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냉장고 없는 일상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겨울에 언 얼음을 활용했다. 사계절 선선한 동굴에 식품을 저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19세기 이후 냉각 기술이 발전하며 신선한 채소나 과일·고기를 보관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현재는 기후에 상관 없이 세계어디서나 냉장·냉동 설비를 만나볼 수 있다. 에어컨 등 인공적인 냉각 장비도 등장했다. ‘저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례다. 최근에는 에너지 세계에서도 ‘저장’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 출처=LG경제연구원

배터리가 미래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새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력 저장을 위한 비용 부담이 최근 크게 줄어든데다 관련 기술이 발달하며 신규 시장이 개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에너지 저장이 담을 미래, 배터리가 에너지 시장 바꾼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래 시장 개척에는 휴대용 기기 및 전기차에 주로 채택되는 ‘리튬이온 전지’가 그 중심에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저가 제품 출시 등이 전력저장 시장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출처=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전력 저장이 미래 전력망과 전력 소비를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력저장을 이용하면 전력망의 품질을 높이고 피크 발전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전력 공급 안정성과 전력생산 단가 하락 같은 부가 혜택도 얻을 수 있다.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원의 불안정한 전력 품질도 안정시킬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 확대의 촉매 역할도 하는 셈이다.

▲ 출처=LG경제연구원

지역 분산형 마이크로 그리드의 확산도 가속시킨다. 저장 단가가 싸질수록 다양한 발전원과의 조합이나 보다 작은 규모의 마이크로 그리드 구축이 수월해진다. 전력 공급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전력저장의 상용화 측면에서 최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전지의 높은 가격이었다. 이에 따라 전력저장을 통한 전력 공급의 경제성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전지의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어 상황이 달라진 것.

휴대폰과 노트북의 주력인 리튬이온 전지는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10분의 1로 가격이 하락했다. 이후 하락세는 이어져 2005년 kWh당 1,500 달러를 상회하던 전기차용 전지 가격이 이제는 300~400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2020년대 kWh 당 100 달러 시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전력 저장의 단가 하락으로 수급 환경의 급변과 무관하게 편리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의 전력 생산 참여와 에너지 자립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 출처=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전력저장의 확산은 다양한 전력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킬 뿐 아니라 서비스 산업의 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력저장 단가의 하락에 따른 시장의 급성장은 피크전력 생산 수요의 감소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의 확대를 통해 화력·원자력 발전 수요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기차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화석연료의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부연이다.

▲ 출처=LG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김경연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력저장의 경제성은 장치의 가격 수준 외에 전력 가격 체계와 구조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지역별로 상이한 제도와 정책 여건에 따라 전력저장이 가진 잠재력이 나타나는 양상은 달라질 것”이라며 “독일의 자가소비용 태양광 연계, 미국의 빌딩용, 한국의 주파수 조절용 등의 시장 형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너지 수급여건이나 경제 상황, 소비자들의 참여와 인식 등도 전력 저장 및 관련 산업의 변화에 영향을 더할 것”이라며 “전력망이 고도화된 지역에서는 전력저장이 수급 전체의 효율화 및 지능화와 맞물리면서 관련 제품 및 서비스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