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산업군은 과연 어느 업종일까. 자동차일까, 반도체 산업일까. 아니면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 기기 산업일까. 정답은 ‘먹는 장사’다.

식품 산업(의약품, 가공식품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의 식품)의 경제 규모는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식품 산업은 사실상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식품 종류에 따라 경우가 다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전반적인 흐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로벌 경제에서 식품 산업만큼 고부가가치 산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영원히 죽지 않을 첨단산업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데이터모니터(Datamonitor)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세계 식품 시장의 규모는 약 5조8300억달러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약 1.7배, 철강 산업의 5.8배, 반도체 산업의 8배에 이른다. 물론 외식 산업의 분야까지 포함할 경우, 이 규모는 약 40조달러에 육박한다.

K-POP의 인기에 ‘세계 한류지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콘텐츠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식·의약품 업계도 ‘한류 붐’을 따라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가공식품 브랜드들이 글로벌화되어 세계인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여러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지점을 내면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사례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다자간 협상을 통해 무역규제를 타파하면서 자유무역주의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규제는 더 강화되고 있다. 지역별 특수성과 국민 건강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을 내세우는 ‘보이지 않는 규제’, 무역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식품사업은 건강과 직결된다는 이유를 들어 이현령비현령식의 규제로 통제해도 손 쓸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물론 해결한다고 해도 그 기준을 맞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현지사정을 꿰뚫어볼 수 있는, 동시에 현지 식품업계의 사정을 아우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런 ‘특전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식약관이다. K 푸드의 세계화에 앞장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K 푸드의 우수성을 알리는 ‘식품 외교관’인 식약관들. 그들의 세계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식약관 활약 사례 - 흰우유 중국수출 재개

중국 정부는 지난해 5월 ‘해외유제품 생산업체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생산업체로 등록되지 않은 해외의 유제품 수출업체들의 흰 우유 제품 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중국으로 흰 우유를 수출하던 우리나라의 유제품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공들여 개척해왔던 큰 시장을 한순간에 잃게 됐다. 한순간에 약 5조원 규모의 수출 시장이 증발해 버렸다. 느닷없는 통보였다.

중국 정부에서 별도의 예고 없이 살균유의 규정을 ‘생우유 원료 100% 72∼75℃ 상태에서 15초 이상 살균한 제품’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기존에 중국으로 수출되던 우리나라의 살균유는 초고온 순간살균(130∼150℃에서 0.5∼5초 살균) 제품이었다. 이 기준 앞에 국내 업계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려진 결정에 중국 당국의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바꿔버린 규정을 들이대는 중국 정부의 규제 아닌 규제에 1년 2개월을 허비했다. 그리고 시장이 다시 열렸다. 지난 7월 21일, 국내 업체들이 중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유제품 생산업체로 등록되면서 한국산 흰 우유의 중국 수출이 전면 재개됐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은 흰 우유 수출 재개에만 포커스를 맞춰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중국의 정책 관계자들과 국내 유제품 제조업체 간 교섭 및 협상의 모든 과정을 이끈 중국 식약관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던 중국의 갑작스러운 규정 변경에 대해 현지의 식약관들은 꾸준하게 그 부당함을 중국 정부에 항의했다. 끝끝내 국내 유제품 제조업자들과 중국의 국가식품관리국 관계자의 직접 협상을 유도해냈고, 수차례의 협의 과정을 거친 끝에 국내 3개 업체(매일유업, 연세우유, 서울우유)를 정식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 최근 우유 등 K푸드의 해외진출 장벽을 해소하는 식약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K푸드 전시회 모습. 출처=한식세계화 공식사이트

#식약관 활약 사례 - '뷰티 한류' 화장품 전파

현재 중국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추산 연간 30조원(한화 기준) 규모의 거대 시장이다. 2020년경에는 약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우리나라의 화장품 기업에게는 엄청난 기회의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식약처는 현지의 식약관들을 통해서 중국 향료향정화장품공업협회의 진소군 이사장과 수차례 접촉해 한국 화장품 업계의 중국 진출과 뷰티 박람회 개최에 대해 꾸준히 제안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이 주체하는 글로벌 화장품 박람회 ‘원 아시아 뷰티 포럼’이 열리게 됐다. 이 박람회에는 한국 175개 업체 등 전 세계 200여국가 2200여개의 업체가 참여했다. 물론 중국 대륙 전역의 뷰티 마니아를 비롯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매년 한국 화장품의 매력에 푹 빠진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원 아시아 뷰티 포럼’이 시작된 지난해를 기점으로 중국 관광객의 한국 화장품 구매액 규모는 행사 이전인 2013년에 비해 약 10배 가까이 치솟았다.

 

#식약관 활약 사례 - '김치 위생조건 완화' 관철,

수출길 열어

중국 정부는 한국산 김치가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지난 2011년부터 한국산 김치를 수입할 경우 파오자이(절임채소)의 위생 수준에 따르도록 조치했다. 파오자이는 중국의 김치격인 절임채소를 의미하는데, 검출되는 대장균의 수가 100g당 30마리를 넘으면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 단순히 절인 채소가 아닌 발효식품인 김치의 특성상 100g당 30마리 이하의 대장균이 검출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한국산 김치는 사실상 중국의 비관세 장벽에 부딪혔다. 2010년과 2011년 37만8000달러와 23만5000달러에 달했던 우리나라의 중국 김치 수출액은 2013년 ‘0원’이 되어버렸다.

이에 정부는 현지 식약관들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국산 김치에 대한 위생조건 완화를 특별히 요청했고, 시진핑 주석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한국산 김치는 다시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 식품 안전성 검증을 위해 일본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있는 강호일 식약관(왼쪽 가운데). 출처=식약처

식약관,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한국 식품은 현재 일본, 중국, 프랑스, 호주, 칠레, 태국,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50여개 이상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그런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파견된 식약관은 4개국 (중국, 미국, 일본, 베트남) 단 5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각 국가의 식품 시장은 그 나름대로의 시장마다 위생 기준과 식품 기준이 있다. 물론 수출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만, 각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우리나라 식품의 수입을 막도록 의도된 기준이 제시될 경우 기업의 자격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이때 식약관의 활약이 시작된다.

식약관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소속의 해외 업무 담당 공무원이다. 해외로 파견되는 식약관들은 외교부 소속으로 편입되어 해당 국가의 한국 대사관에 상주하면서 식·의약품 관련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나라별 수·출입 관련 정보와 규제협상 등을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식약관의 업무 영역은 크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식·의약품을 해외로 수출하거나 해외에서 수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요한 모든 사항을 준비하고 해결하는 업무다. 현지 정책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회의를 주관하며 우리 측의 입장 설명 및 근거 제시 등을 통해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해외 주재의 우리나라 식품 기업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문제점을 해결하고 양국 정책 관계자 간 협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식‧의약품의 수출 활성화를 도모한다. 한편 식·의약품 협상은 수·출입 품목에 따라 국내 식품업체-해외 정부(식품 관리 기관) 혹은 한국 정부(농식품부)-해외 정부 간 협상으로 구분되는데, 본 협상 준비 과정에 필요한 행정 업무에서부터 참가자 선정 및 연락까지의 모든 업무도 식약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두 번째는 현지 시장을 면밀히 분석해 국내 식·의약품 업계의 진출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관찰자의 업무다. 작게는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식품의 종류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관련 기업의 시장 점유율, 한국 식·의약품에 대한 인식 등을 분석한 자료를 식약처나 농식품부에 정기적으로 보고해 정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식·의약품의 합리적인 관리를 위해 필요한 해외 정보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업무다. 주재국이 채택하는 식의약 관련 주요 정책 및 제도를 조사해 우리나라에 알리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식·의약품 안전 관리 기준 설정 및 허가 심사 기준에 활용된다.

네 번째는 수입 식·의약품의 안전성 검증 업무다. 해당 업무는 곧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식·의약품의 수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식약관들은 담당 국가에서 우리나라로 식·의약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의 안전성 검증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안전성 검증 절차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식약관들은 FTA(자유무역협정)이후 파견국 정부와 식품의약품 안전 관련 규제법률 개선을 위한 협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글로벌 환경 속 한국 식약관의 현주소는

현재 세계 주요 국가들은 식품, 의약품 등에 대한 수입 안전관리 등을 위해 각 수출국에 식약관을 배치해(일본 34명, 네덜란드 47명, 독일 35명 등) 상설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사전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이후 식약처 업무 보고 시 수출국 현지에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할 것을 지시했으며, 최근 국회에서도 국정감사를 통해 현재 파견된 식약관 숫자(5명)으로는 수입국과 수입 물량 대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식약관 증원 방안을 식약처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식약처는 해외 식·의약 사건·사고에 대한 선제적이고 전문적인 대응, 국가 간 상이한 기준·규격으로 인한 통상 마찰 최소화, 국내 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을 위해 EU, 호주, 칠레,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요국들에 대해 식약관 증원을 위해 외교부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식약처 김종욱 연구관은 “글로벌 경제의 활성화로 인해 국가 간 식품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부가가치의 가능성이 무한한 분야가 바로 식품 산업이다. 이에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식약관들의 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은 외교관임과 동시에 각 나라의 식품 산업에 정통한 전문가들이다. 정부 차원의 식약관 육성과 더불어, 그들의 역량을 더 키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뛰는 3인의 식약관 

한국산 식품‧화장품‧의약품 현지 소비자들 '띵호와' / 이윤동 중국(베이징) 식약관

 

 한국 식‧의약품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중국에서는 한국산 식품, 화장품, 의약품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또한 중국의 관계자들은 한국 식약관들이 중국 현지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지 식약관 업무 수행의 특이사항은?

중국으로 수출되는 우리나라의 식‧의약품이 중국에서 제시하는 국가 식품안전 표준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업무의 비중이 크며, 현지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나 질병에서 우리나라 교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업무도 겸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의약품의 원활한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중국에서는 국가 식품안전 표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 식품의 원활한 수출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관련 기관이 중국 식품안전 표준 자료를 업체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업체들은 현지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는 방안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

심한 문화적 차이 극복 관건…의료기기 관심 높아 / 허송무 베트남 식약관

 

현지 식약관 업무 수행의 애로사항은?

업무 특성상 타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단기간의 체류로는 현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쉽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와 문화적 차이가 심하다.

현지 식‧의약품 업계의 시장 가능성과 전망은?

베트남은 특히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의료 관련 업체들이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베트남은 인구 9500만의 큰 시장이다. 의료뿐만 아니라 식품 시장의 전망도 나쁘지 않다. 또한 한류 열풍의 여파로 한국 제품에 대한 현지의 이미지도 긍정적이다.

후쿠시마 원전 이후 對韓 수입제품 안전성 검증에 만전 / 강호일 일본 식약관

 

현지 식약관 업무 수행의 특이사항은?

일본 주재 식약관은 식‧의약품에 수·출입에 대해 농식품부 소속의 ‘농무관’과 업무를 함께한다. 국내 수입에 대한 업무는 식약관이, 일본 수출에 대한 업무는 농무관이 담당한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福島)현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수입 식품에 대한 현지의 안전성 검증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져 일본 주재 한국 식약관은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각 식품별 방사능 검출 수치를 기록해 식약처에 보고한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 주재 식약관은 다른 나라의 식약관처럼 외교부 소속이 아닌 식약처 소속의 파견직 공무원이다.

현재 우리나라 식‧의약품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최근 좋지 못한 한일관계가 우리나라 식‧의약품의 수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단적으로, 한국 식품을 많이 판매해 일본인 고객이 끊이지 않았던 동경의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 타운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특히 일본에서 소주나 막걸리를 판매하는 우리나라 주류 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해 피해가 막대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우리나라 식‧의약품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개별적인 인식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베 총리의 집권 이후 부정적인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