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약 4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반도체 사업부 일부의 분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파트너들의 이탈도 속속 감지되고 있다. 스냅드래곤 810 발열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위기, 또 위기

20일(현지시각) 주요외신은 퀄컴이 직원의 10%에 해당되는 4000여 명을 감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또 비용절감을 위해 연구개발거점을 인도를 비롯한 다른나라로 이전할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당장 22일(현지시각) 예정된 실적발표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 확실해 보인다. 퀄컴은 지난 4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자사의 수익이 46% 감소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위기의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글로벌 파트너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점이다. 당장 모바일 AP인 스냅드래곤 820이 올해 출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스냅드래곤 810에서 불거진 발열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퀄컴은 이 지점에서 ‘발열논란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소한 이러한 논란이 전체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랜시간 퀄컴의 동맹이던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독자 모바일 AP를 추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퀄컴 입장에서는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양강(强)’인 애플과 삼성전자를 영향권 아래에 두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실질적인 타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반독점 및 약탈적 가격정책(predatory price policy)으로 유럽연합 조사가 시작되는 대목도 부담이다. 현재 퀄컴은 유럽연합으로부터 공정거래 저해향위 및 불법적인 리베이트, 인센티브를 남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만약 이러한 ‘심증’의 ‘확증’으로 굳어질 경우 사업 전체에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저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저가 업체의 거센도전을 받고 있는 대목도 퀄컴의 위기로 지목된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공세에 시달리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저가 반도체 시장의 강자들에게 휘둘리는 격이다. 여기에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이 대세로 굳어지며 제조사들의 단가 낮추기 경쟁이 불가피해진 대목도 악재다. 원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바일 AP 가격경쟁력이 화두로 부상하는 사태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파트너’들을 잃을 수 있다. 자사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G4에 스냅드래곤 808을 탑재하며 신뢰를 보였던 LG전자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 출처=퀄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현 상황에서 퀄컴의 위기는 결국 치열한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 기술적 미흡, 파트너의 이탈, 반독점 등과 관련된 논란이 겹치며 대규모 구조조정 및 사업부 분사 가능성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개가 결국 총체적인 위기론을 말하는 셈이다.

하지만 퀄컴이 ‘당장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퀄컴의 위기는 프리미엄 반도체 전체시장의 위기에서 기인한 구석이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퀄컴은 이미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 전용 모바일 AP 출하에 있어 매출액 기준 1위는 퀄컴이다. 총 6억370만대를 출하했으며 점유율은 40.8%다. 중저가의 다크호스 미디어텍이 3억5260만대를 출하해 23.8%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애플과 스프레드트럼, 삼성전자와 마벨이 그 뒤를 이었다. 매출액 기준으로 잡아도 퀄컴은 108억1500만 달러로 52.9%의 점유율을 가져갔으며 애플과 미디어텍, 스프레드트럼, 삼성전자가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태블릿 기준으로 보면 출하량과 매출액 기준 부동의 1위는 애플이다. 퀄컴은 출하량 기준 4위며 매출액 기준으로는 3위다. 다만 스마트폰은 1위의 점유율이 전체를 압도하지만 태블릿은 그렇지 못하다. 또 매출액을 봐도 태블릿은 시장규모 자체가 스마트폰과 비교하기에는 그 사이즈가 너무 작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데이터를 보면 퀄컴에 대한 ‘지나친 위기론의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퀄컴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최근 성장동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수익이 40% 가량 줄어든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게다가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퀄컴과 멀어지는 지점은 분명 심각한 위험요소다.

이 지점에서 퀄컴은 중국의 올위너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제2공급사를 용납하지 않는 인텔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중국의 록칩, 대만의 TSMC와 연이어 손을 잡는 한편 미국 마이크론 인수설이 나돌았던 칭화유니그룹의 지분 20%를 획득하자 퀄컴도 이를 의식해 ‘우군 만들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협력하기로 결정한 것도 비슷한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퀄컴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행보가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을 것인가는 시간이 말하겠지만, 현 상황에서 퀄컴은 철저한 자구책과 더불어 나름의 대비책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인력구조 감축은 뼈아픈 선택이지만 이를 두고 ‘몰락’으로 말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이유다.

타이밍도 좋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중저가 스마트폰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상태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외 많은 제조사들을 품어갈 여력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파트너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프리미엄까지 고려해 스냅드래곤 820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로 여겨질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퀄컴은 드론 및 자동차 배터리 인프라까지 섭렵하며 ‘반도체 회사’의 틀을 부수려는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직은 일회성 이벤트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충분히 긍정적인 방향성이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반도체는 모든 ICT 기기의 심장이자 두뇌가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이 제조까지 진출하려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분명 대승적으로 탁월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퀄컴은 지난 WIS 2015에서 드론과 전기자동차 인프라를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 최진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