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 원장.

일반적으로 창업 상담을 해보면 역세권과 유동 인구를 맹신하는 창업자들이 많다. 업종과 관계없이 일단 역세권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유동 인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비가 더 많이 들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회생의 기회마저 박탈당할 만큼 큰돈을 잃는 사례가 흔하다.

과연 역세권은 어느 업종이나 잘 되는 상권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업종에 따라서는 유동 인구란 신기루와 같아서 실제로는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 업종이 더 많다.

우선 역세권의 정의부터 보자. ‘역(驛)을 중심으로 재화와 용역의 유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범위’를 말하는데, 보통 기차나 전철역을 기점으로 반경 500m 이내로 본다. 물론 학자에 따라 300m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필자는 업종에 따라 반경을 달리해야 한다고 보지만 현재로선 반경 500m로 굳어진 상태다.

전국적으로 보면 상권이 크게 형성된 광역 역세권은 160여개가 있다. 서울에는 2014년 1월 기준으로 총 289개의 역세권이 있고, 승하차 인원을 기준으로 일렬로 세우면 맨 위에 올라오는 역이 일평균 22만여명에 이르는 강남역이다. 이러한 ‘유동 인구의 힘’을 배경으로 강남역 상권의 임대료는 10년마다 2배씩 오를 정도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전후로 SPA 업종들이 대거 강남역 상권에 몰리면서 보증금 15억원에 월 1억원(약 600㎡, 180평 기준)으로 1990년대보다 2배 이상 오르더니, 최근에는 커피 전문점 하나 정도의 크기에도 보증금 7억원에 월세 1억4000만원까지 내는 곳도 있다.

숨을 돌려서, 한 업종으로 영업 중인 역세권 두 곳의 상태를 잠시 들여다보자. 비교하려는 곳들은 앞서 언급한 강남역과 하루 승하차 인원 5000여명인 영등포구청역이다. 만일 동일 업종에다 유사한 크기에서 비슷한 매출이 나온다면 창업자는 어느 역세권에서 창업하는 것이 옳을까. 지극히 우문(愚問)이겠지만 당연히 영등포구청역일 것이다.

실제로 이 두 곳에는 도가니탕 전문점이 있는데 월평균 매출이 5000~6000여만원으로 비슷하다. 만일 유동 인구가 이 업종의 매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강남역 도가니탕집은 영등포구청역에 비해 40배는 더 많이 올라야 맞다. 다시 말하지만 강남역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20만명이 넘고, 영등포구청역은 500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일 업종에 매출액 역시 비슷한데도 유동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임대료와 권리금 등 이른바 창업비는 강남역이 훨씬 비싸다. 이런 경우라면 창업자가 어느 지역을 선택하느냐는 자명해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권(Trade Area)의 개념이 조금 더 쉽게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상권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점과 선, 그리고 면이다. 입지(Location)가 중요한 업종을 ‘점 업종’이라 하고, 공간적 범위(Trade Area)가 중요한 업종을 ‘면(面) 업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유동 인구가 많아야 잘 되는 업종은 ‘선(Line) 업종’이다.

‘선 업종’에 어울리는 것은 상품의 차별성이 크지 않지만 접근성이 중요한 업종이다. 대표적인 것이 편의점인데,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상품의 품질보다는 접근 편의성에 좌우된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3500여종의 상품은 대형마트는 물론 슈퍼마켓에도 대부분 있는 것들이고,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에도 역시 비슷한 상품들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편의점 브랜드를 찾아간다기보다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간다. 사실 소비자들은 무심코 편의점에서 구매를 하지만 여기는 대형마트보다 훨씬 비싼 제품도 많다. 콜라, 사이다, 소주 등은 개당 500원이나 비싸지만 사람들은 주로 편의점을 이용한다.

실제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도가니탕에서는 큰 차이가 없던 강남역과 영등포구청역의 매출이 편의점에서는 확실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강남역의 편의점은 월평균 3억5000만원이 오르지만, 영등포구청 역세권 편의점은 7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약간의 가격 차이보다 접근성이 좋아서 찾게 되는 업종이 유동 인구가 중요한 업종, 즉 ‘선 업종’이다. 이런 업종으로는 화장품점, 분식집, 죽집, 이너웨어 전문점 등이 있다.

이렇게 업종에 따라 매출에 다른 영향을 보이는 것은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 차이 때문이다. 대체로 소비자들은 길을 걷다가 물침대가 좋아 보인다고 덥석 사거나, 노트북 디자인이 멋있어 보여서 바로 사지는 않는다.

이 물건들의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사 제품과 비교해보고, 기능과 상품의 가치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거나 사기 전에 기술적인 문제를 알아봐야 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소비 행태, 즉 침대처럼 먼저 여러 제품을 비교해 보고 사게 되는 상품을 ‘선매품’이라고 하고, 노트북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짚어보고 사게 되는 상품을 ‘전문품’이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런 업종이 역세권 중심에 있다고 해서 굳이 비싸게 주고 거기서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소비습관에 대응하여 선매품이나 전문품은 한곳에 뭉쳐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집결해서 잘 되는 업종을 ‘집재(集在)업종’이라고 하는데 가구단지, 전자상가, 꽃시장처럼 일부 업종은 이렇게 동선이 아닌 한 점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만일 이러한 ‘점 업종’을 ‘선 업종’처럼 밀집도로 유망 입지를 결정한다면 천운이 있지 않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쯤 해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떠오를 것이다. 침대나 노트북처럼 한번 사면 오래 쓰게 되는 제품은 그렇겠지만 음식점은 사정이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내구재는 물론이고 음식점도 마찬가지 논리다. 시간 여유가 있거나 요리가 먹고 싶은 미식가들, 혹은 특별한 ‘전문’ 식사가 필요한 경우는 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선매품이나 전문품처럼. 반면 시간에 쫓겨 얼른 먹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길 가다가 배가 고프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동선이 매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벼운 가공식품이나 기호품, 죽 전문점이나 빙수 같은 가정대용식(HMR, Home Meal Replacement)형 음식업종은 유동 인구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역세권이라고 해도 또 하나 참고할 사항이 있다. 시장 용어로 ‘뜨는 상권’과 ‘지는 상권’이 있는데 아무래도 지는 상권보다는 뜨는 상권으로 들어가야 유리하다. 필자는 어느 상권이 뜰 것인지, 질 것인지를 여러 알고리즘과 전문정보기관의 빅데이터로 분석해 내지만 빅데이터 접근권이 없는 일반인들은 쉽지 않다. 다만 기간을 두고 관찰한다면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다.

첫째, 대상 상권의 유입 인구 수가 점차 증가한다. 특히 유동 인구 중 20~30대 비중이 70% 이상이라면 확실히 뜨는 상권일 수 있다. 둘째, 점포 크기가 점점 넓어지는 추세라면 뜨고 있다는 증거다. 손님 수가 늘어나서 대기자가 많아 늘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셋째, 다른 유사 상권에 비해 이색업종이나 신업종이 많다면 이 역시 청신호다. 뉴트렌드 업종의 테스트 마켓으로 안테나숍을 그 상권으로 정했을 수 있어서다. 넷째, 성형외과·치과·피부과 등 비보험 비중이 높은 진료기관 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면 유리한 상권이며, 마지막으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방문 인증샷이 늘어나고 있다면 관심을 가져도 좋다. 이러한 다섯 가지 유형의 상권이라면 뜨는 상권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이쯤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역세권도 좋고 뜨는 상권도 좋지만 경기가 나쁘면 제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요즘 자영업 경기는 어떤가. 시장 상황을 보면 ‘삼각파도를 탔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인지하다시피 삼각파도는 ‘진행하는 방향이 다른 물결이, 서로 부딪혀서 이루는 파고(波高)가 높은 물결’을 말하는데, 이런 삼각파도를 만나면 웬만한 큰 배도 넘어가게 된다. 얼마 전, 예전부터 잘 되던 서울 서래마을의 한 레스토랑에 갔더니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약하고 간 것이 어색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쿠폰 두 장을 주었다. 20% 할인권이다. 마케팅 방법의 유불리는 예외로 치더라도 분위기상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듯 내수경기가 지난해 세월호와 올해 메르스 사태 물결이 교차하면서 크게 위축된 상태다. 다행히 메르스 종식 선언 이후 정부가 오는 14일을 임시휴일로 지정하고 추경예산도 풀어주는 등의 적극적인 내수 살리기 정책을 펴고 있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냉골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풍경이라면 그동안 꾸준히 성장했던 유흥주점, 브랜드 의류점 같은 업종보다는 편의점, 분식집 같은 저가형 업종 위주로 교체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실제로 서초, 강남지역의 유흥가 주변 일부 대형주점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저가 한식집으로 바꾼 뒤 성공한 사례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어쨌든 창업은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 유동 인구가 매출을 견인하는 수호신이 아니기 때문에 업종에 따라 입지를 달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가급적이면 뜨는 상권을 찾아 도전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