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0년 사면을 직접 주문하면서 그동안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던 기업총수를 비롯한 기업인 사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관련 수석비서관에게 사면에 필요한 범위와 대상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자신의 특별권한인 사면권 행사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함에 따라 청와대와 법무부를 중심으로 오는 8월 15일 광복 70주년 사면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사면 준비작업 지시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재계가 경영상 비리로 구속 또는 수사가 진행 중인 기업 총수 등 경제인에게 기업 경영의 기회를 다시 한번 줘보자는 일련의 움직임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재계는 지난 9일 주요 그룹 사장단들이 회동해 ‘경제난 극복을 위한 기업인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그리스의 디폴트(국가부도) 및 그렉시트(Grexit:유로존 탈퇴) 등 국내외 악조건으로 국내경제의 2%대 성장을 우려하며 기업이 경제위기 타개에 앞장 설 것임을 천명했다.

이 자리에서 재계는 “장기간 수사나 경영자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제한 뒤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건의했다.

사실상 재계가 국민과 정부에 법적 조치를 받고 있는 기업인들의 사면을 요청한 것이다.

현재 경영 비리와 관련,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 중인 기업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전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중병 때문에 구속집행정지 또는 보석 상태에서 치료 중이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에도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제인 특별사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 했으나, 당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지면서 반기업 정서가 퍼지면서 없던 일로 돼 버렸다.

그러나 기업인 사면에 대한 재계의 움직임이 지속돼 왔고, 특히 취임 이후 사면권 행사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던 박 대통령이 해를 넘겨 올해 1월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변화의 조짐을 나타냈다.

신념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기업인 사면이나 가석방에 대한 입장의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기업인이라서 해서 특혜나 역차별을 받아선 안된다. 국민의 법 감정, 형평성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의 원칙적 불가 입장에서 소관부처인 법무부가 (기업인) 사면의 당위성과 결정을 내리면 대통령도 사면권 행사할 수 있다는 일단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대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 전경련이 며칠 앞서 기업인 사면을 호소했고, 이에 ‘마치 화답하듯’ 대통령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검토를 지시하면서 기업인 사면이 본격적으로 물 위에 올라서게 됐다.

이같은 대통령의 지시와 정부의 방향에 대해 재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에 기업총수가 사면 대상의 범위에 포함되는 해당 기업들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전경련 송원근 상무는 “경제인 사면에 대해 청와대에 사전에 건의한 적은 없다”고 일단 정부와 재계의 사전교감설을 차단하면서 “30대그룹 사장단회의에서 경제가 어려운 만큼 국가경제에 기여를 했고 투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분에게 기회를 줄 필요성이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의 사면 검토 지시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며 환영했다.

현재 회장이 재판 중인 한 대기업의 관계자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인 사기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총수가) 현재 재판 중이라 관례상 직접 사면 대상은 아니지만 이같은 우호적 분위기 형성이 어떤 식이든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며 역시 기대감을 드러냈다.

회장이 구속 상태인 또다른 대기업 측은 매우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 기업의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사면 대상자가 누가 될지도 모르고, 정해진 방침도 없는 상황”인 점을 강조하며 “회사 차원에서 입장을 언급을 할 위치도, 상황도 아니다”며 말을 매우 아꼈다.

일단 대통령이 사면 검토를 지시한 만큼 청와대와 정부는 8월 15일 광복절까지 한 달 가량 남지 않은 시간적 제한을 고려해 사면 대상자와 범위,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을 종합적으로 준비작업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통령이 그동안 무분별한 기업인 사면에 반대해온 원칙을 이번에 깼다는 점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그리고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진보적 시민단체의 반발 등이 이번 8.15 광복 70주년 기업인 사면 추진에 주요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