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아웃도어 인구가 1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아웃도어 바비큐 협회’가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사단법인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초·중·고급 아웃도어 교육은 물론, 프로 바비큐 선수를 양성하고 전국 단위 바비큐 대회도 개최한다.

▲ 사진 = 차영기 회장 제공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허가를 받아 민간 자격증도 발급한다. 국내에서는 낯선 이야기지만 바비큐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매년 500개 이상의 바비큐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를 구경도 하고 프로 바비큐어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일반인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바비큐 대회는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2년 천안에서 100개팀 300여명 선수들이 참가하는 첫 바비큐 대회가 열린 바 있다. 협회는 올 가을 바비큐 국가대표급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한-일전도 준비 중이다.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를 만들고 이끄는 차영기(53) 회장은 산적 같은 외모와 달리 어엿한 대학 교수로서 일하고 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이글스의 홈그라운드 대전구장에서 잘 나가던 바비큐 매장을 접고, 올해부터 여주대학 호텔외식사업학과에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 중이다.

차영기 회장이 바비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경기도 송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1990년대 후반이다. 삼성생명 마케팅매니저로 십수 년간 근무하던 차 회장은 평일 밤낮은 물론, 토요일 근무도 당연시하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인근에 사는 미군들의 주말 풍경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그가 토요일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할 때, 미군들은 관사 공터에서 바비큐 그릴에 불을 놓고 있었다. 늦은 오후 퇴근길에 본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앉아 대화도 나누면서 한가롭게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차 회장은 송탄에서 제일 큰 공무원 복지매장으로 달려가 그릴을 구입하고 바비큐에 도전했다. 미국에서는 명절이나 각종 기념일은 물론, 가족이 모이는 날에는 반드시 그릴에 고기를 굽는다. 혼자서 고기를 먹기 위해 그릴에 고기를 올리는 사람은 없다. 여럿이 좋은 음식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동체 문화도 복원된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차 회장은 주경야독으로 인터넷을 찾아가며 바비큐와 관련된 미국 자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읽다가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가 사직서를 던졌고, 요리의 기초부터 배우자는 생각에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에 등록했다.

국내에는 바비큐를 알려주거나 프로 바비큐어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물론, 관련 내용을 아는 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재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지식을 공유했다.

▲ 차영기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바비큐 전문 식당을 열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후에는 프로 바비큐어라는 직업을 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골목마다 숯불 고깃집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바비큐어라는 직업을 인정해주는 이는 없었다. 직접 KBS 창직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출연했을 때는 ‘미국이라도 다녀왔느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심사위원들을 설득해 5위까지 오르며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바비큐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처럼 인식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출발점은 동양에 있다. 바비큐의 어원인 바베꼬어(Babercoa)도 동양인이 통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을 스페인어로 옮기며 생겨난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여러 문헌을 통해 수렵과 고기를 즐기는 모습이 200년대의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기록되었을 정도로 전통을 자랑한다. 다만 현재는 숯불에 직접 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이 대중적이라면, 바비큐는 불이 아닌 열기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굽는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차 회장의 목표는 바비큐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그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의 꿈을 만드는 동지와 전도사가 될 것이다. 특히 아웃도어 활동과 바비큐 문화의 교육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캠핑장에서 밤 사이 고기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면 그 자체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스피릿 코리아(Spirit Korea)라는 청년 캠핑 스쿨을 통해 검증하기도 했다.

차 회장은 좀 더 큰 판을 고민 중이다. 가족 단위로 즐기는 캠핑을 지역 사회로 확대해 축제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바비큐 대회가 열리면 그로 인한 내수 경제 활성화와 다양한 청년 창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돈벌이보다는 바비큐 문화를 만들어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고 자연에 기초한 축제를 고민하고 있다.