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와인바 ‘와인&프랜즈’의 구덕모 사장(62). 인생2막이라는 화두 속에 최근 많은 언론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LG 디스플레이 부사장 출신이라는 그의 화려한 경력 때문이다.

5년 전 구덕모 사장이 와인 바를 오픈 하고 나서부터 인연을 맺게 된 필자로서는 같은 화두로 그를 찾은 것이 되려 미안해지는 순간. 그러나 그는 언제나처럼 정감 있는 목소리로 인생2막을 시작하며 고민했던 시간부터 와인시장이 어려워 힘들었던 위기 순간까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Fast Life에서 Slow Life로의 전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와인을 따를 때 한 손으로 술을 받는 것이 영 어색합니다. 항상 엉거주춤 두 손으로 글라스를 잡는데 손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많은 분들이 같은 고민을 토로하십니다. 한국인의 정서상 어른이 술 따를 때 한 손으로 받는 것이 어색하지요. 그럴 땐 공손히 한 손을 글라스 받침에 대고 계시면 됩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 CEO를 대상으로 와인강의를 하며 나눈 대화이다. 기업체나 대학 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과정 등에서 와인강의를 나가는 구 사장은 ‘CEO라면 기초적인 와인에 대한 에티켓, 포도 품종 등은 알아야 함’을 강조하며 비즈니스에 있어 와인이 ‘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원만한 매개체’가 됨을 강조한다.

이렇게 와인강의를 하며 와인전문가로 활동하는 그가 청담동에 와인&다이닝을 표방한 와인 바를 오픈한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대학 AMP 과정 등 여러 곳에서 와인과 비즈니스를 접목한 강의를 하는 와인 전문가이지만 사실 그의 전공은 ‘와인’이 아니다.

LG디스플레이 부사장으로 은퇴한 그의 직장 생활 경력은 총 36년. 1970년 KOTRA에 입사 후 1981년 LG전자로 옮긴 뒤 25년간 그는 줄곧 마케팅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LG맨이었다. 1999년 11월 LG디스플레이 영업본부장(전무)으로 옮긴 후 2000년 7월부터 영업부문장(부사장)으로 재직해 왔다.

대기업 부사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이력 때문일까? 57세 퇴직을 준비했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은퇴 후 계획을 퇴임 전 충분히 세웠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퇴임 후를 생각한 것은 은퇴 한 달 전 쯤 이었습니다. 대기업 임원치고 퇴임 후를 여유 있게 미리 계획할 수 있는 사람 아마 몇 없을걸요.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정신없이 뛸 테니까요.”

막상 퇴직을 한 달 앞두고 나니 ‘어떤 아이템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까’ 하는 막연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투자 자금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 인생 2막의 아이템을 결정짓는 것은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고민덩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에게 평소 존경하는 선배가 조언을 했다.

“무엇을 하던 평소 좋아하는 일로 하되 그 일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때 함께 있던 거래처 관계자가 무심히 던진 말. “구 부사장은 와인 전문가니까 와인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지 않겠어요?" 그는 무릎을 쳤다.

어려운 비즈니스 상대자에게 와인을 매개로 대화를 이끌어 일을 성사시켰던 여러 번의 경험으로 그는 이미 업계에서는 와인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고 그 역시 ‘와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와인을 다루는 곳. ‘와인 바’였다. 아이템이 정해지자 그 다음부터 끝없는 발품 팔기가 시작됐다.

그는 청담동, 압구정동, 삼청동, 서래마을 등 유동인구가 많고 와인 바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답사를 다녔고 결국 그는 자신의 지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청담동으로 새로운 인생의 터를 낙점했다.

36년간 IT업계의 Fast Life에서 이젠 와인이 지닌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Slow Life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와인 바의 생명은 인테리어와 그 와인 바만의 ‘콘셉트’다. 막상 인테리어 공사단계가 시작되자 그는 콘셉트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부딪쳤다.


뉴욕 소호풍 콘셉트로 차별화 시도

첫 번째 고민, 단순히 와인만 다루는 와인 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음식을 함께 하는 와인 & 다이닝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한국보다 와인문화가 발전한 미국 뉴욕의 소호지역과 일본 동경의 와인 거리를 찾았다. 현지인들의 대답은 ‘단순한 와인 바보다는 와인 레스토랑으로 가는 것이 트렌드’라는 것. 그는 와인 앤 다이닝으로 결정하고 귀국했다.

본격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들어가자 그는 인테리어 콘셉트를 뉴욕 소호 거리에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연출했다. 자신이 잠시 거주했던 미국 소호 거리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인상 깊었던 붉은 색 벽돌과 Wood Floor를 천연소재로 재현해 냈다.

주방 역시 요리는 물론 제빵과 디저트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제빵기와 셔벳 제조기도 들여놓았다. 에어컨과 공기정화 기능이 되는 공조기를 천장에 달았고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와인을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해 500병 정도의 와인이 들어갈 수 있는 와인 셀러(냉장고)를 제작했다.

테이블을 배치할 때가 되자 그는 두 번째 고민에 부딪치게 된다. 인테리어 콘셉트의 차별화였다. 미국 소호 거리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는 와인 레스토랑.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글로벌 비즈니스가 정착이 되며 청담동은 비즈니스의 주 무대가 되었기에 그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우선 프라이비트 한 공간인 룸을 만들되 너무 폐쇄적인 느낌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고 룸 안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룸마다 32~55인치의 LCD 모니터를 장착했다.

결과는 대성공. LCD 모니터가 있는 룸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근처 비즈니스맨들이 찾아와 회의장소로 와인& 프랜즈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적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와인 레스토랑에서 인테리어만으로 승부를 걸 수는 없는 일. 그의 세 번째 고민은 음식의 차별화였다. 와인 바와 레스토랑이 밀접해 있는 청담동에서 음식으로 차별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

와인과 어울리는 이탈리아 음식과 프랑스풍 비스트로로 콘셉트를 정했으나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셰프와의 의논 끝에 한국적인 것을 가미하자는 결정을 했다.

결론적으로 ‘와인&프랜즈’에서는 ‘매생이 파스타’ ‘제주 흑돼지 삼겹살 리조또’ ‘해산물 뚝배기 파스타’ 등 한국 음식을 가미한 퓨전 메뉴가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됐다.

특히 최근에는 ‘봄꽃 샐러드’와 두릅, 냉이 등을 곁들인 ‘봄나물 파스타’, 백김치에 야채, 자몽 드레싱을 곁들인 ‘백김치 샐러드’를 출시해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구사장은 음식의 차별화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매생이 파스타 등 한국적인 것을 가미한 그의 퓨전메뉴는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커뮤니티 통한 인맥관리에도 정성

와인업계는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주식 폭락과 2010년 시작된 막걸리 붐 등은 와인 바를 경영하는 그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줬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와 비즈니스 모임을 갖던 손님들이 그야말로 일주일에 한번 오면 다행일 정도로 발걸음이 뜸해진 것. 사실 와인의 전성기는 3~4년 전인 2007~2008년 즈음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당시만 해도 손님들이 와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병당 80만 원 이상의 프리미엄급 와인들을 많이 찾았었죠. 지금은 와인에 대한 지식도 높아지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젠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많이 찾습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현상은 아닙니다. 단지 매출이란 관점에 대한 대답일 뿐입니다.”

‘와인&프랜즈’에는 한두 번 지나다 들리는 손님보다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일찍부터 ‘사람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좀 더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CEO와인모임이나 대학의 AMP과정 등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한 인맥관리’라고 할까?

와인 바를 경영하는 이점 때문에 함께 공부하던 CEO들이 와인& 프랜즈에서 모임을 가졌고 단순 정기 모임 이외에도 우정이 쌓이며 소규모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생기게 됐다. 또 한 달에 한 번 꼴로 재미있는 콘셉트를 정해 고객들의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발길을 유도한 것 역시 그만의 마케팅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즐겨 찾던 와인과 음식’을 테마로 하거나 고객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페트뤼스’나 ‘로마네꽁띠’ 같은 고가이지만 한 번 쯤은 그 맛을 보고 싶은 프랑스의 특등급 와인 테이스팅 같은 예였다.

그는 인생2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경험 속에 묻어나는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조언을 정리해 본다.

첫째, 사업 아이템은 멀리서 찾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시작하라.

둘째, 자신만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셋째,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간과하지 마라,

넷째, 젊은 나이가 아닌 만큼 체력에 신경 써야 한다.

다섯째, 규모는 작게 하는 것이 좋다, 규모가 크면 그만큼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커진다.

여섯째, 사업 아이템의 경기 흐름을 살펴봐라. 혹 와인과 관련된 직종을 선택한다면 비수기인 여름을 피하고 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찾는 가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열정이 있는 분야에 뛰어들어라. 그래야 어떠한 난관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여덟째, 사업자금이 부담된다면 공동투자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 역시 바를 시작할 때 60% 이상은 자비로 투자했지만 나머지는 투자자들을 모아 투자를 받았고 매년 투자 비율에 맞춰 수익 배분을 한다.

“구체적인 매출 실적은 사업자 각각의 몫이므로 노코멘트 하겠다”며 양해를 구하는 그는 “와인&프렌즈를 주주제로 운영한다는 것은 처음 공개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구덕모 사장이 들려주는 인생2막 7계명

1. 본인이 좋아하고 열정이 있는 분야에 뛰어들어라
2. 자신만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3. 인간관계를 소중히 하라
4. 공동투자를 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적다
5. 와인업계라면 성수기인 가을에 시작하라
6. 규모를 작게 시작해 스트레스를 줄여라
7. 늦은 나이만큼 체력 관리는 필수다

최원영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