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안전통신망(국가재난망)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구축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 머물렀다. 국가재난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대승적인 공감대는 있었지만 그 방대한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경찰 및 당국의 재난대비 통신 시스템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국가재난망 구축을 다시 꺼내들었다.

어떻게 추진되나?

국민안전처는 지난 24일 조달청을 통해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 제안요청서(RFP)와 사전규격을 전격 공개했다.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재난망의 조속한 구축을 약속하고 같은 달 27일 국무회의에서 구축 방향이 정해진 이후, 7월 31일 PS-LTE 방식 확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총 사업비는 1조1000억 원 가량이며 8월 정식발주를 시작한다. 시범사업은 약 43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으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지역인 평창군과 강릉시 및 정선군으로 나눠 실시된다.

추진속도는 빠르다. 국민안전처는 2017년까지 PS-LTE 방식의 국가재난망을 구축하려면 조기에 시범사업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입찰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긴급입찰 방식을 택했으며 37개 필수조건이 PS-LTE에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의지다. 시범사업은 내년 2월까지 진행된다.

시범사업 권역은 2지역이며 1권역인 평창은 337억9800만 원의 예산이 집행된다. 2권역인 강릉 및 정선은 82억1600만 원이다. 두 지역 모두 PS-LTE 기지국 설치를 추진하는 사업이며 기간은 180일 동일하다. 국민안전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재난망과 상용망 간 연결 방식을 로밍 방식으로 진행하며 상호접속료나 서비스 수준 등을 살핀다.

각 주체들이 사업 영역별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완제품 및 구성품에 대한 참여비율이 50% 이상일 경우에는 최고점을 부여하는 지점이 특기할만한 부분이다. 또 종합평가 점수로 협상적격자를 선정한 이후 협상 적격자중 종합평가 점수가 1위인 제안사를 1순위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선수들은 누구?

최근 국가재난망은 일정이 늦춰지며 당초 계획했던 5월이 아닌 8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 세부내용 검증이 병행되며 예산도 기존 1조7000억 원에서 약 6000억 원이 깎이고 말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국가재난망 논의가 급부상했을 당시 감사원의 수익성 지적으로 사업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던 순간과 오버랩된다. 다만 이번에는 액수만 내려갔을 뿐, 사업은 종전 그대로 추진된다.

참여기업들이 국가재난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금전적인 이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산이 내려간 상황인데다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름값'이다. 국가재난망에 참여해 그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이를 바탕으로 해외사업까지 공격적으로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통신3사를 필두로 ISP 담당인 삼성전자와 SK C&C, LG CNS를 비롯해 외국계 기업인 노키아, 에릭슨 등의 업체가 국가재난망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컨소시엄 진영이다. 이번 시범사업 입찰에는 다수의 사업자를 품는다는 명목으로 컨소시엄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통신3사의 경쟁과 더불어 장비업체의 편 가르기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통신3사를 중심으로 장비 업체들이 각각 컨소시엄을 ‘어떻게 짜느냐’가 변수다.

업체들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KT 단독, SK텔레콤은 SK C&C, LG유플러스는 LG CNS 등과 공동전선을 짤 것으로 보인다. 각 계열사별로 뭉치는 것이 합을 맞추기 좋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LG CNS가 정보화전략계획. ISP를 짰다는 점도 변수다.

여기에서 삼성전자가 변수다. 최근까지 삼성전자는 동시 동영상 전송기술(eMBMS)을 공동으로 개발한 KT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고 최종 선정된 업체에 장비를 납품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KT와의 기술협력으로 공동전선을 펴지 않고 독단적인 흐름을 잡아가는 배경에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삼성전자의 경쟁자는 외국계 장비업체들이다. 국가재난망은 한 국가의 근간을 책임지는 척추와 다름없기 때문에 국산장비업체에게 유리하며, 국산장비업체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는 컨소시엄에 참여해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최종 사업자에 장비를 납품한다는 전략을 짰다. 쉽게 말하자면 특정 진영에 들어가 함께 어려운 승부를 펼치느니, 차라리 중립을 표방하고 나중에 이기는 편과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외국계 장비업체들 입장에는 발등의 불이다. 삼성전자가 특정 컨소시엄에 들어간다면 승부를 걸어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물론 게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외국계 장비업체들이 어떤 컨소시엄에 합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통신사들이 계열사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이루는 상태에서 외국계 장비업체들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삼성전자마저 ‘이기는 편 우리 편’ 전략을 들고 나오자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외국계 장비업체 일각에서는 시범사업 비용이 낮은 강릉 및 정선지역도 어렵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물론 국민안전처는 컨소시엄을 어떻게 구성할지 모르지만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불안요소는 없나

국가재난망 자체에도 돌발변수는 많다. 먼저 예산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책정된 예산으로는 제대로 된 국가재난망을 구축하기 어렵다. 당장 시범사업만 봐도 알 수 있다. 평창, 강릉, 정선에 206개 기지국을 세워야 하는데 이를 약 430억 원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한기의 어려움과 더불어 30개 정도는 허가까지 새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이즈가 작은 2지역은 82억1600만 원으로 강릉에 82개, 정선에 55개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1지역인 평창 68개와 고려해 숫자가 절대적인 예산소요의 증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과 예산이 빠듯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206개도 부족하며, 최대 1800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자가망과 상용망의 방식도 끝나지 않는 분쟁거리다. 일단 정부는 자가망+상용망의 기조를 잡아가며 특수지역을 고려한 촘촘한 설계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이 시간과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늘린다는 비판이 있다. 재난망을 상용 중계기에 연결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비용의 증가가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발주된 ISP 내용 중에는 음영지역 해소비용이 들어가 있는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연계 방안 비용에 대한 고려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소 수 천억 원에 달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국가의 자가망+상용망에 대한 비판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상용망은 기능성은 뛰어나고 대의명분에 어울리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상용망은 180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국 자가망+상용망은 이러한 장단점에서 장점만 잡아가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장점만 잡아가기 위해 정교한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파수 대역 할당도 변수다. 최근 할당이 결정된 700MHz 대역 주파수를 보면 753MHz에서 771MHz이 지상파 UHD를 위한(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지만) 대역으로 잡혀있고 고작 2MHz 폭이 보호대역으로 설정, 이후 773MHz에서 783MHz이 상위 국가재난망 10MHz 폭으로 잡혀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파간섭 가능성을 야기시킨다.

 

이와 관련해 통신업계의 흥미로운 실험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21일 UHD 방송출력을 관악산 송신소 기준 5KW로 잡아 국가재난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테스트했다. 그 결과 반경 5Km 내부에는 전파간섭으로 국가재난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