘평화’이다.

잘 알다시피, 전지구적 산업화로 인간은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원료의 편익성에 빠져 물질문명 개발과 인간 탐욕충족의 수단으로 무차별 사용해 왔다. 그 결과, 화석연료의 필연적 부산물인 이산화탄소(CO₂) 등 지구환경을 해치는 배출가스가 급증해 지구를 ‘온실’로 만들었고, 급기야 기상이변마저 초래하고 말았다.

위기감을 느낀 인류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을 막기 위해 범국가적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같은 ‘환경파괴의 절제’라는 세계적 흐름에도 미국은 항상 발을 뺀 채 세계국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했다.

그런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오는 2030년까지 미국 전체 50개 주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32% 감축시키는 ‘청정발전계획(CCP:Clean Power Plan)’을 공식 발표했다.

사실, 그동안 지구촌 탄소배출량의 핵심 축을 담당했던 미국이 앞으로 15년이 흐른 뒤 자국의 온실가스를 현재보다 3분의 1 가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해 진정성에 의문을 나타내거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셰일 에너지 산업으로 재편을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오바마 연방정부의 의욕과 달리, 입법부인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과 석탄 의존도가 높은 주 정부들이 청정발전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낙관적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의 전력 생산은 석탄 37%, 천연가스 30%, 원자력 19%인 반면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고작 5%에 머물고 있어,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이해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청정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실효성에 의문이 들지만 ‘파워 원’ 미국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제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세계는 일단 긍정적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체에너지 확대 정책에 부응해 반기문 UN사무총장은 4일(현지시각) 백악관을 방문,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환경 보전’의 국제 공조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범지구적 환경 보전 아젠다를 공유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반기문 총장이 다름아닌 노자의 <도덕경> 글귀를 담은 휘호를 선물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해석이 가능하다.

즉, 노자는 생명과 자연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상징되는 노자의 도(道)는 한마디로 세상의 이치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생래적으로 터득해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이는 어떠한 인위적 파괴를 거부, 배척함으로써 세상만물의 생명 존중, 그리고 생명의 기반인 자연(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도덕적 실천행위로 연결된다.

반기문 총장이 건넨 휘호 ‘상선약수’는 노자의 말대로 옮기면 ‘최고의 선(善)이란 물과 같다. 물이란 능히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로 풀이된다.

이처럼 물의 무위자연 원리를 도(道)로 설파한 노자의 사상에는 단순히 생명 존중과 환경 보존 정신만 깔려 있는 게 아니다.

노자는 인간세상의 이치도 ‘물처럼 흐르듯이 자연스럽기’를 희망했고, 특히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시키는 위정자들의 행위가 인위적이 아닌 무위자연의 도로 행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연히 노자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고, 피아(彼我)간 상생하는 세상이 구현되기를 원했다.

반기문 총장이 평화주의자 노자의 핵심사상인 ‘상선약수’ 휘호를 집권 2기의 임기를 1년 반 가량 남겨둔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즉, 세계의 지도자가 미국 내 인종분쟁,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조직인 IS(이슬람국가) 처리 문제 등 국내외 산적한 난제들을 마치 ‘물처럼’ 유연하고 처리해 미국과 지구촌이 좀더 ‘평화와 안녕’을 구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반 총장 개인과 세계인의 공통 희망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는 반 총장이 휘호 옆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한자로 ‘오파마(奧巴馬)’라고 적은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심오하고(奧), 친근하며(巴), 힘이 넘치는(馬) 사람”이란 뜻으로 직접 작명했다는 반 총장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이 물처럼 깊고, 편하게, 때론 힘차게 세상을 이롭게 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이 간직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만큼 ‘상선약수’의 노자 사상을 꿰뚫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의 정부’ UN을 9년째 이끌고 있는 반기문 총장의 ‘의미있는’ 선물이 지구 보호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인에게도 각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