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에는 짝퉁 단속을 피하기 위해 창고를 활용한 매장들이 즐비하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우리나라의 짝퉁 시장 규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일단 보이는 통계만으로도 꽤 크다. 관세청이 지난 2009년 집계한 전국 짝퉁 상품 연간 적발 결과에 따르면 총 763건, 약 1조250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무역 규모에 대비하면 우리나라 상품 중의 짝퉁 상품 거래 비율은 약 0.63%에 이른다.

1%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중국과 대만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중국과 대만을 같은 중화권 국가로 규정한다면 세계에서 2번째로 짝퉁 거래가 많은 셈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들은 0.1%대 초반의 짝퉁 상품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나라의 짝퉁 상품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짝퉁 상품은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어떤 짝퉁 상품은 알 만한 사람만 아는 곳에서 몰래 팔리기도 하고, 어떤 상품은 사람들이 다 보는 공개 시장에서 정품과 같이 판매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짝퉁 시장. 과연 얼마나 퍼져 있고, 무슨 상품이 어떻게 팔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짝퉁 마니아들이 짝퉁 구입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오픈마켓, 할인 미끼 짝퉁 대량유통

수도 서울에서 짝퉁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은 어디일까? 서울시가 특허청·소비자단체들과 시내를 돌며 단속한 결과 옛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패션타운이 이른바 ‘짝퉁 왕국’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내 전체 짝퉁 상품 거래 점포 중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대문의 뒤를 이어 남대문시장,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신촌로터리 주변, 영등포역 주변, 명동 등이 대표적인 짝퉁 유통 지역으로 꼽혔다.

동네마다 잘 팔리는 짝퉁 상품의 업종도 천차만별이다.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의 경우 짝퉁 메카답게 품목이 다양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신촌의 경우 청년층이 주로 애용하는 캐주얼이나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짝퉁 상품이 많았다.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은 골프웨어나 명품 위조가방 등 이른바 ‘상류층 짝퉁 상품’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으로 시장이 확산되면서 짝퉁 상품도 전자상거래를 타고 더욱 퍼지고 있다. 오픈마켓 업계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전문 쇼핑몰에서 유통되는 제품도 상당수가 짝퉁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낮에는 정상제품을 팔다가 밤에는 짝퉁 사진을 올려놓고 판매하는 수법을 주로 이용한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정품의 60~70% 수준으로 할인하는 수법을 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짝퉁 상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와 ‘엠브레인’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228명을 대상으로 명품 브랜드 짝퉁 상품(모조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짝퉁 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전체의 70.9%를 기록했다.

짝퉁을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2명 중 1명은 ‘정품 가격이 경제적으로 부담돼서’라고 답했으며, ‘정품이 품질과 디자인 대비 너무 비싸다’는 의견도 24.7%에 달했다.
소비자들이 짝퉁을 주로 구입하는 곳은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이 46.9%로 가장 많았고, 인터넷 오픈마켓이라고 응답한 이들도 35.1%에 달했다.

빅리그 축구 유니폼 전성시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짝퉁이 거래되는 동대문 인근. 서울 을지로지하상가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의 끝자락에는 스포츠용품 전문상가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많이 끄는 품목은 단연 축구 유니폼이다.

축구 유니폼이 잘 팔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02년 월드컵 개최 이후 축구의 저변이 확대된 데다, 해외 유명 클럽이나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외출복처럼 입는 문화가 퍼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유니폼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가히 유럽 축구 올스타전을 보는 듯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 첼시의 파란색 유니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도 매장 벽에 걸려있다. K리그 클럽인 서울이나 수원의 유니폼도 빠지지 않는다.

유니폼에 새겨진 이름들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디디에 드로그바, 페르난도 토레스는 물론 박지성, 이청용의 유니폼도 매장에 걸려 있다.

동대문 인근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니폼 중에는 진품도 있지만 짝퉁의 숫자가 적지 않다. 진품 유니폼의 경우 10만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팔리고 있지만 짝퉁은 ⅓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재질은 정품과 비슷하다. 하지만 품질은 조악하다.

이곳에서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는 최성훈(가명·38)씨는 “정품을 사고 싶지만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는 이들이 몰려오는 곳이 동대문”이라면서 “양심의 가책은 느끼는데 수요가 끊이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판매를 지속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관계 당국에서 단속이 나와도 처벌 수준이 미약하기 때문에 다른 짝퉁 상인들도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짝퉁 상품을 팔다가 적발이 되면 초범의 경우 500만 원 가량의 벌금만 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1990년대 양키시장을 접수하다

외출복 대용으로 동대문에서 리오넬 메시의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산 김성진(27)씨는 “친구들이 유니폼을 사니까 나도 사야겠다는 충동적인 생각 때문에 구입하게 됐다”면서 “유니폼 구입의 주 목적은 외출복이나 운동복 마련이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니폼을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 송현동에 위치한 중앙시장. 경인선 전철 동인천역과 인접한 이 시장은 ‘동인천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주한미군 부대가 있는 지역마다 한 개쯤은 꼭 존재하던 시장의 이름이 ‘양키시장’이지만, 유독 인천과 동두천의 양키시장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을 판매하던 시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양키시장의 중심에는 ‘양키’가 사라지고 ‘짝퉁’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양키시장에서 ‘양키’가 사라진 것은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인천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미군 군수품을 원하는 소비자들도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귀신같이 파고든 것이 바로 ‘짝퉁’이다.

이 시장에서 주로 판매된 짝퉁 품종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의류다. 특히 10대~20대 젊은 층이 주로 찾는 유행성 트렌드의 옷들이 많이 팔린다.

중학생 시절부터 이 시장을 주로 애용했다는 윤태홍(28)씨는 “양키시장 덕분에 동대문까지 가는 수고를 덜었다”면서 “인천에서 자란 비슷한 또래 사람들 중 이 시장에서 팔리는 짝퉁 옷을 모르면 간첩이었다”고 회상했다.

최근 인천 양키시장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팀들의 점퍼나 풀오버 티셔츠, 라운드 티셔츠, 후드 티셔츠, 간단한 트레이닝복들이 주로 팔리고 있고 모조 군복과 전투화 등도 많이 팔리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품과 똑같은 모양의 브랜드 로고가 이 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품과 모조품을 알아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추신수 선수의 소속 팀으로 유명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남색 후드 티. 정품으로는 인터넷에서 1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거의 유사한 디자인의 이 옷은 이 시장에서 2만8000원에 팔리고 있다.

이 옷의 특징은 가슴에 인쇄된 인디언스 구단 워드마크와 인디언 로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모조품의 로고는 정품과 똑같았다. 재질마저도 겉보기에는 정품과 거의 동일하다. 누가 봐도 정품이라고 오인할 만하다.

그러나 이 옷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빨래를 하고 나면 들통이 난다. 세탁기에서 다른 빨래와 섞어 빨아도 뒤탈이 없는 정품에 비해, 짝퉁은 올이 쉽게 나가고 빨래의 건조 속도도 정품에 비해 느리다.

팀 로고 마크 부분에도 미세한 구김이 가며, 마크 옆쪽 테두리에 문구용 칼로 살살 건드리면 마크가 쉽게 떼어지기도 한다. 이는 정품에 비해 바느질 마무리가 허술한데다, 재질도 면이 아닌 합성 나일론수지가 일부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 나일론수지 때문에 날이 조금 더워지면 입기 불편하다.

몇 번 빨거나 옷을 험하게 입으면 단점이 쉽게 노출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짝퉁 마니아’들은 이 시장을 계속 찾는다. 그들이 이 시장에서 옷을 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7년째 이 시장을 애용하고 있다는 홍인수(30)씨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결론지었다. 양키시장 인근인 인천 송월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짝퉁 옷 생각이 날 때면 부천 집에서 전철을 타고 올 정도로 이 시장과 짝퉁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는 시장을 찾은 날에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점퍼를 입고 있었다. 물론 이 옷도 짝퉁.

그는 “본인이 보유한 MLB 점퍼와 티셔츠 10벌은 모두 다 짝퉁”이라면서 “정품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별 수 없이 짝퉁을 산다”고 말했다. 그는 “적은 돈으로도 비슷한 제품을 살 수 있으니 나름대로 만족감이 든다”면서 짝퉁 구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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