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1차 산업인가? 대한민국은 아직 그렇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지 않다. 농업이 3차 산업을 넘어 고차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숨은 일꾼들. 그들의 어깨에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다음 세대의 발판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지금 세대들. 농업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진정한 주인공들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경북 영천에 있는 용수농원 안홍석 대표가 배를 가꾸고 있다.


최근 농업분야의 추세는 특허청에 브랜드를 등록하는 것이다. 브랜드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농민들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자신이 공들여 재배한 농산물을 브랜드화해 특화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브랜드 작업에 정성을 쏟고 있다. 충남 청양군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류흥렬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

기발한 아이디어 '구기자 토마토'

류흥렬 대표는 방울토마토 가운데 길쭉한 토마토를 재배했다. 이 토마토는 대추형 토마토라고 불렸다. 류 대표는 충남 청양에서 유명한 구기자를 방울토마토에 접목했다. 구기자는 뿌리와 줄기, 열매가 모두 한약재로 활용된다. 청양에서는 전국에 생산하는 구기자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대추형 토마토는 구기자와 모양이 비슷하다. 그래서 류 대표는 2009년 특허청에 ‘구기자 토마토’를 상표로 등록했다. 그는 청양 구기자 시험장에서 구기자 뿌리, 구기자 줄기(지골피), 열매 등을 이용한 추출액을 지원 받아 연구했다. 사람이 먹기도 부족한 구기자를 비료로 쓴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구기자 액상비료제조법을 개발했다.

류 대표는 구기자를 발효시켜 토마토의 비료로 줬다. 비료 대신 발효시킨 한약재를 사용하면서 무농약 토마토라고 알려졌다. 한약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웰빙 토마토라고 입소문이 났다.

구기자의 비타민C와 항산화 물질이 토마토에 옮겨졌다. 그래서 품질뿐 아니라 맛도 좋았다. 당도가 기존 토마토에 비해 2~3도 높았다. 과육도 단단해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현재 5600㎡의 하우스에서 구기자 토마토를 생산한다. 4㎏ 한 상자에 2만~2만5000원에 대도시로 출하했다. 기존 방울토마토보다 가격이 높아 농가 소득이 늘었다.

류 대표는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면 판매량이 급증하겠지만 물량이 달려서 지금도 블로그에서만 판매하고 있다”며 “생산량을 늘리는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주변에 있는 30여 명의 농민들과 작목반을 만들어 ‘구기자 토마토’를 생산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로열티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농촌에는 로열티를 주고받는 개념이 없다”고 말한 뒤 “소득이 서로 증가하고 있어서 바쁘게 농사짓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충북 옥천에 있는 온당농장에서 야콘을 재배하고 있다.


맛과 영양 더한 유기농 배

경북 영천시에서 배를 재배하는 용수농원의 안홍석 대표. 그는 1995년 대구에서 빚보증으로 사업을 접었다. 그 뒤 무작정 배 농사를 선택했다. 배나무는 1년 만에 영양결핍으로 말라 비틀어졌다. 나무 사이에 심은 무와 상추, 호박 등을 재래시장에 팔면서 입에 풀칠을 했다.

안 대표는 악착같이 공부하고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발효 퇴비가 과일의 맛과 영양을 좌우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유기농 발효 퇴비를 연구했다. 활엽수의 낙엽과 참나무 숯, 깻묵, 콩대, 볏짚, 계란껍질 등 10가지를 혼합해 발효시킨 거름을 만들었다. 완숙해진 퇴비만 사용했다.

그러던 중 더덕을 심은 뒤 바로 옆에 긴 나무 막대기를 꽂아두면 더덕이 잘 자란다는 것을 발견했다. 배나무에 바로 적용했다. 배나무를 심은 뒤 옆에 6m 길이의 막대기를 꽂아서 묶었다.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배나무가 1년에 4~5m까지 자랐다. 지금까지 1년에 1~2m 자라는 게 상식이었다. 수확도 2~3년이 지나야 가능했는데 1년 만에 수확할 정도로 키가 훌쩍 커버렸다. 그래서 키 크는 과정(영양생장)보다 열매 맺는 과정(생식성장)에 주력했다.

나무의 주지나 부주지에 3~5군데 톱질해 가지를 Y자 모양으로 유인했다. 경북대 윤태명 교수는 “나무가 영양분(수액)을 공급시킬 때 톱질을 해 놓으면 올라갈 때는 원활하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못해 영양성분이 꽃눈에 집중돼 다수확과 당도 높은 과실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질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 재배시험장도 운영 중이다. 농장 입구에 시험포를 설치했다. 이곳에 오디와 복분자, 매실, 단감 등 10여 종의 나무를 육종했다. 퇴비와 비료, 농약, 물, 햇빛 등 수십 가지의 상황을 설정했다. 설정된 상황에 따라 관찰일지도 작성하고 있다.

시험장에서 성공하면 본 포장에 활용했다. 무엇보다 노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승용차에 앉아서 풀을 깎는 ‘승용 예초기’를 만들었다. 배나무의 키에 따라 바퀴를 단 ‘층계식 작업대’도 만들었다. 배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미니 경운기도 제작했다.

안홍석 대표는 배 생산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대구한의대와 공동으로 배즙을 개발했다. 배즙에 오미자와 도라지, 생강, 올리고당을 넣어 맛과 영양을 높인 배즙이다. 안 대표는 지난 2009년 ‘안홍석건강배즙’이라는 브랜드로 미국에 4차에 걸쳐 수출했다. 올 3월에는 처음으로 캄보디아에 수출했다.

더욱이 생산한 배와 배즙은 철저하게 리콜제를 실시,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나갔다. 안홍석 대표는 “수확기에 반드시 품질검사를 거쳐 통과한 것만 수확한다”며 “철저한 저온저장 원칙을 지켜 ‘고품질 배’의 이미지를 확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박차고 나온 야콘 전문가

고구마와 모양이 비슷한 야콘 열매.

충북 옥천에 있는 온당농장의 강성식 대표는 ‘야콘’을 재배하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귀농했다. 강 대표는 야콘의 매력에 푹 빠져 5년여 동안 가족을 설득해 귀농했다.

야콘은 1985년 일본의 한 종묘회사가 뉴질랜드에서 구입했고 같은 해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이 일본에서 들여와 1986년부터 2년간 시험 재배한 작물이다. 그 후 강원도와 경북, 충북지역의 농가에서 재배돼 왔다.

야콘의 잎은 화살촉 모양으로 해바라기 잎과 비슷하다. 줄기는 성장하면 150~200㎝에 달한다. 야콘의 뿌리는 성장하면서 고구마처럼 1~6㎏에 달하는 괴근을 형성한다. 고구마와 비슷하지만 배처럼 아삭아삭하고 단맛이 있다.

괴근은 전분을 거의 함유하지 않고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당질로 구성돼 있다. 달콤하지만 살찌는 것과는 무관하다. 비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야콘이 당뇨나 고혈압에 좋다면서 찾는 사람이 꾸준하다.

강 대표는 초기에 시행착오를 거쳤다. 연구원 출신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시행착오를 극복했다.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성공한 농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끊임없는 연구로 야콘과 관련한 자료를 많이 모아 놨다. 강 대표는 초기부터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 연구를 병행했다. 현재 야콘 잎차, 생식용 야콘, 야콘 건조칩, 야콘즙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강 대표는 농사일은 남들보다 뒤늦게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지난해 1억5000만 원의 소득을 기록했다. 다양한 가공 제품을 개발하고 육모사업을 확대해 매출이 꾸준히 늘 것으로 보인다.

강석식 대표는 ‘야콘 전도사’로 유명하다. 인터넷 동호회와 카페 ‘야콘사랑’ 등을 운영한다. 이곳을 통해 야콘의 건강기능성을 알리고 신품종을 개발해 전국 2만여 야콘 농가에 종묘를 공급한다.

느타리 봉지 재배 발상의 전환

장인정신으로 명품 버섯을 생산한 곳이 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이남주자연아래버섯이 바로 그 곳. 이남주 대표는 혼과 열정을 담은 도전으로 10여 년 간의 적자 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남주 대표는 1979년부터 느타리버섯을 농사지었다. 실패를 거듭했다. 10여 년이 넘도록 이익을 내지 못했다. 실패가 지속되어도 ‘자연산느타리’와 같은 품질의 버섯을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을 흔들지 못했다.

그의 도전은 1988년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느타리 봉지재배법을 개발했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버섯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대량 생산체계까지 구축했다. 이 대표는 자연에 가깝다는 의미로 ‘태고 버섯’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사용했다.

고품질 소량생산 방식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했다. 유통혁신과 소득다각화, 소비자의 신뢰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이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일반 느타리버섯보다 5~6배 고가로 판매 중이다.

처음에 900㎡ 규모로 버섯 재배를 시작한 이남주 대표는 2010년 2800㎡ 규모로 확장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 4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버섯 재배 과정 소개와 직접 수확한 버섯을 직거래 형태로 연 1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농촌진흥청 최상호 지도관은 “강소농이 되려면 도전정신, 기술력, 고객감동 등 여려 요소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차별화가 중요하다”며 “지금은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최소 2~3년을 앞서 갈 수 있도록 독창성을 바탕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협의 브랜드를 붙이기 위한 출하 과정.


브랜드 농산물 농협이 도우미

농협은 농산품을 브랜드화해서 판매 중이다. 안심한우, 아침마루, 뜨라네, 아름찬, NH한삼인, 목우촌 등의 브랜드 상품을 내놨다.

농협이 최근 내놓은 브랜드 가운데 안심한우가 뜨고 있다. 출시한 지 1년도 안됐는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농협 측의 설명이다.

친환경 농산물 브랜드인 아침마루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침마루는 전국 108개 지역 농협의 친환경 농산물 브랜드다. 공인인증기관이 인증한 유기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뜨라네는 청과물 대표 브랜드다. 신선하고 안전한 과일, 채소에 붙인다. 산지농협에서 직접 엄선해 농협중앙회를 통해 납품할 때 상표를 부착토록 한다. 기준 이하 상품이 발견되면 전량을 반품하거나 출하중단 조치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 확보에 노력한다.

아름찬은 100% 우리 농산물로 만든 먹거리 브랜드다. 무색소, 무방부제로 정성을 기울여 만든 상품이다. 현재 아름찬김치, 아름찬고추장, 아름찬 참기름&들기름, 아름찬두부 등의 상품이 인기가 높다.

한삼인은 국내산 순수 인삼으로 만든 농협의 명품 브랜드다. 전체 조합원 237만3000여 명과 1386개의 회원 농협으로 이뤄진 농협중앙회가 인삼경작 농업인과 함께 엄격한 기준을 두고 제조한다.

목우촌은 웰빙 바람에 맞춰 만들어진 브랜드다. 목우촌은 햄, 삼겹살, 닭고기, 냉동식품 등 순 국내산을 원료로 한 고품질 안전 축산물에 붙인다. 심지어 목우촌 상품은 오리고기와 계란, 수산식품, 소스류까지 다양하다.

농협 관계자는 “브랜드는 각 상품별로 대표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다”며 “앞으로 조합원의 이익이 극대화하도록 판매채널을 다각화하고 더 많은 유통망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kw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