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2013년 9월 핀란드 휴대폰 강자 노키아로부터 휴대폰사업부를 72억달러(약 8조2980억원)에 인수했다. 전 지구적인 ‘모바일 퍼스트’의 기운을 감지하고 변화를 꾀한 것이다. ‘모바일 강자’로 거듭나기는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MS는 강력한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을 지닌 업체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도 그랬다. 세계 PC 운영체제(OS)와 업무용 SW 시장에서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글로벌 공룡기업이다. 다만 모바일에선 고전했다. 전용 OS를 출시했지만 점유율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노키아와 계약 당시 모바일 OS 점유율은 2.9%에 불과했다.

왜 하필 노키아인가. 그나마 생산되는 MS 윈도폰 중 97%가 노키아 제품이었던 까닭이다. 많지 않은 OS 점유율이었지만 노키아가 구글과 협력하겠다고 선포라도 하는 날엔 MS의 모바일 프로젝트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 말 상황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을 식구로 맞이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찬 발걸음? 발목 삐끗

당시 MS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발머는 “미래를 위한 대담한 발걸음”이라고 평했다. MS는 타 업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체 생산기반 확보로 SW와 하드웨어(HW) 영역에서 동시에 장악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전략이다. 구글(그 당시 모토로라 인수)과 애플의 길을 따르는 것이었으니까. MS에게는 이들과 차별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노키아를 장착하고 시너지를 발휘해 스마트폰 업계의 판을 뒤흔들었는가. 시장은 별 미동 없이 MS를 외면했다. 패색이 짙어지는 듯했다. 극약 처방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지난해 10월 MS는 인수 당시 10년간 사용하기로 한 노키아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새로 출시될 스마트폰 이름이 ‘노키아 루미아’가 아닌 ‘MS 루미아’가 되는 것이다. ‘노키아’라는 전통이 깊은 브랜드가 더 이상 제몫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폐기처분한 셈이다. 감원도 진행했다. 인수 당시 임직원 2만5000여명을 고용 승계했는데, 1만8000명을 대상으로 감원을 진행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인수를 통해 MS에 합류한 직원들이었다. 1975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감원이었다. MS가 얼마나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떤 조치를 취해도 모바일 OS 점유율은 쉽게 상승하지 않았다. 올 1분기 점유율은 2.7%에 불과했다. 휴대폰사업부 인수 당시보다 0.2% 하락한 것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강자들과 제대로 한판 겨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과는 달리 초라한 성적표다. 최근엔 노키아 CEO 출신으로 MS 디바이스그룹을 맡았던 스티븐 엘롭 총괄부사장과 노키아 임원으로 MS에 합류해 휴대폰사업을 총괄해온 조할로 부사장이 퇴사했다. 실적 부진으로 사실상 퇴출당했다는 평가다.

 

노키아 쇼크

심지어 지난 7월 8일(현지시각)에는 휴대폰사업부를 중심으로 직원 7800명을 추가 감원하고 84억달러(9조5000억원)를 회계상 손실 처리한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이 금액은 인수에 따른 비용 75억달러와 구조조정 비용인 7억8000만달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노키아 휴대폰사업부를 인수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인수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고 사실상 후퇴하는 것이다. MS의 2015회계연도 4분기(4~6월) 실적은 당연히 나빴다. 매출 222억달러, 순손실 20억5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앞서 언급한 손실 처리가 반영된 결과다. 이로써 MS는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게 됐다. MS의 스마트폰 야심은 이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MS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당장 발을 빼는 것은 아니다. 올 가을 윈도 10을 탑재한 신제품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그 이후에도 1년 정도는 명목상 사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때 또 다시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스마트폰 디바이스 사업에 계속 투자할지도 모른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모바일 퍼스트 기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차기 OS인 윈도 10을 중심으로 생태계 전략을 수립하는 중이다. 이른바 통합 OS 전략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PC나 태블릿, 스마트폰 등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를 윈도 10을 중심으로 SW 생태계를 통합해 애플리케이션을 디바이스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MS는 무료 OS 업그레이드를 통해 윈도 7과 윈도 8.1 사용자가 윈도 10을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유 있는 실패

다만 노키아 쇼크가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쩌다 MS와 노키아의 만남은 최악의 결과를 남긴 것일까. 두 회사 모두 세계적으로 명성을 구가하는 업체들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MS가 노키아 휴대폰사업부에 눈독을 들일 때 우려의 시선이 따랐던 것은 이유가 분명했다. 당시 노키아의 위상은 어땠는가. 분명 노키아는 한때 휴대폰 시장을 평정했던 업체다. 노키아 휴대폰이 탑재했던 심비안 OS는 전 세계 모바일 OS의 80%를 점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9년 노키아는 심비안 Ltd.를 인수하면서 SW와 HW 사업을 동시에 강화하려 했다.

문제는 노키아가 피처폰 시절에나 막강한 지배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말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노키아는 시대에 뒤처지게 됐다. 쉽게 활로를 찾지 못하고 은퇴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심비안 OS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좌를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OS에 내줬다. 노키아 몰락의 주범이 심비안으로 꼽힐 정도였다.

노키아는 반격을 준비했다. 신규 OS인 미고(MeeGO)를 준비하는 한편 MS의 윈도폰 OS를 심비안의 대안으로 선택했다. 다 알겠지만 이 만남도 시너지를 보진 못했다. 윈도폰 OS도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해 제조사와 통신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유별난 야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노키아 입장에서는 심비안이라는 최악을 피해 윈도폰 OS라는 차악을 선택한 셈이다. 결과는 나빴다.

기구한 운명일까.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스마트폰 일류를 꿈꾸던 두 업체는 일정 부분 합체해버린다. MS도 노키아가 윈도폰 OS를 탑재했을 때와 같은 유별난 야심을 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수를 통해 당장에 힘을 얻기보다 무너지려는 업체를 부활시켜야 하는 입장이 됐다.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 것이 아닌, 다시 한 번 주사위를 굴리는 꼴이 된 것이다.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OS 살리기만으로도 바쁜 MS 아니었던가. OS는 물론 디바이스 사업까지 살려야 하는 이중과제에 빠지게 됐다. 하나도 벅찬데 둘이라니, 머리가 더 아파진 것이다. 물론 MS가 자처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상승효과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동반하락의 쓴맛을 봤다.

일각에서는 노키아가 진정한 승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골칫덩어리를 순식간에 MS에 처분해버렸으니까. 휴대폰사업부 매각 이후 노키아는 변신을 꾀했다. 자회사인 NSN을 노키아 네트웍스로 이름을 바꿔 네트워크·통신장비 사업에 몰두했다. 노키아는 곧바로 흑자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