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 대세다. 공중파, 종편, 케이블, 심지어 인터넷에서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그것을 군침 돌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난리다. TV 프로그램마다 셰프들이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이른바 BJ(인터넷 개인방송인) 중에 잘나가는 사람들은 식욕을 돋우도록 야무지게 먹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요리하고 먹고 감탄만 하고 사는 것 같다. 오죽하면 아내가 요리 레시피를 열심히 메모하면서 먹방에 몰입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다가 저녁 준비 시간을 놓쳐 배달음식을 먹는 일이 허다하다는 후배의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다. 먹방 열풍 속에서 출연자의 표정은 모두 행복해 보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셰프나 시청자인 우리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듯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먹방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음식은 즐거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음식과 먹는 행동은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해주기 때문이다. 생존과도 직결되는 이런 본능의 충족은 감정적인 진화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먹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만약 먹고 불쾌하다면 인류는 존속할 수 없다. (음식 먹고 투덜대는 사람들은 결국에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멸종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행복한 것은 같은 것일까? 물론 행복에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기쁘지 않고서 행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쁨만으로 행복을 정의할 수는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졌으나, 음식 값이 어마어마하다면 지갑을 여는 순간부터 기분을 망치게 된다. 또 세계 최고의 셰프가 만든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미각이 호사를 할 테니 기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먹어야 한다면? 또는 너무 바빠서 10분 내로 허겁지겁 먹어야 한다면? 외로움에 식욕은 바닥을 칠 것이고, 빨리빨리 입 안에 집어넣기만 하니 음식 맛을 제대로 맛보기도 불가능하다. 음식만으로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공존해야 한다. 만약 즐거움만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돈과 에너지를 흥청망청 끊임없이 소비해야 한다. 더불어 쾌락에 뒤따르는 중독의 위험성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만사 다 귀찮다고 술독에 빠져서 사는 사람처럼, 즐거움만 쫓는 삶은 술이 깨고 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괴로워 다시 술을 마셔야 하는 술주정뱅이에 지나지 않다. 그렇다고 거꾸로 즐거움을 버리고 의미만을 추구한다면, 이 또한 행복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의미에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주는 반면, 즐거움은 경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미래를 위해서 현실의 고통쯤은 참아낼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열정 페이’라는 그럴싸한 속임수 또한 미래의 성취를 미끼로 하고 있다. 행복연구에 의하면 미래에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요소는 ‘지금 행복한가?’이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란 현재도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즐거움을 밀어내고 온통 미래의 의미만을 부르짖는 것도 행복과는 먼 행동이다. 자 그렇다면 먹방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음식을 보면서 즐거웠던 시간들은 헛된 시간 낭비였을까? 확실하게 느껴졌던 행복은 어떻게 된 것일까?

‘먹방’이 주는 의미

음식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즐거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음식만한 것도 없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체내에 당분과 영양소를 공급해주니 뇌가 즐거워진다. 허기가 져 잔뜩 날카로운 뇌가 대번에 웃음을 짓게 마련이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의 공감 또한 대단한 즐거움이다. 또 틈틈이 방영된 레시피를 보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면, 이 또한 즐거움이다. 요리만큼 정서를 안정시켜주고 또한 창의적인 사고를 증진시켜주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먹방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유는 바로 나름의 의미 때문이다. 우선 음식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한 추억은 비록 오래 전의 일이라도 현재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린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설렁탕이란 것을 먹으러 갔다. 어른들만 앉아있는 식당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벌써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했었다. 뽀얀 국물이 넘칠 듯 말 듯, 모락모락 김을 내며 필자 앞에 놓여졌다. 아버지 그릇과 똑같은 크기의 황토색 그릇에 말이다! 아버지를 따라 커다란 무에 시뻘건 고춧가루로 버무려진 새콤 매콤한 깍두기를 반찬으로 한 수저 떠서 맛을 보았다. ‘음! 이 맛이군!’ 이렇게 음식에 대한 추억을 더듬다 보면 그때의 신기함과 뿌듯함과 같은 감정이 떠오르며, 동시에 그때 먹었던 그 국물의 맛과 입속에서 굴러다니던 밥알의 느낌마저 살아난다. 침이 고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어린 시절의 행복이 솟아오른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바로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들이 될 수도 있고, 처음 만난 이성일 수도 있다. 서로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대화를 한다. 서로 공유하는 시간과 기억이 있고,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어쩌면 관계는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음식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행복한 이유이다. 그리고 끝으로 ‘감사’의 의미가 있다. 먹을 것을 준비해주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음식의 원재료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 말이다. 감사라는 것은 이 세상이 혼자만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감사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고, 그 누군가의 존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인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특효약이다. 외로움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유된다.

먹방이 행복해지려면

먹방을 보면서 행복하다는 말과 느낌이 다 거짓말이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즐거움에만 너무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행복한 척 하고 살지만 실은 불행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행복해지려면 나름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 즐거움의 요소는 많으니 추억, 관계, 그리고 감사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면 행복은 곱절이 된다. 그리고 방송을 그저 보기만 한다면 침만 나올 뿐이다. 직접 요리를 해서 함께 나누어 먹고,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기 바란다. 행복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