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나이스’ ‘아디도스’ 운동화도 낭만짝퉁의 대표사례

혹시 이스트팩(EASTPAK)과 잔스포츠(JANSPORT)를 기억하는가? 9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30대라면 교복 위에 맸던 이스트팩과 잔스포츠 가방을 기억할 것이다.

흰 양말에 신었던 무크(MOOK) 구두는 또 어떤가? 당시 3만~5만 원 정도에 판매됐던 이스트팩과 잔스포츠는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었다. 이스트팩과 무크 구두는 당시 학생들의 완성된 교복 스타일이었고 가방에 절대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동대문에서 이스트팩의 짝퉁인 이스트팍과 잘스포츠 등을 구매해 메고 다녔다.

대학 신입생 시절, 슬슬 멋을 부릴 나이가 되자 여학생들은 검은색 ‘프라다’ 가방을 손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라다 가방은 평범한 학생이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높았다. 저렴한 것은 15만 원부터 현재는 600만 원 정도까지 그 범위가 다양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용돈을 버는 대학생 용돈으로는 20만 원 이상의 프라다를 구매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찾은 짝퉁의 메카 동대문 상가. 루이비통, 피에르가르뎅, 롤렉스, 프라다 상표들이 즐비하게 보이는 진열대 앞에 서서 “이것밖에 없어요?” 란 말을 꺼내면 마치 ‘둘만의 비밀을 간직해 보자’는 묘한 공감대를 가진 얼굴의 주인이 나타나 A급이 있다며 들어와 보라고 손짓한다.

그를 따라 2층의 후미진 사무실로 올라가면 비닐로 덮인 포트폴리오 같은 캘린더가 나오고 그 중 몇 개를 고르면 바로 창고에서 비닐에 쌓인 가품을 꺼내오던 주인 아저씨. 그는 짝퉁에도 신상(품)이 있다며 100% 수작업임을 자랑하기도 했다. 동대문의 이런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이 손님과 주인의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독창성에 점수를 줄 짝퉁 메이커

짝퉁史의 문을 열었던 트로이카는 잘스포츠(JAL-SPORT), 이스트팍(EASTPACK)보다 조금 더 이른 나이스(NICE)와 아이도스(ADIDOS), 프로 스포츠(PRO-SPORTS)로 볼 수 있다. 아마 지금도 옷장을 열어보면 80~90년대 초 시장에서 구입한 나이키 운동화나 티셔츠가 NICE나 NIKEE이거나 아니면 로고의 꼬리가 정상보다 심히 꺾여 올라간 형태의 나이키 로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짝퉁 상품의 요소인 유사성, 독창성, 응용성, 디자인의 균형 등을 고려해봤을 때 짝퉁의 전성기, 그 최고의 걸작은 바로 ‘아놀드 파마 (ARNOLD PALMER)’의 짝퉁인 '아놀드 파라솔 (ARNOLD PARASOL)’이었다.

필기체로 멋지게 날린 글씨와 컬러풀한 우산 로고 때문에 변형의 여지가 많았던 아놀드 파마는 짝퉁 디자이너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어느 순간 아놀드 파마는 ‘아놀드 파라솔’ ‘아놀드 엄브렐러’ 등의 나름 획기적인 이름으로 과감하게 바꾸며 유사하되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함의 미학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독창성의 낭만을 보여주었던 메이커는 ‘미치코런던 (MICHIKO LONDON)’의 짝퉁 ‘미시간 런던(MICHIGAN LONDON)’이었다. 알파벳 세 글자에서만 차이점을 보여주며(michiKO : michiGAN) 유사성에 머무르지 않고, 미시간과 런던이라는 두 지명을 나란히 연결시킨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심지어는 한글로 써 놓아도 그 유사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시간 런던을 끝으로 대부분은 브랜드를 그대로 복제하는 형태로 짝퉁의 낭만과 멋은 사라져 버렸다.

의류나 가방 등의 잡화 브랜드 이외에도 이 당시에는 일본 만화 캐릭터 등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교묘하게 섞은 만화가 등장했는데 예를 들면 ‘우주대장 애꾸눈’ 같은 것이 그 예다. ‘캡틴 하록’과 ‘캡틴 퓨처’ 라는 만화 두 개를 절묘하게 섞어 캐릭터를 섞어 탄생한 것이 ‘우주대장 애꾸눈’이었다.


최근엔 완전복제 수준 진화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80~90년대의 짝퉁 제품들은 오리지널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해석과 독창성을 가미하여 유머러스하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했다. 때문에 그 시절의 짝퉁 제품들을 떠올리면 마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듯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샤넬, 구치, 루이비통 등의 명품들을 그대로 베껴 모조품과 위조품을 만든 2000년대 이후의 짝퉁 시장은 결코 풋풋한 기억으로 남길 수 없다. 명품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구매욕구가 명품 짝퉁 세계를 만들며 짝퉁만의 독창성은 모두 배제한 채, 외국의 명품을 맹목적으로 가져다 정교하게 복제하는 기술만 발달하고 있다.

2011년 국내 ‘짝퉁’ 상품 단속 결과를 보더라도 1위 샤넬, 2위 루이뷔통, 3위 카르티에, 4위 구치, 5위 페라가모 등 모두 해외 명품으로 나타나며 짝퉁 범람 순위는 바로 제품의 인기도를 반영하게 됐다.

가방 등의 명품뿐 아니라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비아그라 역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짝퉁이 대거 적발되었는데 약의 모양은 물론 포장박스와 사용설명서 등 정품처럼 정교하게 위조돼 일반인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고 정품 비아그라의 성분보다 2배 이상 함유돼 부작용 가능성도 그만큼 컸다.

2000년대는 제품 외에도 TV방송 프로그램의 일본 베끼기가 성행이었다. 많은 오락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이 일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껴 논란이 됐다. ‘도전 지구탐험대’는 일본 NTV의 ‘감동 익스프레스’ 란 프로그램을, ‘TV쇼 진품명품’은 TV도쿄의 ‘무엇이든 감정단’을 표절한 것이었다.

2000년대 이후 짝퉁 천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는 점점 그 오명에서 벗어난다. 미 세관 압류 실적을 볼 때 99년 세계 3위였던 우리나라는 2000년 6위로 떨어지면서 한차례 오명을 벗었고 2006년 지식재산권 보호분야 최우수국으로 선정돼 'WCO 트로피 2006'(대상)을 받으며 점차 짝퉁 천국이란 오명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숫자는 줄어도 정교해진 기술로 무조건적인 명품을 복제하는 최근의 짝퉁 상품과 프로그램보다는 뭔가 어설프고 엉성해도 유머러스함과 독창성이 엿보이던 80~90년대의 아놀드 파라솔과 미시간 런던이 그리워진다.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