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과 연인 사이>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있던 주인공 남녀가 가졌던 첫 데이트의 낭만과 설렘을 기억하는가. 까탈스러운 엠마(나탈리 포트만)의 취향을 알고 있던 순둥이 남친 아담(애쉬튼 컬처)가 꽃다발 대신 당근 다발을 선물한 영화 속 한 장면을 기억하면서 로스앤젤레스의 LA카운티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을 방문했다.

7월의 LA카운티미술관은 방학에 진행하는 아트캠프에 참여한 아이들과 학생들, 휴가를 맞은 아트를 사랑하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곳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영화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예술 영화를 상영하고, 콘서트도 개최한다. 또한 문화적 눈높이를 맞춘 청소년들을 위한 파티도 주기적으로 연다. 여름에는 무료 야외 재즈 공연을 하고 사람들은 블랭킷(담요)을 깔고, 직접 싸온 음식에 곁들여 와인이나 맥주 마시면서 여름의 분위기에 재즈의 음악에 흠뻑 취하곤 한다.

LA카운티미술관은 미술관의 외형, 세계의 이목을 받았던 유명한 작가의 야외설치 작품, 푸르게 펼쳐진 잔디와 곧게 뻗은 나무들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 어우러져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미국의 동부만큼이나 이곳에서도 진한 예술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 마이클 하이저의 '부유하는 돌' 출처=김기림 큐레이터

LA카운티미술관은 1965년 설립 당시에 미국에서 지어진 가장 큰 미술관으로 LA의 문화와 예술에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적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3세기의 유럽 작품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현대미술, 디자인 작품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북미 인디언, 동아시아, 이슬람까지 10만여 점의 다양한 소장품으로 다문화 컬렉션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파워는 매년 120만명의 관광객의 방문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공동설계자 중 한 명인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현대미술관의 새 건물을 설계했다. 빨간 골격 부분에서 짙은 퐁피두센터의 건축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건축가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음악가도 화가도 건축가도, 자신의 생각이 담긴 미학적 기질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면 작가라는 틀 안에서 그들의 직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의 야외에는 미술관의 상징물로 미술계에서 화제를 일으킨 작품들이 있다. 첫 번째는 미술관 앞에 설치된 202개의 빈티지 가로등으로 미술관 지붕의 태양광 패널로 불을 밝히는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작품 ‘도시의 빛(Urban Light, 2008)’이다. 1920년에서 1930년대에 제작된 옛 가로등의 모양은 모두 17가지이지만 실제로 보면 비슷해 보인다. 이러한 착시효과는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는 수백 개의 모양이 다른 가로등이 모였을 때 마치 하나의 형태로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 있어도 함께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LA를 상징한다고 한다. LA를 배경으로 한 <친구와 연인 사이> 영화 속 두 주인공이 귀여운 사랑싸움을 하는 배경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은 미술관의 상징을 넘어 LA의 명소가 됐고, 영화보다 낭만적인 장소가 되었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러버덕이 한국 미술계를 달구었던 것처럼 미국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대지예술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작품인 ‘부유하는 돌(Levitated Mass)’이다. 이 작품은 높이 6.5미터, 무게 340톤에 달하는 돌을 미술관의 야외 통로에 올려놓은 작품인데 돌의 크기, 채석장에서 미술관까지 100여개의 도시를 지나야 하는 운반 기술과 안전한 루트, 지자체의 허락, 그리고 100억여 원이라는 비용 등으로 이슈화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얻은 작품의 가치는 그 모든 것을 잊기에 충분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아 침대에서 색종이로 콜라주 작품을 제작한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우울했던 청색시대를 그리다 사랑하는 뮤즈를 만나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보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차가운 추상의 대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낯설게 하기’ 기법의 창시자 초현실주의의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여행하다 LA카운티미술관을 방문하려거든 하루를 꼬박 미술관에서 보내라고 추천하고 싶다. 급하게 보기에는 아까운 보석 같은 작품들이 한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