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민감한 이슈가 있어서 우리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 로펌 변호사들을 불러 회의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변호사가 그 로펌에서 언론을 잘 아는 변호사와 함께 왔어요. 방송통신위나 언론중재위쪽 경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CEO는 그쪽 변호사들과 함께 이슈관리를 해보라는데요. 이슈관리에 있어 대응 자문을 이분들에게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망치로 나사를 박으려는 것 같군요. 국내 기업 위기들 중 법적 판단에 의해 관리 방향을 정해야 하는 유형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만큼 기업 내 준법(Compliance) 마인드와 문화가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경영진 및 오너의 권한남용(Management override)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 때문에 로펌들이 기업 위기관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수준이 낮은(당연한) 기준은 ‘법적 기준’입니다. ‘우리 회사가 이 이슈에서 법적 문제가 있는가, 없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거죠. 그 다음 한층 높은 기준이 ‘여론적 기준’입니다. ‘우리가 법을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론이 이 문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하는 고려를 하는 거죠. 가장 높은 기준은 ‘윤리적 기준’이라고도 하죠. (이 논의는 다음 기회에…)

우선 앞의 두 기준에서 보면 율사(律士)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역할과 전문 범위가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위나 언론중재위 같은 기관은 법에 의거한 언론 규제기관입니다. 이런 훌륭한 규제기관에서 위원 등으로 활동한 저명한 율사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에 기반을 둔 위기관리 전략과 여론에 기반을 둔 위기관리 전략 간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언론’이 ‘여론’과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언론’을 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바람직하다 보기 힘듭니다. 지금같이 투명한 ‘여론 관조’가 가능한 환경에서 직접 ‘여론’을 관리하려는 노력 대신, 간접적으로 ‘언론’을 관리하려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가 의문입니다.

혹시 CEO가 여론을 읽고 있다면서 언론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론을 듣는다면서 기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론에 따른다고 하면서 기자들에게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닌지요? 여론이 무섭다면서 언론사에 대대적 스폰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나요? 여론이 무지하다 여기면서 언론과의 관계를 거부하거나, 통제가 필요하다고 정부에게 탄원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정확하게 사내 위기관리팀이 여론과 언론을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건가요?

언론에 대한 관리에는 종종 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여론에 대한 관리에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구분 정의된 여론을 정확하게 읽고 빠르게 분석하여, 적절한 ‘여론의 법정’ 논리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이 사내에서 누구인지 돌아보세죠. 바로 기업의 홍보실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대변하며 여론의 법정에서 생존을 다투어온 홍보실 임직원들이 그 전문가입니다.

여론의 법정 경험이 실제 법정에서 완전하게 통하기 힘들 듯이, 실제 법정 경험 또한 여론의 법정에서 완전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전문성을 지닌 사내·외 전문가들이 의사결정 그룹 내에서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여론 커뮤니케이션 전문성을, 규제기관에서 언론을 다루던 율사들에게서 찾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일선 기업 위기관리 자문에 투입되어 일하며 여러 좋은 변호사들에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들이 법적 관점을 존중하듯이, 그 변호사들도 여론에 기반을 둔 관점을 존중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함께 일하되 상호 간 전문성을 인정하고 완전히 협업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협업에서 핵심적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CEO입니다. CEO가 양쪽의 전략을 듣고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한 최선의 위기관리입니다. 그 과정에서 CEO 스스로의 각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CEO는 나사를 박는 데 망치를 쓰지는 말라는 조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