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가 농업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수백 년간 축적된 진화의 결과다. 세계 최대의 화훼경매장 시설을 갖췄고 유리온실 농장도 즐비하다. 대학은 연구기관과 합쳐져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고 농식품업을 모아 놓은 ‘푸드밸리’도 주목받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네널란드와 우리의 농업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계 2위의 수출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농업 산업은 우리에겐 훌륭한 교과서다. 네덜란드 와게닝겐 지역에 있는 와게닝겐대학(UR)과 푸드밸리가 네덜란드 농업을 이끌고 있다. 스키폴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알스미어’ 지역, 중부 서해안에 접해 있는 ‘웨스트랜드’도 농업으로 유명하다.

‘푸드밸리’ 세계적 기업들 경연장

네덜란드 와게닝겐 지역엔 네덜란드 농업의 결정체가 숨어 있다. 이곳에는 와게닝겐대학(UR)이 있다. 농과대학과 연구기관이 합쳐진 곳이다. 연구비용은 농기업과 정부출연재단, 대학연구소가 일정 부분 부담한다.

대학뿐 아니라 ‘푸드밸리’도 빼놓을 수 없다. 푸드밸리에는 1500여 개, 20여 개의 농식품분야 연구기관이 입주해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네슬레, 유니레버, 하인즈, 캄피나, 몬산토 등이다.

푸드밸리는 네덜란드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지 않았다. 1990년대 말에 이미 1000여 개의 농식품 기업이 입주한 상태였다. 이들 기업은 제품개발, 시장개척에 협력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푸드밸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받아들인 네덜란드 정부가 2004년부터 세금 감면을 통해 외국의 유명 농식품 기업을 유치했다.

알스미어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건물이 있다. 플로라 홀랜드라는 화훼경매장이다. 이곳에서는 꽃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경매를 실시한다. 꽃은 냉장보관소에 보관돼 있다. 입찰이 성사되면 꽃은 포장실로 이동된다.

포장이 끝나면 섭씨 3도의 찬 공기를 포장박스에 넣어서 배송한다. 이렇게 포장하면 꽃은 48시간 동안 신선도가 유지된다. 포장된 꽃은 인근 스키폴공항으로 이송,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플로라 홀랜드도 정부가 만든 게 아니다. 화훼생산 농가들이 출자해서 만들었다. 농가 주인들이 경매장의 사장과 각 부서의 주요 간부를 직접 뽑는다.

웨스트랜드 지역에서 유명한 것은 ‘유리온실’이다. 이곳에는 6000여 개의 대형 유리온실이 밀집해 있다. 채소와 과일, 가정용 식물 등의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된다. 이곳에 있는 식물은 토양을 보호하기 위해 땅에 직접 심지 않고 화분 형태로 재배된다. 벌레를 막기 위해 바이오 성분의 방충제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성장 가도

네덜란드는 농산물 수출대국이다. 동시에 거대한 수입국이기도 하다. 농산물 수입액은 2008년 말 기준 529억 달러인데 수출액의 65%나 된다. 네덜란드는 수입농산물을 재수출하는 ‘중계무역’과 원료농산물 수입 후 가공해서 수출하는 ‘가공무역’에 강하다.

네덜란드가 수출하는 농산물을 보면 생산량을 능가한다. 장미가 전형적인 예다. 네덜란드는 2008년에 25억 송이의 장미를 유럽 각국에 수출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케냐, 에디오피아 등으로부터 37억 송이의 장미를 수입했다.

네덜란드는 유지류와 조제식품, 맥주를 포함해 가공식음료와 기호식품을 대량으로 수출한다. 그런데 그 원료의 상당부분은 수입농산물에 의존한다. GS&J 농정전략연구센터 고영곤 소장은 “네덜란드는 싼 가격에 원물을 수입해 재포장하고 품질보증을 한 뒤 전 세계에 구축된 판매망으로 비싼 값에 수출한다”고 말했다.

이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1600년대부터 구축해온 세계적인 유통망 덕분에 가능했다. 더욱이 수백 년간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된 식품가공업체의 도움도 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선택과 집중 과정을 거쳐 농업을 성장시켰다. 낙농과 양돈, 화훼, 채소 등 제한된 품목에 집중했다. 이를 테면 감자라도 씨감자, 식용감자, 전분용 감자 가운데 경쟁력이 있는 한 분야를 전문화했다.

화훼농가도 각 농가의 선택에 따라 온실절화, 화훼구근, 육묘 등 특정분야를 특화했다. 해당 분야에서도 한 두 종류의 꽃에 집중해서 경쟁력을 키웠다.

네덜란드가 처음부터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동부내륙지방은 곡물농업이 중심이었다. 사질토양이고 토지생산성이 낮아 대부분 농가가 자급자족에 급급했다.

12세기부터 둑을 쌓아 서부해안지방의 간척지를 조성했다. 국토의 40% 이상이 간척지다. 습기가 많고 염도가 높아 곡물을 재배하기 힘든 토양이다. 농민들은 1500년대부터 간척지에서 잘 자라는 풀을 이용해 젖소를 길렀다. 그러면서 낙농품은 수출하고 식량은 수입했다.

네덜란드는 온화한 해양성기후다. 여름 기온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겨울은 월평균 최저기온이 영하인 경우가 거의 없다. 연중 200일 이상 비가 내린다. 이곳 토지는 벼나 밀농사보다 초지로서 유용했다. 결과적으로 낙농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곡물 의존도가 높은 소비 구조였다. 총식품비 지출의 60%를 곡물 구입에 할당할 정도다. 필요한 식량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17세기에 도시화가 진행됐다. 채소와 화훼의 수요가 늘면서 암스테르담 근교의 간척지에서 원예농업이 발달했다.

채소와 화훼구근 등은 수출 품목으로 발전했다. 1630년대에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로 알려진 ‘튤립 열풍’이 일어났다. 1636년 ‘총독’이라고 불리는 튤립은 구근 한 알에 밀 160t이나 살찐 돼지 50두에 해당하는 가격에 거래됐다.

네덜란드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니레버, 하이네켄, 소비온, 캄피나 등의 회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고영곤 소장은 “네덜란드는 벼농사를 짓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지만 낙농산업 조건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다”며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협의와 합의를 거쳐 사업을 진행하는 게 네덜란드의 힘”이라고 말했다.


“설계주의 농정 버려야 농업이 산다”

“국내 농업이 발전하려면 ‘설계주의 농정’을 극복해야 합니다.”
GS&J 농정전략연구센터 고영곤 소장은 “정부 주도로 농촌을 개발하려는 설계주의 농정이 농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농업분야에서 정부의 힘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면 안된다는 설명이다.

농업 현장에서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농어민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현재 정부가 농어민 후계자를 심사해서 지정한 뒤 후계자를 지원한다. 농사 지을 자금을 대주는 프로그램이다.

고 소장에 따르면 선진국은 농사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 자금을 지원한다. 사람을 지정하는 게 아니라 농업분야가 활성화하도록 자금만 지원한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자연스럽게 몰린다.

고 소장은 “선진국에서는 수익을 낼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몰리도록 제도를 운영한다”며 “반면 한국은 심사하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서 자금을 따내려고만 애쓰는 모습을 보일 뿐 수익을 낼 사람이 배제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농업이 발전하려면 네덜란드의 교육·연구(EER) 체계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는 교육과 농촌지도, 연구가 서로 돕는 체제다. 덕분에 현장과 연구, 교육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더욱이 네덜란드 대학은 교육부 소관이 아니라 농림부 소관이다.

고영곤 소장은 “네덜란드 농업의 중심은 인적자원에 있다”며 “네덜란드는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와 사용자, 노조가 한 마음이 돼 합의해서 크게 도약한 사례가 있듯이 우리도 그런 합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kw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